#장면1. 드라마제작사협회는 지난해 12월 5일 박신양에 대해 출연료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무기한 출연정지’ 결정을 한다. 협회는 “박신양이 <쩐의 전쟁> 연장 방송의 출연 대가로 요구한 회당 1억7050만원이란 출연료는 제작사가 방송사로부터 지급받는 외주 제작비용을 훨씬 뛰어넘는 액수”라는 이유로 이같은 결정을 내린다.

#장면2. 드라마제작사협회는 지난해 12월 30일 특정 배우에게 ‘별도의 인센티브 지급 가능’이라는 내용이 담긴 ‘배우 등급’을 분류한 공문을 드라마 제작사들에게 전한다.

▲ 드라마제작사협회 사이트 캡처.
드라마제작사협회 배우들 출연료 차별지급

불과 한 달 사이에 드라마제작사협회가 행한 일들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포츠한국이 단독으로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드라마제작사협회는 지난달 30일 소속 드라마 제작사를 상대로 ‘제작비 항목별 상한액 추천 안내’라는 제목의 문서를 팩스로 보냈다.

여기에는 배용준, 장동건, 이병헌, 이영애 등 일부 한류 스타의 실명을 거론, “별도의 인센티브 지급 가능”이라고 적시했다.

또 출연료 항목에는 ‘내용 70분 기준 제수당 포함 주인공 1500만원’이라고 규정하고, “드라마 일본 수출에 공로가 인정된 스타배우 배용준 장동건 이병헌 비 정우성 송승헌 권상우 원빈 소지섭은 일본 판매액 중 제비용 공제 후 제작사 재량 일정비율 인센티브 별도 지급”이라고 명시했다.

또 “이영애 최지우 송혜교 박용하는 일본에서 투자 및 선판매된 경우 제비용 공제 후 제작사 재량으로 일정비율 인센티브 별도 지급 가능”이라고 밝혔다.

중견 배우 조연 출연료에 대한 부분도 있었다. 최불암 이순재 신구 김혜자 강부자 나문희 등은 출연료 500만 원 상한선을 넘을 수 있게 했다. 이들에게는 ‘공로&원로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문서에는 배우 출연료 뿐 아니라, 연출료, 편집료, 조명료, 조연출료 등을 명시하고, 특정 버스 임대 업체 및 화환 주문 업체의 연락처까지 기록돼 있다고 한다.

협회는 공문에서 배우들을 나눈 기준에 대해 “KBI(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자료에 의거, 최근 몇 년 동안 드라마 일본 수출에 공로가 인정된 배우”라고 제시하고 있다.

위험한 줄타기, 해결되는 것은…

한 달 만에 드라마제작사협회가 벌인 일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출연료 문제를 지켜보고 있다는 시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협회는 고액 출연료 문제도 해결하고 싶고, 특정 배우들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나 양자는 절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는 ‘물과 기름’과 같은 것이기에 드라마제작사협회 행보에 구름이 끼고 있는 듯 한 모양새다.

따져보자. 당초 협회가 박신양에게 ‘무기한 출연정지’ 결정을 내린 것은 고액 출연료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협회는 고액 출연료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몰아갔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구조적인 문제라 함은 제작비가 없는 상황에서 고액의 스타를 영입하고, 시청률을 위해선 방송사 또는 제작사간 출혈 경쟁을 감수하는 현상을 말한다. 더욱이 최근 드라마 현장에서 자주 빚어지는 ‘출연료 미지급’ 또는 ‘지연 지급’ 문제도 그렇다. 또 있다. 드라마에 조연들이 사라지고, 결손 가정이 늘어나는 현상 등도 구조적인 문제에 속한다.

문제는 고액의 출연료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드라마제작사협회가 이러한 결정을 해 비판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 협회는 또 특정 배우들에게 인센티브 별도 지급을 용인하는 공문을 제작사들에게 보냈다. 고액 출연료를 막아 보자고 박신양에게 ‘무기한 출연정지’를 결정한 것과는 상반된 내용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특정 배우에게 특혜를 베풀고 싶고, 고액의 출연료 문제도 해결해 보려는 모순된 욕망이 빚어낸 꼼수다.

고액의 출연료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신인 양성을 비롯한 시스템 마련, 방송사와 제작사 간에 벌어지는 고액 출연료 모시기 경쟁 자제, 탄탄한 내용의 드라마 제작, 사전제작 등 다양한 방법 등이다. 그런데 협회는 고액의 출연료를 해결하기에 앞서 고액 출연료 연기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더구나 뭔가 형평에 맞지 않는 특정 배우들 ‘감싸기’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하다. 한 예로 A라는 배우는 중국과 대만 등에서 나름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다. 그런데 이번 협회가 보낸 공문에는 이름이 오르지 못했다. 중견 배우 조연 출연료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름이 거론되고 거론되지 않는 것에 대한 판단 기준이 무엇인가? 프로그램 출연 회수도 아니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에 끼친 영향력, 또는 인기도…? 기준이 애매한 가운데 단순히 수출에 의존한 배우에게 500만원 선 이상의 출연료를 줘도 된다는 공문의 내용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한단 말인가? 적어도 수십년간 배우라는 한 길을 걷고 있는 이들 가운데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연기자 선생님들의 심정은 어떨까 궁금하기까지 하다.

드라마제작사협회는 공문의 성격에 대해 “권고사항이다.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 “출연료 상한제 때문에 수익과 직결되는 배우들의 스타성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현재 협회의 모습은 참으로 위태로워 보인다. 벼랑에서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다. 절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안간힘 쓰기가 안쓰럽다. 이른바 ‘배우등급표’로 인해 연예계는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이들의 반발뿐 아니라 거론된 이들까지 난색을 표명하게 해, 향후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