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결과를 가지고 25일자에서 조선일보가 ‘염치없게’ 굴더니 오늘자(26일)에선 중앙이 조선을 ‘벤치마킹’한 모양새가 돼버렸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가 공개한 신군부의 언론통제사건 조사결과보고서를 전하는 중앙의 26일자 지면배치가 하루 전 조선일보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중앙, ‘어제’의 조선을 벤치마킹하다?

▲ 한국일보 10월26일자 2면.
국방부 과거사위가 25일 발표한 ‘신군부의 언론통제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는 1980년 신군부 핵심인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의 언론탄압 공작 실상을 상세히 담고 있다. 과거사위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당시 보안사가 언론인 강제해직과 언론사 강제 통폐합을 주도한 ‘언론반’을 설치했고 △언론인 회유공작 계획인 ‘K공작’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결재를 받아 실시됐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언론인 해직 대상자를 등급별로 분류, ‘언론정화자 명단’이라는 문건을 만들어 당시 문화공보부에 통보한 점 △당시 보안사가 이런 과정을 거쳐 해직된 언론인 711명을 3등급으로 나눠 각각 6개월, 1년, 영구적으로 취업을 제한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국방부 과거사위의 이번 보고서는 사실 내용보다는 국방부가 자체 조사를 통해 1980년 당시 언론탄압의 실체를 밝혀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관련 내용의 상당수가 이미 언론을 통해 대략적으로 보도가 됐기 때문에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승우(미디어오늘 논설위원) ‘19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가 26일자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80년 언론탄압은 보안사 외에도 행정적으로 협조한 문화공보부, 내부 제작거부자를 밀고한 언론사 경영진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으나 이번에 함께 규명되지 못해 아쉽다”고 비판한 것도 이 같은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의미는 있지만 한계 또한 분명하다는 것을 지적한 셈이다.

▲ 한겨레 10월26일자 9면.
신군부에 협력한 언론사주와 간부들…언론의 자기반성은 없었다

고 대표가 지적한 것처럼 당시 신군부가 노골적으로 언론탄압을 자행하긴 했지만 언론사 경영진과 간부들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당시 언론탄압은 이들과 신군부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보는 게 훨씬 타당하다. 오늘자(26일) 한겨레를 보면 당시 상황을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풍경’이 나온다.

▲ 중앙일보 10월26일자 1면.
“보안사가 작성한 각종 면담 보고서를 보면, 언론사 대표들은 전 사령관 면담 뒤 ‘전 사령관이 큰 절로 앞으로의 협조를 당부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며 ‘앞으로 언론계는 스스로 판단해 국익 증진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일부 편집국장들은 ‘사령관이 노련한 정치가다운 인상이 풍기고, 마음 속으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거나 ‘언론인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일깨워 주셨다’ 등의 반응을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새롭게 규명돼야 할 부분은 신군부의 언론탄압이라기보다는 당시 신군부와의 ‘긴밀한 협조’ 체제를 갖춘 언론사와 사주가 누구인지 그리고 당시 간부들이 어떤 형식으로 신군부에 협력했고 대가를 받았는지 여부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 공식조사나 자료 등을 통해 밝혀진 게 거의 없다. 언론계 내부의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확인 작업’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방부 과거사위 보고서를 전하는 오늘자(26일) 아침신문들이 대부분 신군부의 언론탄압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에 대한 평가와 함께 미흡한 점에 대한 비판과 언론계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기사나 논평이 나올 법도 한데 대다수 신문들은 신군부의 언론탄압 행태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전체’ 언론탄압보다 ‘중앙일보 탄압·TBC 통폐합’이 더 중요한가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지면배치는 중앙일보다. 중앙은 1면 <소설을 고문한 전두환 정권>에서 당시 중앙일보에 소설을 연재하던 한수산 작가와 권영빈 기자(경기문화재단 대표·중앙일보 사장 역임)가 신군부로부터 ‘탄압’을 받은 사실을 강조하더니 8면 <80년 ‘TBC 통폐합’ 신군부가 지시>에서는 “1980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이끄는 신군부가 TBC(동양방송)를 KBS에 흡수토록 했다는 내용을 담은 ‘신군부의 언론통제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가 국방부 과거사위에 의해 25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 중앙일보 10월26일자 8면.
중앙은 “80년 11월 허문도 청와대 비서관이 최종 성안하고 전 대통령이 결재한 ‘언론창달계획(안)’에 따라 TBC는 KBS에 통합돼 KBS-2TV로 바뀌었다. TBC는 당시 중앙일보와 함께 중앙 미디어그룹 계열사였다”는 부분을 덧붙이기도 했다.

관련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보도내용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언론은 보도를 함에 있어 전체적인 맥락과 개별 사실과의 관계와 비중을 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언론탄압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전하는 데 있어 핵심은 전체적인 측면에서의 조명과 평가, 한계와 문제점이고 자사와 관련된 ‘탄압사’과 ‘개별적인 부분’들은 주변부적인 것들이다.

중앙의 오늘자(26일) 지면배치를 문제 삼는 이유는 이 같은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은 주변부적인 사안을 ‘전면에 배치’하고 핵심을 이루는 사안은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 식의 지면배치를 하더니 거기에다 “TBC는 KBS에 통합돼 KBS-2TV로 바뀌었다. TBC는 당시 중앙일보와 함께 중앙 미디어그룹 계열사였다”는 점을 은근히 ‘부각’시키고 있다. 국방부 진실위의 보고서를 ‘다른 목적’에서 쟁점화 하겠다는 의도를 은근슬쩍 내비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니 언론계의 자기반성을 통한 ‘진실규명’ 작업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 무리인 듯 싶다. 중앙일보의 오늘자(26일) 지면배치를 보면서 어제 조선일보에 이어 ‘염치’라는 단어를 계속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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