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뿐 아니라 편집기자, 논설위원, 편집인 등 내근하는 사람들까지도 무작위로 다 조회를 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과) 연결돼 있는 사람들까지 조회를 했다. 이렇게 되면 취재 못한다, 저도 취재기자 출신이지만… (수사기관이) 다 들여다보고 있는데. 취재원 보호? 안 된다. 익명의 공익제보? 있을 수가 없다. 바로 저들이 노리는 것이 이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_ 언론노조 김동훈 수석부위원장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에 따라, 통신사를 이용하는 개인 회원은 자신의 최근 1년치 통신기록이 제공된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테러방지법 통과 이후, 국가기관이 개인정보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SNS 상에서는 ‘통신내역 조회 기록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검찰, 경찰, 국정원 등 수사기관의 감시 시도에 노출돼 있었다. 시민단체 활동가, 노조 관계자뿐 아니라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도 대상이 됐다.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30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수사기관에 의한 언론노조 조합원 통신자료 수집 사례 1차 결과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언론노조는 지난 10일부터 25일까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1차 설문을 진행했고, 그 결과 총 19개 조직(17개 언론사, 2개 단체)의 97명이 총 194번 조회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표=언론노조)

언론사별로 살펴봤을 때, 한겨레는 인원이나 조회 건수 모두 타사를 압도했다. 총 37명이 81회 조회를 당했다. 이 중 기자 1명은 혼자서 7회나 조회되기도 했다. CBS는 11명이 19회 조회됐고, 한국일보는 9명이 12회 조회됐다. YTN은 7명이 8회, 미디어오늘은 6명이 9회, 시사IN은 4명이 11회 조회됐다. 단체 중에서는 언론노조가 4명이 18회 조회 요청을 받았는데, 백재웅 조직실장의 경우 조회 건수가 10번에 달했다.

언론노조는 △조회 당시 육아휴직자, 논설위원도 대상이 되었고 △세월호 1주기 집중 취재기간(2015년 5월)과 민중총궐기 집중 취재기간(2015년 12월)에 통신자료 조회가 몰렸으며 △PD들의 경우 시사 및 뉴스 프로그램 제작진 대상으로 통신자료 요청이 이뤄졌고 △전국 일선 경찰서, 지방경찰청, 경찰청 본청, 전국 지방검찰청 및 지청, 국정원, 국방부 검찰단, 육군수사단 가릴 것 없이 많은 수사기관에서 수시로 현업 언론인들의 통신자료를 무차별 조회했다고 설명했다.

취재활동과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고, 통신자료 조회를 통해 얻은 정보로 추가정보 조회가 가능하며, 법인폰을 사용하는 지상파방송사의 경우 통신자료 제공내역 조회조차 불가능한 사각지대에 있고, 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조회 목적을 전혀 밝히지 않아 정보인권 침해 등으로 악용될 수 있는 등 다양한 문제점이 예상된다.

30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수사기관에 의한 언론노조 조합원 통신자료 수집 사례 1차 결과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언론노조 김환균 위원장은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언론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이 땅의 언론마저도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며 “사생활 침해 문제도 있지만 전화번호부를 가지고 뭘 하려고 했을지 의문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감시망을 구축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김동훈 수석부위원장은 “과거 군사정권에서도 사찰이 있었다. 비판적인 정치인, 재야인사, 운동권 학생에 대한 사찰이 주를 이뤘다면 현재 박근혜 정권에서 이뤄지는 사찰은 일반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사찰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소름끼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악랄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대국민 사찰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우리가 강하게 문제제기해 단죄해야만 여기서 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노골적인 사찰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기자협회 최성진 언론자유특별위원장은 “국가기관이 무차별하게 언론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는 것만으로 언론자유는 충분히 훼손됐고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침해당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민감한 사건의 이해당사자가 어떻게 취재기자와 자유롭게 전화할 생각을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최성진 위원장은 “언론자유특위는 국가기관이 언론인 통신자료를 어떤 목적으로 조회했는지, 어떻게 활용했는지 2가지를 밝혀야 한다고 요구한다”며 “여기 계신 언론인 분들도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현재 상황을) 바로잡는 데 함께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장여경 씨는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경제활동 인구가 3500만인데 국가기관 요청으로 제공된 통신자료 건수가 1300만건(2014년 기준)이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네이버, 다음, 카카오톡 등 포털은 영장 없이는 통신자료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조회가 이루어졌는지 이제야 비밀이 밝혀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언론인들의 자료가 제공됐다는 것은 굉장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신원이 손쉽게 드러난다면 누가 공익제보를 하겠나. 언론자유 위축이 민주주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꾸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언론노조는 향후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직능단체들과의 협조를 통해 보다 폭넓은 조사를 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통신사, 수사기관을 대상으로 한 언론인 집단 손해배상소송을 검토하고, 방통위와 미래부에는 적극적인 역할 및 규제 강화를 촉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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