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을 끝으로 8일간의 일정을 마감한 '인디다큐페스티발 2016’ 폐막식에서는 다소 놀라운 일이 있었다. ‘인디다큐페스티발 2016’ 개막작인 송윤혁 감독의 <사람이 산다>가 폐막작으로 선정된 것.

인디다큐페스티발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관객상’ 수상작이 폐막작으로 결정되는데, 올해는 개막작 <사람이 산다>가 관객상을 수상한 것. 한 작품이 영화제 개폐막식을 모두를 장식하는 경우는 정말 드문 일이긴 하지만, 그만큼 영화가 가진 힘이 압도적이라는 평이다.

<사람이 산다>는 서울역 근처 동자동 쪽방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밀착 취재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제 막 가정을 꾸린 일수 씨 이야기를 시작으로, 동네 주민 창현 씨, 남선 씨의 사연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이들은 쪽방촌 주민이라는 것 외에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혹은 수급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가난과 무능력을 세상에 증명해야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 <사람이 산다> 스틸 이미지

이 영화가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것은, 영화 자체가 가진 기록의 힘 때문이다. 쪽방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낸 시도도 많지 않았지만, 촬영 기간 내내 쪽방촌에서 주민들과 함께 지냈다는 감독의 뒷이야기도 놀랍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산다>는 내부자의 입장을 견지하며 주민들의 삶을 파고든다.

하지만 이 영화는 휴머니즘 관점에서 쪽방촌 주민들의 애환을 리얼하게 보여주기 위해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애초 이 영화가 건드리고자 하는 지점은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들 혹은 기초생활 수급자와 가족들만이 격하게 공감할 수 있는 제도의 문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은 그렇다 쳐도,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같은 경우는 평소 사회보장제도에 관심이 없다면 생경하게 다가올 수 있는 낯선 용어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광화문역 지하 통로를 지나갔다면, 완전히 처음 보는 단어는 아닐 것이다. 거기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 가끔 그들은 거리로 나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는 집회를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관련한 문제를 직접 몸으로 겪어보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은 왜 그들이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고 주장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도대체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가 왜 문제인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영화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의 폐해를 몸소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기초생활보장수급으로 받는 몇십만 원의 돈이 오히려 그들을 계속 가난의 굴레에 갇히게 하는 역설을 보여 준다.

영화 <사람이 산다> 스틸 이미지

이 영화는 단순한 연민의 시선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몇 평 안 되는 공간에서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사는 쪽방촌 주민들의 모습은 그 장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타깝고 보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온정의 손길이 필요한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그들의 자립을 도와줄 사회보장제도의 변화다. 그런데 세상은 가난과 무능력을 스스로 증명하게 하는 제도를 고수하고 있고, 그 도움이라도 받기 위해 쪽방촌 주민들은 더 비참해지거나 잔혹한 선택을 감행해야 한다.

일을 하고 싶어도, 수급 상의 문제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는 쪽방촌 주민들의 아이러니한 현실을 통해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사람이 산다>의 카메라는 단호하다. 이들이 가난한 이유는 개인의 노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그 개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제도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쪽방촌 주민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잠깐의 눈물 대신, 가난한 사람이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한다. 지금은 철거되고 있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쪽방촌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사람이 산다>는 외면하고 싶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동시대적 사회 문제를 직시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영화이다. 이런 영화를 만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축복이자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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