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만 존재해왔던 중력파(gravitational wave)가 확인됐다는 발표를 접했다. 미천한 두뇌의 용량을 훌쩍 초과하는 물리과학사적인 발견이지만, 최소한 수많은 과학자들이 주장해온 것처럼 질량이 있는 물체가 주위의 시공간을 휘게 만든다는 사실에 다시금 감탄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세기에 전자기파를 발견해 지금의 방송통신 환경을 구축한 인류가 향후 언젠가 중력파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온다면, 과연 미래는 어떠한 미디어환경으로 진화할지 자못 궁금했다.

사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보여줬던 우주물리학적인 현상들은 아주 멋있었지만, 물리적인 신체가 멀고먼 우주세계와 상대적 시공간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사실상 미래에도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대신, 영화 ‘아바타’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경험은 고도화된 미디어기술을 통해 직접적인 경험에 가까울 정도로 가능해질 것이다. 사실상 미래의 고도화된 미디어환경에서는 인간의 감각으로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없을 것이고, 미디어를 통해 현실에 가까운 오감 경험이 충분히 충족될 것이다. 그리고 직접적인 경험에 가까운 우주세계의 경험과 시공간이 휘어지는 현상의 체험도 고도화된 미디어기술을 통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입체영상(3D) 기술들, 그리고 초고화질(UHD)을 접목하는 영상구현 시스템의 발전과 함께 데이터 전송기술(속도의 고도화, 실시간 상호작용 등)의 혁신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기술들이 보다 고도화된다면 직접적인 경험에 가까운 일들이 미디어를 통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실현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있다. 미래의 고도화된 미디어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인간의 필요와 욕구, 그리고 실제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원해주는 사회구조적인 역할이 중요하다. 즉,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고 실제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지속가능’한지,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 발전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지를 말한다.

최근 ‘지속가능’이란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 지속가능발전, 지속가능정책, 지속가능에너지, 지속가능신앙, 심지어 과거 지속가능백수’까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사회가 점차 성숙해지면서, 기준점이 불분명한 단기적 성과위주의 목표인 ‘성공추구’보다는, 현실 그대로를 직시하는 동시에 미래의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속가능’을 고민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방송 산업의 현실을 보면, 미래 미디어환경을 상상하는 것도 매우 부족해 보이지만, 미래 미디어환경을 구축해 나가기 위한 정책도 그다지 없어 보인다. 그러니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앞서 상상해본 미래의 고도화된 미디어환경은 개인적인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나라의 방송 영역이 발전하기 위해 ‘지속가능’ 여부가 중요하다는 이유를 거창하게 미래의 고도화된 미디어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밑바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까지도 없다. 단지 지금 우리나라 방송 산업 현실에 ‘지속가능’ 여부가 절실하고,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방송 역시도 사실상 영화의 흥행 기준처럼 높은 시청률을 하나의 목표로 두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방송은 지속가능한 방송콘텐츠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방송은 방송법에 따른 방송콘텐츠 장르편성비율 유지(소외계층을 고려한 콘텐츠 역시 포함하여)를 위해 다양한 제작/공급을 실천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방송의 공공적 책임과 공익성 실천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방송은 이를 실천해나가는 것조차 어려워지는 현실이다.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기는커녕 방송의 역할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니, 방송의 ‘지속가능’ 여부를 수시로 판단하고, 앞으로도 방송이 ‘지속가능’하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실상 지금 우리나라의 미디어환경은 방송 영역 내(지상파, 케이블, 위성, IPTV 등)의 사업자 간 경쟁뿐만 아니라, 이종미디어(방송과 다른 영역의 온라인 및 스마트 서비스, 게임 등)의 경쟁 역시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러한 경쟁상황은 미디어 산업의 기본 재원이 되는 광고재원 빼앗기를 부추기고, 결국 광고주들의 한정된 광고비 집행금액을 어떻게 하면 더 가져올지를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방송영역의 광고경쟁력은 하락했고, 실제로 온라인․스마트미디어에 광고비를 건네주는 상황들이 실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방송통신광고비조사 보고서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사회시스템의 급속한 발전과 맞물려 고도성장을 지속해 온 미디어 영역은 최근 들어 더욱 예측하기 힘든 기술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미 수많은 이용자들은 N스크린 환경에서 시간적/공간적 불편함이 최소화된 서비스를 경험하고, 즐기고, 누리고 있다. 대중교통이나 공원, 카페 등에서 스마트 미디어를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이용하는 사람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콘텐츠 소비행태는 단순한 시공간성의 편리성 때문만이 아닌, 수많은 양질의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특히, 재미있고 필요해서 바로 시청하고 싶지만, 기다려야만 했었던 양질의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나 즐기고 싶은 이용자의 소구가 플랫폼 기술발전과 맞물려 시공간의 구애 없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와 같은 소비행태가 그간의 실시간 방송광고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만들었고, 점차 방송광고비가 비실시간 영역으로 건너가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방송콘텐츠의 가치와 이용자들의 소구가 오히려 방송콘텐츠의 ‘지속가능’에 위기를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전송기술 변화에 따른 위기와는 달리, 플랫폼 사업자로 인한 보다 더 직접적인 위기 역시 발생되고 있다. 방송콘텐츠를 제작/공급하는 제작영역에 대한 가치 평가와 대가 산정이 저가화/염가화되고 있는 문제점이다. 아무리 시청률이 높은 방송콘텐츠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제한된 광고수익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그런 이유로 영화시장과는 달리 일부 인기 프로그램의 수익만으로는 다양한 방송콘텐츠를 제작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최근 콘텐츠 사업자들이 힘들게 제작한 방송콘텐츠들은 플랫폼 사업자들과의 협상과정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고 저가상품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방송콘텐츠 제작 영역(노동력을 투입한 생산 영역)의 가치가, 유통 영역(공급 플랫폼을 갖춘 시장 지배적 사업 영역)의 가격 조정에 의해 휘둘리는 경향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최근 SK텔레콤/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플랫폼 인수합병 건도 이러한 위기를 고조시키는 하나의 예다.

또한, 방송콘텐츠를 해외로 수출하던 한류의 흐름도 일본의 ‘혐한’ 풍조 속에서 콘텐츠 수출이 위축되고 수익감소가 나타났다. 그리고 중국의 포맷 표절 및 방송콘텐츠 단가 낮추기, 방송콘텐츠 심의제재를 통한 수입단가 낮추기 등으로 인해 아무리 콘텐츠가 훌륭해도 수익은 제한되는 상황이 발생되고 있다. 수익성이 낮은 국가군에서 한류가 여전히 인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방송콘텐츠 제작영역에서 ‘지속가능’의 희망은 되어주질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도 이처럼 방송콘텐츠 ‘지속가능’에 위기가 이어진다면 방송 산업 영역은 어떻게 될까? 방송 산업의 황폐화가 자명한 이치로 보이지만 실상 정부의 정책당국이나 거대 플랫폼을 꿈꾸는 사업자들은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방송콘텐츠 제작영역에서 콘텐츠 사업자들이 더 이상 힘들어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당장 플랫폼 사업자들은 값싼 외산 콘텐츠를 들여와 더빙으로 시간을 때울 것이다. 당장은 재미도 있고, 어쩌면 큰 공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우리문화와 우리정서를 담는 콘텐츠, 우리사회의 현실을 담는 콘텐츠, 우리나라의 문제를 고발하는 콘텐츠는 방송 산업 영역에서 협소해지거나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답은 뻔하다. 방송콘텐츠 사업자들이 적정한 가치를 인정받고 대가를 받아, 다시 신명나게 양질의 방송콘텐츠를 제작하도록 해주는 방송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올해 1월 업무계획 발표(안)에서 방송콘텐츠의 경쟁력 강화를 중요한 주제로 제시하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제작 재원의 확충이 언급은 되고 있지만, 방법론적으로 제작 재원에 도움이 되는 실효성 측면은 매우 부족해 보인다. 특히, 방송콘텐츠 분야의 위기를 적절히 이해하고 준비한 계획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방송 산업 활성화에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방송콘텐츠 제작 및 공급의 활성화라는 것을 잊지 말고 방송콘텐츠 사업자들이 신명나게 일하는 ‘지속가능 방송콘텐츠’ 환경을 만들도록 정책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미디어의 지속적인 발전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 미디어 기술이 점차 고도화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지속가능 방송콘텐츠’를 고민하고 정책방안을 숙의해야 하는 시기를 지나쳐 버리면 되돌릴 수 없는 방송 산업 황폐화라는 정책실패만이 메아리로 되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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