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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특종 뺏긴 베테랑 기자, KBS 떠난다최문호 기자, “KBS 사유화… 더 이상 변하지 않을 것 같아”
김수정 기자 | 승인 2016.03.11 16:19

‘불방’ 논란 끝에 지난달 2일 반쪽 방송된 KBS 대기획 <훈장>을 제작한 최문호 기자가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로 떠난다.

KBS는 탐사보도팀이 정부 상대 정보공개청구소송 등을 거쳐 장기간 취재해 온 <훈장>(1부 간첩과 훈장, 2부 친일과 훈장)을 당초 지난해 6월 방송하기로 했었으나, ‘메르스 사태’, ‘데스킹 필요’ 등의 이유를 달아 계속 미뤄왔다. 친일 행적자에 대한 훈장 수여가 가장 많았던 시기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정부였고, 제작 간부들이 삭제한 장면 역시 일본 기시 노부스케 총리에게 보낸 친서 등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권 눈치 보기 아니냐’는 해석이 안팎에서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2월 2일 1편 간첩과 훈장 내용이 방송됐으나 JTBC가 같은 소재로 3일 앞서 방송해 김이 빠졌다.

더구나 제작진이 불방을 우려하며 방송일자를 확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입장을 냈던 지난해 9월에는 탐사보도팀장과 제작 기자 2명이 타 부서로 배치돼 논란에 불이 붙기도 했다. 이때 최문호 기자는 당시 탐사보도팀 잔류를 희망했으나 2지망으로 쓴 라디오 편집 부서로 갔다. 11일 오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최문호 기자는 “(작년 방송 연기 사태를 겪으며) 더 이상 KBS가 변화하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며 “KBS가 사유화되고 있는데 거기에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1. KBS 퇴사를 언제 결심했나.

작년 여름부터 <훈장> 방송이 미뤄지고 있었다. 제작진과 간부들 사이에서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방송 연기 사태를 겪으며) ‘더 이상 KBS가 변화하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작년 말에 결심을 했다. 방송 연기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KBS가 공영방송이 아니고 ‘사유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에 의해 점유돼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KBS가 특정인들에 의해 사유화되고, 거기에 대해 반론이나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민주주의는 실수를 바로잡는 능력으로 발전하는 건데 (조직이)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6개월 가까이 연기되다 2월 2일 방송된 KBS 대기획 <훈장>

2. <훈장> 방송 연기 사태를 겪으면서 퇴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방송이 6개월이나 밀렸고, 중간에 제작진도 타 부서로 인사조치됐다. 당시 제작진은 회사의 집요한 개입을 비판했었는데, 내부 압박이 어느 정도로 심했던 것인가.

보통 입사 1년차 기자들이 사건 기사를 쓸 때 살인사건이라고 하면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내용이 제목에 들어간다. 그런데 <훈장>은 그냥 제목이 <훈장>이었다. 제작진은 훈장은 ‘소재’이지 프로그램 내용을 아우르는 제목이 될 수 없다고 계속해서 이의제기를 했지만 간부들은 <훈장>으로 하라고 했다. 음악감독, 성우(내레이션 담당)도 힘들어했다. 보통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편집 끝나면 편집본을 음악감독에게 보내고, 음악감독은 편집 흐름을 보면서 거기에 맞는 음악효과를 넣는다. 그런데 간부들이 음악감독을 소환해서 ‘음악이 너무 강하다’며 전혀 (극적인) 효과를 넣지 않게끔 했다. 성우가 원고 리딩하고 있을 때에도 감정을 다 빼고 무감각하게 읽으라고 했다.

정보공개 청구소송 이후 행자부가 훈장 수여 내역을 공개했지만 그 내용만으로는 기사를 쓸 수가 없다. 그걸 하나하나 구체화하는 것이 우리의 취재였던 것이고, 실제로 기자들이 열심히 해서 뭔가 새로운 실체를 밝혀냈다. (판결을 통해 간첩조작으로 판명된 사건에 대해서도) 간부들(시사제작국장, 탐사제작부장) 주장은 피해자들이 불법 감금, 고문, 체포를 당한 것은 맞지만, ‘간첩이 아니’지는 않다는 거였다. 진짜 간첩일 수 있다는 거였다.

2편(<친일과 훈장>)은 아무것도 진행이 안 됐다. (회사 인사 조치로) 제작기자 2명이 나왔(다른 부서로 갔)지만 (회사가) 의지가 있다면 탐사보도팀에서 계속 (제작)하면 된다. 그런데 이미 (팀을) 나온 제작진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거다.

3. ‘KBS가 더 이상 변하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한 이유는.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갔을 때 학기 초에 한 마디씩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때 “왜 KBS가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이런 풍파와 격랑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KBS가 이를 헤쳐나갈지, KBS가 더 커 나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만큼 내가 조직을 위해서 뭘 할 것인지를 늘 고민해 왔다.

조합 끝나고 탐사보도팀으로 간 것도 KBS의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헌재도 그랬고 <훈장>도 그랬다. 10년이나 공들인 취재다. 10년 전부터 자료 수집을 했다. 그게 어느 정도 됐으니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한 거고, 프로그램이 잘 되면 KBS에도 좋은 일이지 않나. 그런데 (방송 연기 사태를 겪으면서) 절벽을 느낀 거다. 그런 상황이 누적되니까 ‘아 내가 더 이상 KBS를 위해서 뭘 할 수 있는 부분이 없겠구나’라고 판단했다. 한때 희망이 있었지만 KBS가 바뀔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을 했다.

편성규약과 단체협약 등 노사합의에 근거해서 기자협회장이 아침편집회의에 들어가 의견을 표명한 것을 가지고, 부장들이 ‘압력’이라고 달려드는 조직이 제대로 된 조직인가? 반 강제적인 부장단 성명서에 이름을 넣었다가 나중에 기자들에게 본인의 양심과 소신을 밝힌 사람을 하루아침에 보직변경하고 백의종군하라는 게, 그게 기자들이 있는 조직이 맞는가?

수신료 액수를 비교하면서 BBC를 얘기할 것이 아니라 BBC의 좋은 기자사회 문화를 배워야 한다. 내부의 조직 규범, 그들이 해 온 독립성 역사가 담보되지 않으면 KBS 수신료 올리자고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그나마 방송은 중립적이었는데 계속해서 정파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KBS도 어려운 상황이다.

4. 고대영 사장 취임 이후 내부 분위기가 더 위축되었다고 보는지.

고대영 사장과 정지환 보도국장이 ‘KBS 사유화’의 정점을 찍고 있다고 본다. 고대영 사장 말만 들으면 BBC 제작가이드라인이 무슨 사장, 국장에게 대단한 재량권을 주는 제도로 보이지만, ‘데스킹 강화’라는 문구는 외부로부터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문구다. 데스크는 후배들의 기사를 감시하고 삭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선 기자와 시청자 사이에 존재하면서 ‘여론’을 반영해 주는 역할을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짚어내 일선 기자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데스크가 공론장에서 돌아가는 의견의 ‘기후’를 파악하지 못하면 안 된다. 그런데 (KBS는)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만 보고 있다.

또, 서로 ‘신뢰’하고 ‘합의’된 프로세스에 어긋나는 데스킹을 할 경우에는 (아래에서) 항의를 할 수 있다. 기자들이 (불합리한 지시에) 어필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합리적인 이의제기라면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기자들을 움켜쥐고 원하는 쪽으로 기사를 몰아가는 역할을 데스크가 한다. 그러니 BBC를 얘기해 봐야 소용이 없다. (* 고대영 사장은 지난해 11월 취임 당시 BBC 제작가이드라인을 언급하며 ‘데스킹 강화’를 예고한 바 있다)

5. 왜 뉴스타파를 선택했는지.

(퇴사 결심하면서 뉴스타파에 가겠다는 생각도) 거의 동시에 했다. KBS 기자들의 제작능력은 어느 언론사에 비해도 손색이 없다고 본다. 그 출중한 능력들이 사유화되면서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채,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문제다. 제가 올해 입사 20년차라 얼마 전 20년 (근속)패를 받았다. 20년을 돌이켜 보고 앞으로 10년을 생각해 보니 제가 KBS에서 할 게 없더라. KBS도 솔직히 저를 원하는 것 같지도 않고.

지금도 그렇지만, 2~3년 내에 ‘탐사보도’는 뉴스타파 쪽으로 수렴될 것 같다. 2005년 탐사보도팀이 처음 생겼을 때 멤버이기도 했고 그때부터 (탐사보도 쪽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조합 활동 끝나고도 <헌법재판소에 대한 심층 보고서>(2014년 7월 15일 방송), <훈장>(2016년 2월 2일 방송) 등을 만든 게 다 그 연장선에 있다. 지상파가 여전히 여론 영향력이 있긴 하지만 탐사보도는 2~3년 내에 뉴스타파가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후배, 동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주변에서는 아쉬워하는 경우도 있었고 ‘몸은 힘들겠지만 마음은 덜 힘들겠다’면서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었다.

6. 언제 뉴스타파에 합류하게 되나.

이번 달 안에 합류하게 될 것 같다. 오늘(11일)까지 출근했고 아까 사표를 냈다. 목요일(17일)까지는 휴가다. 사표는 아마 17일에 처리될 것 같다.

7.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말을 꼭 담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간부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KBS가 한 뉴스를 ‘빨갱이 뉴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지금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뉴스가 제대로 된 뉴스라고 한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뉴스는 지금의 간부들이 보도한 것이다. 본인들이 국회 반장도 하고 취재도 하면서. 지금 KBS뉴스를 비판하는 후배들이 한 뉴스가 아니라는 거다. 자기들이 한 뉴스를 부정하는 셈이다.

최문호 기자는 1995년 10월 입사해 올해로 20년차를 맞은 중견 기자다. 입사 후 사회부, 통일부, 정치팀을 거쳤고 2005년 탐사보도팀이 생겼을 때 창립멤버였다. KBS 새 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후 방송문화연구소, 탐사제작부 등을 거쳐 현재까지 라디오편집부에서 근무했으며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 언론정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간 한국방송대상,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이달의 기자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김수정 기자  girlspeac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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