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이게 무슨 꼴이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정치혐오’가 판을 치고, 이걸 극복하는 방법을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때에 오히려 대통령이 나서서 정치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게 하고 있다. 사실상 대통령이 미워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유승민 의원과 그 주변 사람들이 공천을 받지 못한 것으로부터 뜬금없는 ‘존영(尊影)’ 논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할 말이 없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할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존영’이라고들 하지만 대통령이 등장하니 높여 부르는 것일 뿐, 결국 그냥 액자에 들어있는 사진이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사진에 대한 저작권이라도 주장하겠다는 것인가?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이 문제에 대한 모범적 해결책은 오히려 친박 중진이라는 서청원 의원이 제시했다고 한다. ‘누구든지 대통령을 존경하면 사무소에 사진을 걸 수 있다’는 거다.

29일 오후 대구시 동구 유승민 의원 지역구 사무실에 걸린 박근혜 대통령 사진 액자. 새누리당 대구시당은 지난 28일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유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에게 공문을 보내 "대통령 존영을 반납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무소속 의원 측은 "반납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른바 유승민계 후보들에게 대통령의 사진을 도로 내놓으라고 강권한 것은 새누리당 대구시당이다. 대구시당 위원장은 조원진 의원이다. 조원진 의원은 테러방지법 처리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강행하자 몇 번이나 앞장서서 이를 방해하려 해 야권 지지자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조원진 의원이 자신이 우스운 꼴이 되는 걸 몰라서 이런 ‘오버’를 자꾸 하는 게 아니다. ‘찍히면 죽는다’는 걸 눈앞에서 본 이상 충성을 다해 몸을 바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은 결과다. 사람들은 비웃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선 이런 충신이 국회에 있으니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든든하겠느냔 말이다.

대통령 잘못 뽑았다는 말은 이명박 정권 시절에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공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익을 위해,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돈’을 위해 대통령이 됐다는 의심이 ‘여론’이 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존재했기 때문인 것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릴 때부터 ‘영애’로 살았고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만큼 사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 그러니까 방향이야 어떻든 오직 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겠느냐는 선입견이 작용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보면, 그런 생각을 갖고 박근혜 대통령을 찍은 사람들은 모두 배신을 당한 셈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그것과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재물의 축적을 위해서 대통령이 됐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돈을 위해서건 나라를 위해서건 권력을 사유화 하고 그것에 근거해 전횡을 일삼는다는 식의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건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권에서 권력은 거의 완전한 의미의 ‘포르노그래피’가 됐다. 이전까지 권력을 ‘포르노’라고 부르는 건 비판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이제는 말 그대로 사실을 묘사하는 것일 따름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거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권력의 성격에 따라 행동을 달리한다. 조원진 의원이 이런 오버를 하고 최경환 의원이 자기가 권력의 핵심부에 밀어 넣은 인사들을 언급하며 ‘전관예우’에 의한 예산 확보를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술에 취해서나 할 소리고, 그랬더라도 논란이 될 말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예산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이나 이를 현실화 시킬 체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더 문제다. 박근혜 시대에 중요한 건 시스템이 아니라 오직 누가 더 많은 비선적 권력을 가졌는지 라는 게 여기서 또 한 번 드러난다.

유권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유권자들은 언제나 먹물들이 기대할 때에는 우매(?)했으나, 먹물들이 무시할 때에는 놀랍도록 현명했다. 보수언론이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분석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상태가 된 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수도권 비박들이 ‘살생부 논란’에서 이미 우려한대로 유승민 의원을 찍어낸 효과가 수도권을 흔들고 있다. 박근혜 정권과 여당에 대한 지지는 그들의 텃밭인 영남에서까지 썰물처럼 빠지고 있다. 그나마 ‘분열된 야권’이라는 변수가 마지막 희망이다. 이제 ‘조중동’의 필두인 조선일보는 야권의 후보단일화 움직임에 전전긍긍하며 후보자가 중도사퇴하면 선거보조금을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물론 선거 초반의 국면이 종반까지 이어지리라 기대해선 안 된다. 그러나 이런 여론의 움직임이 박근혜 대통령과 ‘충신’들의 무리수에 따른 민심 이반을 보여주며, 장기적으로 정치적 냉소주의를 강화하리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이 나쁜 것은 대통령이 독재자의 딸이라거나 보수본류의 정치노선을 따르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정치적 냉소는 당장의 선거 결과에는 해가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보수정치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사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선수들’만 정치에 참여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는 그저 통치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건 가히 ‘냉소의 카르텔’이라 할만하다.

이 상황을 돌파하려면 야권이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현실적 차원에서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봐도 지금으로서는 그렇다고 말해줄 수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결국 그를 앞세워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배치한 선거전을 치르자는 결론을 내리는 걸로 끝났다. 그러나 야권은 아직 프레임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초반 선거전 구도는 오히려 새누리당 대 비박-무소속의 구도이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야권연대 여부와 관련한 맥락에서만 언급되고 있다.

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경제상황실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운열 국민경제상황실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요 며칠 새 경제정책과 관한 날선 공방이 오가기도 했으나 상황의 변화를 추동해내진 못했다. 오히려 새누리당은 강봉균 전 부총리를 영입한데 이어 조원동 전 경제수석과 강석훈 의원을 선대위에 투입해 ‘경제민주화’에 대한 무력화에 나서고 있다. 강봉균 전 총리가 ‘한국판 양적완화’를 말한 것은 경제학적으로 따져볼만한 일이지만 순전히 ‘선거구도’라는 점에서 보면 오히려 ‘경제민주화’를 낡은 것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런 판국에 야권이 오로지 후보자간의 선거연대가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대중의 정치적 냉소를 부추길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야권연대는 결국 무엇을 위해 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겨레신문은 연일 야권연대가 없다고 주장하는 안철수 의원을 공격하고 있는데, 주요 논거는 여당의 개헌선 확보를 막자거나 새누리당의 확장을 저지하자는 거다. 유권자들의 위기감과 균형감각에 호소해보자는 생각인 듯하다. 그러나 이는 언론으로서 바람직한 태도도 아니고 ‘선거공학’의 측면에서도 탁월하다고 말할 수 없는 전략이다.

선거연대가 바람직하게 되려면 공통의 목표가 있어야 하고, 이것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것이어야 한다. 여당의 승리를 막자는 수세적인 목표는 유권자들의 냉소주의를 돌파하는 데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남이 이기면 안 되니 나를 밀어 달라’는 말에 흔쾌히 마음을 내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얘기가 이렇게 돌아가니 경제민주화, 더불어성장론, 공정성장론이 모두 선거를 위한 ‘핑계’처럼만 인식되고 있다. 유권자들의 냉소와 불안은 여당 또는 야권의 어느 당이 승리하거나 지는 것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다. 세상을 바꿀 절박함을 야권이 갖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최대의 문제다. 이번 총선에서 이걸 돌파할 단초를 마련하지 못하면 2017년 대선에서도 역시 ‘냉소의 카르텔’을 극복해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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