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 ‘타바코 쥬스’의 드러머였던 백승화는 자신이 속해있는 밴드,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인천 부평에 자리잡은 ‘루비살롱’에서 함께 활동하던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2010)을 만든다. 영화는 인디씬을 중심으로 큰 호평을 받았고, 한국 최고의 로큰롤 밴드로 도약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록의 본고장 미국으로 3주간 무려 19회 공연의 빡센 투어를 떠난다. 그리고 이들의 미국 여정에 동행한 백승화 감독은 2012년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속편인 <반드시 크게 들을 것 2: WILD DAYS>(이하 <반드시 크게 들을 것2>)를 제작한다.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 2 : WILD DAYS’ 스틸컷

시작은 다소 무모했으나, 의미 있는 행보였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를 주문처럼 외우던 사람들이 한국 록을 대표하여 미국 투어를 진행하는 중량감 있는 밴드로 성장한 때문도, 이 영화를 통해 독립영화계에서 주목하는 감독이 된 결과 때문만이 아니다. 처음에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미국행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언제나 그랬듯이 회의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상업적인 성공은 고사하고, 백인들이 주름잡는 세상에서 동양인, 그것도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현지 밴드들과 대등하게 무대에 오를 수 있겠냐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애초 빌보드 차트 진출을 목적으로 미국에 간 것은 아니다. 가서 큰돈을 벌 것이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안 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원한 것은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였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미 톱밴드로 성장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공연할 수 있는 장소는 있었다. 하지만 인디음악의 메카였던 홍대 거리마저 자본의 위력에 의해 밴드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한국은 너무나 좁았다. 그래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미국 투어를 결심했고, 이들의 공연은 뉴욕 타임즈에 소개될 정도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 2 : WILD DAYS’ 스틸컷

돌연 4년 전 개봉한 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미국 공연을 이끌었고 <반드시 크게 들을 것2>에서 종종 얼굴을 비추던 러브락컴퍼니 기명신 대표가 지난 15일 사망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개인 SNS 계정을 통해 러브락컴퍼니 소속 밴드 활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한 기 대표였던 만큼, 그의 사망 소식은 인디씬 관계자는 물론 인디팬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기획력으로 중무장한 기 대표는 한동안 침체되어있던 인디 음악계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하였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시리즈 주인공인 갤럭시 익스프레스, 피해의식, 파블로프, 데드버튼즈 등의 활동을 지원하는 인디 레이블 러브락컴퍼니를 운영하고 있었고, ‘투표해락(ROCK)’과 같은 투표 독려 이벤트를 결합한 독특한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미국 진출도 기 대표의 작품이었다. 작년에는 데드버튼즈의 영국 앨범 계약이라는 쾌거를 이끌기도 했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2>을 보면, 기명신 대표는 어디서나 잘 살 사람이었다. 성격 좋고 에너지 넘치고 유능하기까지 한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2>에서도 기 대표는 출연 분량이 많지 않지만, 긍정적인 기운을 느끼게 하는 비타민 역할을 톡톡히 한다.

독립 음악생산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자립음악생산조합’은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기명신 대표의 부고를 전하며, '항상 선량하고 정의로움이 넘치셨던 고인께 자립음악생산조합도 그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라고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2010년 ‘인생엔 사랑과 록이 전부’라는 모토를 가진 러브락컴퍼니를 설립한 이래, 인디 밴드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기명신 대표는 록의 부흥을 위해 최일선에서 직접 발로 뛰어온 인물이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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