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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행 눈길을 걷다’, 신비로운 설경 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이야기[블로그와]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너돌양 | 승인 2016.03.04 11:47

김희정 감독의 영화 <설행_눈길을 걷다>의 정우(김태훈 분)는 알코올중독 환자다. 엄마 손에 이끌려 수녀들이 운영하는 요양원을 찾은 정우는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생각도, 알코올 의존증을 치료하겠다는 마음도 전혀 없다. 틈만 나면 술을 찾지만, 그 술을 마시지 못해 괴로운 정우에게 따스한 눈빛을 보내는 수녀 마리아(박소담 분)가 그의 곁으로 성큼 다가온다.

참으로 미스터리하고도 난해한 영화다. 주인공이 요양원에 들어가고 나오기까지의 순행적 구성을 취한다고 하나, 인과적 질문으로는 도무지 명쾌히 답이 내려지지 않는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정우가 겪은 현실은 수녀들이 운영하는 요양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그에게 호의를 베푸는 수녀 마리아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 정우가 직접 경험한 일인지, 아니면 꿈속에서 본 장면인지 혼란스럽다. 어디까지가 정우의 현실이고, 꿈인지 분명하지 않은 경계를 유지해나가는 영화는 모호함을 가득 품은 채 막을 내린다.

영화 <설행_눈길을 걷다> 스틸 이미지

하지만 애초 감독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픽션 세계에서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객들은 그저 정우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에 동참할 뿐이다.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을 보이는 정우는 그로 인한 단기기억상실 증세를 가지고 있고, 방금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정우는 자신을 괴롭히는 기억을 지우기 위해 더욱 술을 찾는 것 같기도 하다. 술을 마시면 잠시라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계속 술을 마시고, 이제는 술이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무감각의 상태에 들어갔다.

술을 하도 마시다보니 취해있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정우는 술에서 깨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알코올 중독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술에서 깨어나는 순간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현실과 맞닥뜨려야한다는 두려움이 그를 술독으로 몰아넣는다. 원장 수녀는 정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기도만 해줄 수 있을 뿐, 결국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정우는 자신과 싸우겠다는 의지도 없고, 그의 치료를 위해 팔을 걷어 부치는 수녀들의 도움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수녀들 중에서도 유독 정우를 살갑게 챙기는 마리아의 헌신에도 그는 도무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영화 <설행_눈길을 걷다> 메인 포스터

<설행_눈길을 걷다>는 눈으로 보고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통해 미궁에 빠져 헤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무력감에 빠진 사람들,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또 다른 이의 노력을 담는다. 개인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원장 수녀의 말마따나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홀로 외로운 투쟁에 나선 이에게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를 해준다고 한들, 결국은 스스로가 문제를 깨닫고 맞서야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누군가를 향한 절실한 마음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환기시킨다. 우리 모두는 점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앞서, 황량한 겨울 풍경을 뒤로하고 쓸쓸히 걸어가는 한 남자와 그가 외롭지 않게 항상 그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을 자임하는 한 여자의 모습이 계속 눈에 아른거린다. 모든 장면을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하는 대신 관객 스스로의 상상에 맡기며 잔상을 남기는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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