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가 시범경기에서 만루 홈런을 쳐냈다. 첫 시범경기에서 3타석 연속 삼진을 당한 박병호는 이내 안타를 생산해내며 조금씩 적응하는 듯하더니, 오늘 경기에서는 홈런포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와 달리 김현수는 다섯 경기 연속 무안타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안정적인 박병호와 부담 가중되는 김현수, 결국 승부는 자신감에서 시작된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지명타자인 박병호가 1회 시작과 함께 만루 홈런을 쳐냈다. 시범경기이기는 하지만 박병호가 보여준 홈런은 올 시즌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반갑다. 박병호를 상징하는 것은 힘이다. 그리고 그 정수는 곧 홈런으로 귀결된다. 그런 점에서 시범경기임에도 홈런은 중요하게 다가온다.

박병호가 홈런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것과 달리, 볼티모어의 김현수는 여전히 안타를 쳐내지 못했다. 오늘 경기에서도 3타수 무안타에 그치며 5경기에서 16타수 무안타에 그치고 말았다. 그저 시범경기라고 위로를 할 수도 있지만 볼티모어의 팀 사정과 김현수가 가지고 있는 위상을 보면 위태롭게 다가온다.

미네소타 트윈스 한국인 타자 박병호가 7일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 샬럿의 샬럿 스포츠 파크에서 열린 탬파베이 레이스와 시범경기 1회초 2사 만루에서 좌중간을 넘어가는 그랜드슬램을 기록한 뒤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포트샬럿 AP=연합뉴스)

박병호와 김현수는 국내 프로야구를 평정한 최고의 타자들이다. 임펙트라는 측면에서는 단연 홈런왕인 박병호가 강렬하다. 하지만 꾸준함을 보면 김현수는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최고의 타자다. 안타 생산 능력이 탁월한 김현수는 많은 이들이 미국에서도 꼭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김현수에게 기회만 제대로 주어진다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가 처한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주전 자리를 확보하는 것부터가 그에게는 아직 난제다. 여기에 벅 쇼월터 감독의 성향을 보면 그가 꾸준하게 기회를 부여받고 자신감을 찾도록 기다려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한국 최고의 투수였던 윤석민 역시 쇼월터의 볼티모어에 몸을 담은 적이 있었다. 시범경기를 통해 입지를 다져야 했지만 여러 문제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윤석민은 마이너에 머문 뒤 다시 한국 프로리그로 돌아와야 했다.

간절하게 원했던 선수가 아닌 이상 쇼월터에게 한국인 선수들이 매력적인 존재는 아니어 보인다. 애리조나 시절의 김병현만이 강렬한 인상을 준 한국 선수였을 뿐 다른 이들과의 궁합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냉정하게 선수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은 감독의 임무다. 하지만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는 중요하다.

벅 쇼월터 볼티모어 감독 Ⓒ연합뉴스

그 선수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감독인지 아닌지에 따라 선수의 운명은 달라진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몰리터 감독은 박병호가 계약을 완료한 직후부터 그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고는 했다.

그가 적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정규리그에서는 꾸준하게 기다려주겠다는 말도 함께했다. 미네소타 팀에서는 그를 주전 선수로 인정했고, 그와 함께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런 안정감은 박병호의 심리 상태에도 긍정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감독이 믿어주고 강정호처럼 초반 익숙하지 않은 리그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는 말은 그 무엇보다 고맙고 소중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신뢰는 자연스럽게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다. 박병호가 첫 경기에서 세 번 연속 삼진을 당한 상황에서도 팬들 역시 느긋하게 그의 잠재력이 터지는 날을 기다릴 수 있었다.

언젠가 터질 것이고 터지기 시작하면 메이저리그라고 특별할 것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박병호가 그동안 보여준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박병호 개인의 능력에 미네소타 트윈스 팀의 전폭적인 지지가 더해지며 박병호의 성공은 당연함으로 다가온다.

시범경기 첫 홈런을 그랜드슬램으로 장식한 박병호(30·미네소타 트윈스) [ AP=연합뉴스 ]

문제는 김현수다. 그는 분명 뛰어난 선수이고 미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갖췄음은 명확하다. 박병호와 같은 홈런 타자는 아니지만 어느 상황에서도 안타를 쳐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라는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볼티모어와 계약에서 김현수가 놓친 것은 마이너 옵션이다.

25인 로스터에 들지 못하면 김현수의 메이저리그는 없다. 그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은 어쩌면 시범경기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 시범 경기에서 부진한다고 정규 시즌에서도 힘들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시범 경기는 그저 시범 경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주전이 아닌 선수가 그 좁은 문을 뚫고 정규 시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시범 경기 기록이 중요하다. 김현수에게는 그래서 시범 경기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안타 생산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받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현수가 5경기 연속 무안타에 그치는 현실은 불안하다. 김현수 스스로도 이제 타석에 서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런 부담이 긍정적으로 이어지면 좋지만 대부분은 자멸로 이끄는 이유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가 5일 오후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마이어스 센추리링크 스포츠콤플렉스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미네소타 트윈스의 경기 7회초 무사 1루, 2루 땅볼로 아웃된 뒤 더그아웃에서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수는 분명 좋은 선수다. 그리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 역시 메이저리그에서도 돋보이는 선수로 자리매김을 할 것이라는 확신도 든다. 하지만 기다려주지 않는 벅 쇼월터에게 김현수가 어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박병호는 든든한 믿음 속에 차분하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메이저 적응을 하고 있다. 하지만 김현수는 시범 경기가 끝난 후 자신의 처지가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불안한 경기를 치르고 있단 점이 씁쓸하다.

박병호에게 시범 경기는 말 그대로 시범일 뿐이다. 메이저리그가 무엇인지 분위기를 파악하고 경기 흐름과 상대 선수들을 비교해볼 수 있는 계기일 뿐이다. 하지만 김현수에게 시범 경기는 생존의 문제다. 그가 시범 경기에서 벅 쇼월터의 마음을 빼앗지 못하면 그는 시즌 시작을 마이너에서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불안하다.

이런 불안을 끝내는 것은 역시 자신감이다. 한국 최고의 타자답게 좀 더 당당하게 경기에 임한다면 곧 안타가 나오게 될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첫 안타가 터지기 시작하면 김현수가 당연하게도 볼티모어 오리올스 주전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조바심보다는 자신감으로 경기에 임하는 김현수의 모습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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