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치가 아주 즐겁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진박 후보들에게 공천을 주기 싫다며 ‘옥새’를 들고 부산으로 도망을 가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정정하겠다. 김무성 대표는 그 도장의 이름이 옥새가 아니고 당인이며, 새누리당사에 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 옥새를 들고 부산으로 도망을 갔다는 표현은 틀렸다. 옥새 없이 도망갔다. 최고위를 안 열겠다던 김무성 대표는 어찌됐건 최고위에 참석한다는 입장으로 또 후퇴했다. 상황은 예고된 수순으로 흘러가고 있다.

25일 보수언론은 일제히 김무성 대표가 벼랑 끝 승부를 펼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30시간의 법칙’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무르게 행동해온 김무성 대표인데, 이번에도 역시 친박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에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될 거다, 그러니까 접어주기가 쉽지 않다 뭐 이런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는 질문을 달리 해야 할 필요도 있다. 과연 대권주자로서 김무성 대표의 위상이라는 게 지금 있기는 한가? 김무성 대표가 대권주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박근혜 대통령이 더 이상 대안이 없다고 여길 때까지 유력 대권주자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며 버티는 것이다. 둘째는 ‘김무성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 그 자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영남과 수도권에서의 일정한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거다.

김무성 대표가 처음 취임했을 때 보수언론들은 이제 새누리당 내에 친박 대 비박 구도는 없고 ‘친김체제’로 재편될 거라고들 전망했다. 김무성 대표의 임기를 고려했을 때 이번 총선의 공천권까지 좌우할 게 분명하고 유력 대권주자라는 타이틀까지 보유하고 있으므로 개별 의원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거다.

보수언론들의 전망은 매우 그럴듯했다. 그러나 그들도 김무성 대표가 이렇게까지 ‘로우키’로 일관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박근혜 대통령과 한 번 세게 붙어야 할 타이밍에 김무성 대표는 번번이 회군했다. 물론 이는 나름대로 김무성 대표 스스로의 정치적 계산에 의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일찍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맞붙어봐야 손해만 볼 뿐이다. 게다가 김무성 대표는 한국사회의 ‘금수저’로 살아왔기 때문에 약점도 많다. 딸에 사위에 누님에…. 게다가 공작과 설계의 명인이라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정원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판에선 끝까지 버티고 버텨 ‘평화적 이양’을 모색하는 게 정답이다.

그러나 대장이 후퇴를 반복하면 뒤에 선 졸병들은 불안감을 느끼는 법이다. ‘살생부 논란’은 그런 불안이 마지막에 폭발했던 걸로 볼 수 있다. 살생부 논란의 정치적 의의는 살생부가 실재하느냐, 청와대가 과연 직접적으로 여당 공천에 개입하고 있느냐 등이 아니다. 김무성 대표 입장에서 살생부의 진정한 문제는 수도권 비박이 더 이상 김무성 대표를 믿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것에 있다. 어느새 이른바 소장파의 좌장처럼 행동하는 정두언 의원이 대놓고 “지금까지 살아온 걸 보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 “이른바 30시간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다”며 면박을 주는 모습을 보라.

대권주자 김무성의 관점으로 보면 이렇게 해서는 계산이 안 나온다. 유승민 의원 문제 때문에 수도권과 TK가 동시에 무너지게 생겼다. PK만으로는 다른 대권주자들의 반복되는 도전을 버텨낼 수가 없다. 20대 총선에서 친박계가 당내 다수를 점하고, 일각에서 청와대가 차기로 점찍었다는 추측이 나오는 오세훈 의원이 생환하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어진다. 김무성 대표로서는 지금 이 순간이 타이밍이다. 뭐라도 해야 한다. 네티즌들이 ‘신의 한 수’라고들 하는 ‘옥새투쟁’은 이런 고민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 도착, 대표실로 향하며 대구 수성을 이인선 예비후보의 항의를 받자 올라가서 얘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김무성 대표의 행동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퇴로가 불확실하다는 거다. 결국 다시 돌아와서 도장을 찍게 되면 이런 행위 자체를 왜 했는지 알 수 없게 돼버린다. ‘역시 김무성은 약체’라는 평가들에 새로운 근거를 제공하는 꼴 밖에는 안 된다. 칼을 빼들고 휘두를 때는 신이 나지만 칼을 도로 칼집에 넣는 조건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김무성 대표가 끝까지 ‘무공천’ 입장을 고수하면 어떤 형식으로든 법적 문제가 발생한다. 대표 자격이 없는 이가 직인을 찍는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헌 당규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6인의 진박 후보들은 결국 출마 기회 자체를 봉쇄당하게 될 것이다. 이건 보기에 따라서는 신의칙 위반이라는 쟁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만일 그런 식의 공방이 오가게 된다면 새누리당은 사실상 분당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온갖 정치적 법적 논란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김무성 대표 행위의 두 번째 문제는 일종의 정치윤리적 차원에 있다. 김무성 대표가 도장을 안 찍고 도망을 가버렸다는 식의 설정은 말하자면 이미지 정치의 일부일 뿐이다. 총선은 국민의 대표를 뽑는 절차고 정당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노선적 지향에 맞는 후보를 유권자들 앞에 내놓아야 하는 윤리적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현대적 대의정치에서는 그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 자체가 그 정당에 대한 지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선관위에 제출하는 등록 서류에 당 대표자가 직인을 찍는 의미는 이 과정에 대한 인증이다.

그런데 김무성 대표의 행위는 이 과정을 희화화해 냉소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차원에서 비판을 받을만하다. 물론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떠받드는 친박들이 무리하게 ‘유승민 찍어내기’를 강행한 데서 나왔다. 그러나 친박이 먼저 잘못했기 때문에 김무성 대표가 이 정도까지 하는 걸 이해해줘야 할 이유는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문제는 도장을 찍고 안 찍고의 문제가 아니다. 공천이 잘못됐다면 당적 체계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 만일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게 불가능한 집단이라는 점에 대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무성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도 나름대로 책임을 지는 방법이다. 그런데 김무성 대표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대권을 놓치고 싶지도 않고 정치적 책임을 지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무성 대표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짐작도 하지 못한다. 이대로면 책임지지 않는 리더, 권력에 고개 숙이는 정치인, 명분을 도구로 삼는 소인배라는 평가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여기는 막다른 골목이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대권을 그냥 포기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사지에 들어온 돌은 죽어야 한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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