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전후 나타난 상황은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와 그들의 무리인 노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관계부처 장관 기자회견으로 사전 압박을 하는 것은 물론, 민중총궐기 당일에는 엄청난 양의 최루액과 물대포를 쏘았고, 참가자들에게는 기소와 소환장을 남발했다. 결과적으로 더 다양한 종류의 비정규직을 만들어, 고용안정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받는 ‘노동개혁’이 현 정부가 밀어붙이는 대표적인 정책이라는 점 또한 상징적이다.

정부는 원활한 국정 운영에 ‘방해’가 된다는 뿌리 깊은 인식 아래, 노조를 불순세력으로 낙인찍고 활동을 위축시키는 등 끊임없이 “가만히 있으라”는 메시지를 강조해 왔다. 이는 언론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가속화된 언론장악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더 공고해졌다. 노조의 공정방송 활동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무시하는가 하면, 노조 전임자 복귀 명령, 노조 투표 방해 등 압박이 더욱 더 심해지는 상황이다. 미디어스는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 언론사에서 벌어진 ‘노조 탄압’ 사례를 정리해 보았다.

1. 노조 공개비난 및 보고서 훼손

지난해 9월 MBC에서는, 보도국장이 자사 보도를 비판하는 민주언론실천위원회(이하 민실위)의 보고서를 공개적으로 훼손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원순 시장 아들 주신 씨의 병역기피 의혹 보도, 정종섭 장관의 ‘총선필승’ 건배사 사건 늑장보도, 대통령 동생인 박근령 씨의 막말 논란 누락 등을 짚은 보고서를 찢은 것이다. 이밖에도 최기화 보도국장은 민실위 취재 불응 및 민실위 간사와의 접촉 보고를 지시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본부)는 일련의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해 법적 조치를 취했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달 “MBC 사측이 노조 민실위의 취재 불응을 지시하고 민실위 간사와의 접촉 보고를 지시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결정했다. 다만 민실위 보고서 훼손에 대해서는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하지 않았다. ‘보고서 훼손 사태’ 이전에도 MBC는 민실위의 보도 지적을 불인정하고, 민실위를 “왜곡조작위원회”로 폄하하는 등 비난조의 입장을 거듭 발표한 바 있다. MBC는 ‘성완종 리스트’를 비롯한 자사 보도를 비판한 노조 민실위 보고서를 ‘왜곡조작위원회의 밀실 보고서’라며 원색 비난했다.

2. 공정방송 활동에 ‘편집권 침해’ 낙인, 징계까지

공정방송 활동을 부정하고 징계까지 추진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KBS 보도국 간부들은 자사의 세월호 청문회 보도 부실함을 지적한 KBS기자협회장의 ‘편집회의 내 발언’을 두고 “편집권 침해”로 몰았다. 청문회 3일 중 이틀 동안 나간 뉴스가 두 문장짜리 단신 1개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지환 보도국장은 “아이템에 대한 기자협회장의 발언은 부장들에게 압박으로 비춰질 수 있고, 따라서 편집권 침해”라고 주장했고, 국장단은 같은 취지의 연명 성명까지 발표했다. “취재 및 제작 실무자는 편성·보도·제작상의 의사결정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그 결정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권리를 갖는다”는 KBS <방송편성규약>과 “보도본부 내 뉴스 기획·편집회의에 평기자 대표가 참여한다. 평기자 대표는 편집회의 이외에 뉴스 최종 편집과정에서 실무자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는 보도위원회의 ‘운영 세칙’을 무시한 처사였다. 해당 성명에 이름을 올렸던 한 간부는 뒤늦게 서명 참여에 대해 기자들에게 사과했고, 이후 평기자로 발령 나기도 했다.

KBS는 지난달 공정방송 감시활동을 주 업무로 하는 기자 2명에게 각각 감봉, 견책의 징계를 내렸다. ⓒ미디어스

KBS의 ‘광폭 행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달에는 공정방송 감시활동을 주 업무로 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 노조) 전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와 KBS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에게, “부당한 압박을 행사했다”면서 각각 감봉과 견책의 징계를 내렸다. 보도 공정성 제고를 위한 자사 보도 감시를 부정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안팎에서 나왔지만 사측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KBS 기자들은 기수별 성명으로 징계 철회를 요구했는데, 이 중 39기 기자들의 성명이 전자게시관리지침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삭제돼 파장이 일기도 했다.

3. 노조 집행부 투표소 회사 ‘밖’에 설치하라?

지난해 3월 치러진 언론노조 MBC본부 11기 집행부 선거 투표소는 사측의 불허로 부득이하게 회사 ‘밖’에 설치됐다. “내방객 편의를 위해 노사 모두 (사내에) 임시 구조물 설치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MBC본부는 경영센터 앞 광장 등 2곳에 야외 투표소를 만들어야 했다. 노조원들의 원활한 투표를 방해하는 행위를 하고도 MBC는 “미디어센터 내 노조 사무실과 집기 등 노조활동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노조 투표 역시 노조 사무실에서 수용할 수 있다는 게 회사의 입장”이라며 ‘선심을 쓰고 있다’는 식의 입장을 냈다.

2015년 3월, 회사 밖에 설치된 언론노조 MBC본부 투표소 ⓒ미디어스

4. 노조 전임자 복귀 명령

MBC는 또한 지난해 12월, 노동법의 허점을 틈타 일방적으로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를 선언하고 노조 전임자 전원에게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다. 그간 타임오프의 근거가 됐던 “근로자는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하고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할 수 있다”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4조(노동조합의 전임자) 제1항에서 ‘사용자의 동의’ 부분을 강조한 것이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노조 파괴’를 위한 시도라고 비판했으나, 사측은 지난달 지역MBC에도 똑같이 전임자들에게 업무복귀를 지시했다. 노조 전임자들은 개인 연차를 소진하며 노조 활동을 해 왔으나 연차를 다 써 버려 업무복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측은 이들의 가족 돌봄 휴가, 안식년, 무급 전임 신청 등의 요구도 모두 거부했다.

지난해 12월, 사상 초유의 노조 전임자 복귀 명령에 대해 언론노조 MBC본부가 피케팅을 벌이고 있다. ⓒ미디어스

5. 시국선언 참여에 ‘징계’ 엄포

지난해 14월 정부의 무리한 추진과 ‘역사왜곡 우려’로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에 소속된 언론인들도 시국선언 성명을 냈다. 이때 연합뉴스, KBS, YTN, EBS 등에서는 사규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며 사내 구성원들을 압박했다. 정치적 중립성과 보도 객관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 사측의 ‘징계 시사’ 이유였다. 이후,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는 노조위원장에 결국 징계를 내렸다.

연합뉴스는 지난해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노조위원장을 징계했다. ⓒ미디어스

6. 직능단체 근태관리, 공제 끊기도

“가만히 있으라”는 사측의 압박은 노조에 이어 각 직종을 대표하는 직능단체에게까지 뻗쳤다. 지난 1월, KBS는 내부 직능단체장에게 근태관리 강화를 예고했다. 또한 외부 직능단체장의 경우 현업과 직능단체장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겸직 신청서’도 제출하게끔 했다. KBS는 “직능단체장은 법으로 보장받는 노동조합과는 달리 ‘임의단체’이기 때문에 타임오프제 등 근로면제 대상이 아니었는데 그간 근무시간에 협회 활동과 외부 활동을 했던 만큼, 오랜 관행을 개선해 ‘일하는 분위기를 바로 잡겠다’는 취지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내부에서는 결과적으로 협회 활동을 위축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보다 앞서 MBC에서는 직능단체들의 공제를 사측이 일방적으로 끊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MBC는 2014년 7월부터 MBC PD협회, 기자협회, 방송기술인협회와 동호회 등의 공제를 끊었다. ‘방송 공정성’과 관련해 특히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해 왔던 직능단체들이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협회 위축의 의도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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