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문재인, 손학규 등 야권 정치 인사들을 ‘5대 해코지 정치인’, ‘5대 잔머리 정치인’이라고 폄훼한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이 법정제재를 받았다. 심의위원들은 특별한 근거 없이 정치인들을 희화화하는 랭킹을 내보낸 것에 대해 “저급 토론”, “시정잡배 수준의 이야기”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은 지난달 2일 방송에서 ‘5대 해코지 정치인’을 꼽았다. 1위는 문재인 의원, 2위는 이종찬 의원, 3위는 권은희 의원, 4위는 손학규 의원, 5위는 안철수 의원으로 4명이 야당 정치인이었다. 그 다음에는 ‘5대 잔머리 정치인’의 순위를 매겼다. 1위 정동영 의원, 2위 원유철 의원, 3위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4위 윤상현 의원, 5위 박원순 시장 순이었다.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3조(대담·토론프로그램 등) 5항을 위반해 심의대상이 됐다. 제13조 5항은 “대단·토론프로그램 및 이와 유사한 형식을 사용한 시사프로그램에서의 진행자 또는 출연자는 타인(자연인과 법인, 기타 단체를 포함한다)을 조롱 또는 희화화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이다.

1월 2일자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 방송 일부

2일 오후 3시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김성묵, 이하 방송소위)에 의견진술 차 출석한 TV조선 정한 시사제작부장은 “이렇게 되면(이 정도 방송을 심의 규정 위반이라고 한다면) 시사 프로그램에서 어떤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가 된 순위 매기기에 대해서는 “1위, 2위 순서 상의 근거는 사실 없다. 다만 이슈가 좀 더 될 만한 것들을 상위 랭크한 것이긴 한데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황당한 답을 내놨다.

방송소위 위원들은 ‘아무 근거 없이’ 정치인을 단순 조롱, 희화화한 내용을 방송한 것을 한 목소리로 질타했다. 하남신 위원은 “정치부 기자들에게 의견을 듣거나, 정치학자 등을 부른다든지 뭔가 작은 근거라도 가지고 (방송을) 했어야 하지 않나”라며 “제작자로서 ‘이런 정도를 문제 삼으면 시사 프로그램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데 그런 인식이나 발상이 위험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하남신 위원은 “여기 등장하는 내용은 (정치인을) 희화화하고 깎아내리고 비아냥거리고 깐죽대는 저급 토론이라고 본다. 보면서 저는 역겨웠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속성을 지닌 공인이지만, 특정 사람을 흠집내기 위한 의도가 컸다고 본다. 정치 선정성이 심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잔머리, 해코지 등 타이틀 설정 자체가 부정적이고 희화화하는 내용이다. 이런 것들이 정치 불신만 가중시키고 시청자들에게 (정치) 신뢰를 떨어뜨리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함귀용 위원 역시 “<정치옥타곤> 랭킹 관련해서 한두 차례 심의한 기억이 나는데 제 느낌은, ‘할 것 없으니까 해코지, 잔머리 이런 랭킹을 한다’는 것이다. 제가 보기에는 (이런 랭킹) 자체가 우리 심의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정잡배들이 밥 먹으면서 얘기하는 수준”이라고 일갈했다.

장낙인 위원은 “풍자하는 것은 좋다. YTN <돌발영상>에서는 ‘이렇게 하면 돌발영상에 나와’라고 의원들끼리 하는 말까지 나온 적이 있다. 이런 게 풍자다. 듣는 사람도 같이 웃을 수 있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게 풍자인데, (<정치옥타곤> 랭킹은) 비아냥”이라고 비판했다.

TV조선 측은 1월 16일자로 특정 정치인에 대한 차트를 만드는 것을 폐지했다면서 ‘진정성에 대해서는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으나 법정제재를 피해가지 못했다. 방송소위는 합의를 통해 방송사 재허가 시 감점 요인이 되는 법정제재 ‘주의’(-1점)로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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