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넷 신문은 2016년 2월 22일 ‘블로그와’면에서 <시그널 9화- 조진웅이 남긴 4개의 사건과 풀리지 않은 오대양 사건 그리고 세월호>이라는 제목으로 “천장에서 발견된 30여구의 사체 중 3개의 자살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교살되었단 주장이 있었음에도 이 사건은 종결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교점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박순자와 구원파 교주인 유병언이다. 박순자가 몸을 담았던 곳이 바로 유병언의 구원파였기 때문이다.”, “오대양 교주인 박순자가 구원파 신도에게 거액을 건넸고, 그 금액이 다시 세모 측으로 유입된 증거가 있었음에도 유병언은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그가 소유하고 있던 세모의 유람선은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을 태운 채 위험한 운항을 했고, 처참한 죽음으로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또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1987년 오대양 사건은 구원파와 연결되어 있고, 이는 곧 잊을 수 없는 세월호와 직결된단 점이다. 사이비 종교 집단의 집단 자살로 알려진 '오대양 사건'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군가에 의해 저질러진 살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넘긴 그 사건에서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구원파다.”, “오대양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망자들이 조달한 사채가 구원파를 거쳐 세모 측으로 유입됐음을 나타내는 수표 기록이 발견됐다고 알려진다. 오대양과 구원파 그리고 세모가 관련되어 있음이 명확한 상황에서도 이 사건은 그렇게 사이비 종교 집단의 집단 자살 사건으로 무마되었다”라는 내용을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오대양사건은 1987년과 1988년 그리고 1991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 차례나 재조사를 받았음에도 수사 결과는 외부 세력과 관련 없는 집단자살로 동일하게 결론이 난 사건이며,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다수의 언론에서도 이미 보도된 사실이 있고, 검찰 또한 지난 2014년 5월 21일 공문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해 준 바 있습니다. 또한 오대양 사건과 구원파가 연결되어 있고 이것이 세월호와 직결된다는 것은 확인된바 없습니다.

또 박순자가 오대양 설립이전에 물품 대금을 기독교복음침례회 교인에게 사업관계로 송금한 사실이 있으나 이는 정상적인 거래일 뿐 오대양 사건과 관련이 없고, 오대양사건은 1987년과 1988년 그리고 1991년 세 번의 수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외부 세력과 관련 없는 집단자살로 결론이 난 사건으로 유병언 전 회장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검찰이 지난 2014년 5월 21일 또 한 번 공문을 통해서 확인해 준 바 있습니다. 세모 유람선이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위험한 운항을 하여 사망사고가 난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해당 보도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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