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체류하면서 아깝게 느끼는 세금을 꼽으라면 단연 방송수신료(Rundfunkgebuehr)다. 유학생들이나 이주자들이 방송수신료를 아까워하는 이유는 그 동안 국내에서 납부했던 방송수신료가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낮았기 때문이다. 국내방송수신료를 유로로 환산하면 2유로 남짓한 수준이지만, 독일은 8배에 달하는 17유로 가량이기에 체감하는 부담이 크다. 게다가 2013년도 연방방송협약(Rundfunkstaatsvertrag)이 개정되면서 방송수신료 징수대상이 ‘방송수신이 가능한 기기를 소유한 가구’에서 ‘등록된 가구’로 변경되면서 실질적으로 모든 유학생들이 방송수신료를 납부하게 된다.

방송수신료 징수대상 확대는 독일 내에서도 논쟁거리다.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충실하게 못한다고 생각하는 독일인들은 방송수신료를 피하기 위해 온라인포럼이나 기타채널들을 통해서 납세회피(?)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한 기사에 따르면 2014년~2015년 중순까지 약 4백만에 달하는 등록가구에서 방송수신료를 납부하지 않았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니, 방송수신료에 저항하는 독일인들이 생각보다 많아 보인다.

국내에서도 방송수신료는 독일과는 다른 시각에서 뜨거운 감자다. 공영방송사들이 경영난과 수익구조안정화를 근거로 방송수신료 인상을 요구하지만 사회적 반발로 인해 추진되지 못하고 있으며, 정계와 학계에서도 공익성이 먼저냐 경영난 해소가 먼저냐를 두고 논쟁을 거듭하면서 10년에 가까운 쟁점으로 남아있다. 방송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항상 포함되는 해외사례들 중 독일의 사례도 포함된다. 독일에서 마지막으로 방송수신료가 인상되었던 2009년도, 징수대상 확대에 따른 재원 확보 안정화는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된 이유도 해외사례를 들어 정당성의 근거를 찾으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독일 방송수신료 납부 신청 및 정보 포털(http://www.rundfunkbeitrag.de/)

독일 방송수신료는 인상만 되었나?

독일미디어청연합(die Medienanstalten: ALM)은 11차 연방방송협약을 개정하면서 2009년부터 적용될 방송수신료를 2005년 책정된 17.03유로에서 17.98유로(약 5.28% 증세)로 책정한다. 1991년 통독직후 19.00마르크(약 9.71451유로)였음을 감안하면 약 20년 동안 두 배로 늘어난 격이다. 2013년 징수대상 확대가 결정되었을 때 까지도 17.98유로가 징수되었다. 여기까지는 국내에 알려진 방송수신료 변천사다.

알려지지 않은 방송수신료 제도는 2015년 2월 부분 발효된 연방방송협약부터이다. 독일 공영방송의 수신료징수와 재정분할을 담당하는 ‘방송재정수요조사심의위원회’(Kommission zur Ermittlung des Finanzbedarfs der Rundfunkanstalten)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방송운영기금을 31억 8,140만 유로로 예측하여 방송수신료가 실제 공영방송사의 필요운영자금보다 많이 걷힐 것으로 예측했다. 즉 2014년까지 적용되었던 방송수신료를 지속할 경우 제1공영방송사 ARD는 5억 1,450만 유로, 제2공영방송사 ZDF가 8,320만 유로의 추가 이익이 발생한다는 예상이었다. 이에 따라 방송재정수요조사심의위원회는 방송수신료의 초과과세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여 17.25유로를 미디어청연합에 제안했지만, 연합측은 일부만을 받아들여 48센트가 인하된 17.50유로로 새 방송수신료를 책정하게 된다. 조정된 금액은 2015년부터 적용되었다.

2016년 2월 방송수신료에 대한 변경요청은 또 다시 제기되었다. 라인란트-팔츠(Rheinland-Pfalz)의 주(州)정부 수상이자 방송위원회 의장인 말루-드레이어(Malu Dreyer, SPD)는 지난 2월 9일 현재 방송수신료에서 29센트를 낮추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에 대해 작센안할트(Sachsen-Anhalt),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Mecklenburg-Vorpommern), 니더작센 및 작센(Sachsen) 주 등의 수상들은 찬성을 표명하여 감세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해당안건은 2016년 2월 24일 공개될 예정이며, 3월 16일과 17일에 라이프치히(Leipzig)에서 개최예정인 미디어청연합 회의에서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내용을 보면 단순히 정부나 방송사들은 방송수신료수입을 증가시키기위해서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사운영에 필요한 만큼의 금액만을 충당하는 차원에서 이를 책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방송수신료의 평등한 분배

방송수신료를 가구별로 충당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비단 징수과정에서만 있지는 않다. 그래서 징수된 방송수신료를 평등하게 운영하기 위해 형성된 조직이 바로 앞서 잠시 언급한 방송재정수요조사심의위원회다. 이 위원회는 방송수신료를 제1공영방송 회원사들에게 분배하고 방송수신료 집행을 감시하는 단체로서 연방방송협약 15차 개정에 따른 부속조항 ‘방송분담금조약’(Rundfunkbeitragsstaatsvertrag: RBStV)에 의거하여 운영된다.

방송수신료 분담원칙의 대표적인 기준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재정균등화원칙(Finanzausgleichmasse)이다. 재정균등화원칙은 할당받은 방송수신료금을 재정이 부족한 지역에 나눠주는 방식인데, 인구에 따른 방송수신료 징수비율차이가 공영방송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규칙이다. 재정평등화가 지원되는 제1공영방송회원사는 라디오브레멘과 자틀란트방송이다.

재정균등화분담비율

방송기여도분담비율

2009년~2012년

2013년~2016년

~ 2014년

2015년 ~ 이후

br(바이에른방송)

15.62%

15.62%

15.90%

16.45%

hr(헤센방송)

1.95%

1.95%

7.40%

7.40%

MDR(중부독일방송)

6.84%

6.84%

10.85%

10.60%

NDR(북부독일방송)

13.10%

13.10%

17.60%

17.65%

RB(라디오브레멘)

-46.24%

-46.24%

0.75%

0.75%

rbb(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

0%

0%

6.60%

6.60%

SR(자를란트방송)

-53.76%

-53.76%

1.25%

1.52%

SWR(남부독일방송)

17.99%

17.99%

18.20%

18.20%

WDR(서부독일방송)

44.50%

44.50%

21.40%

21.10%

두 번째는 방송기여도분담비율(Fernsehvertragsschluessel)이다. 방송기여도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독일공영방송시스템을 간단히 알아야한다. 독일공영방송은 제1공영방송사 ARD와 제2공영방송사 ZDF가 있다. 전자는 독일연방 16개 주(州)의 지역 미디어청 14개, 방송사 9개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반면 후자는 단일 기관이다. ARD는 전국송출채널 Das Erste를 송출하면서 각 지역공영방송사들이 권역에 따라 지역공영방송과 자체케이블/라디오방송 등을 운영한다. 방송기여도분담은 전국송출채널에 지역방송사들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비율이며, 인구와 재정에 따라 3년 주기로 재설정된다. 즉, 방송수신료를 많이 걷는 지역일수록 인구비율이 높다는 근거이기 때문에 전국 방송에서도 그 만큼 송출량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마지막으로는 각 공영방송사들의 프로그램계획에 대한 지원여부다. 공영방송사들은 매년도 말 다음 연도의 방송사운영방안과 프로그램편성계획을 방송재정수요조사위원회와 ARD연합에 제출하여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는 공공성이 담보된 프로그램을 원칙으로 하는 독일방송의 특성이 반영된 사례인데, 국민이 납부한 방송수신료를 공정하게 집행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제출된 심사안에 따라서 프로그램의 진행여부가 결정되며, 위원회는 이에 대한 방송수신료분담을 결정하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방송수신료 집행과정에서 한 가지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방송수신료를 걷고, 분담하며, 감사까지 집행하는 방송재정수요조사위원회는 어떻게 운영되는 가이다. 이 위원회는 방송사와 절대적으로 별도의 구조와 조직을 갖고 있는 독립위원회로 위치를 보장받는다. 다른 위원회와 역할이 중첩되지도 않고, 오롯이 재정관련 항목만 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운용을 우려한 미디어청연합은 12차 연방방송협약의 개정을 통해 방송재정수요조사위원회의 활동보고서와 예산집행근거를 각 연방정부와 미디어청연합에 제출하도록 명시하여 상호 감사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독일 방송수신료에 대한 편견

독일 방송수신료가 어떤 사업에서 어떻게 운영되는가는 다음의 몇 차례 시리즈로 제공할 계획이다. 그 전에 한 가지 알아둘 부분은 독일의 방송수신료가 높게 책정된 만큼 집행이나 사업이 다양하고 공공성이(명목에 그칠 수도 있지만) 확보되는 장치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방송수신료는 실제로 복잡다단한 단계를 거쳐 분배되고 집행을 따른다. 단순히 재정에 필요하다 요구해서 충당되는 것도 아니며, 높은 금액을 아무 근거 없이 국민들에게 부담시키지 않는다. 최소한의 장치를 확보한 상태에서 운영되고 있는 합리적 체계이다.

국내 공영방송사들은 이러한 장치들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독일이 방송수신료를 높게 책정했다는 사실 ‘하나’만 언급한다. 차후 소개할 계획이지만 독일의 공영방송은 재원이 방송수신료이기 때문에 방송광고 집행이 거의 불가능하다. 전체 방송시간의 2% 내외, 제한된 시간에만 허용된 광고, 간접광고/PPL금지 등의 법으로 거의 광고를 찾아보기 어려움에도 공영방송에서 방송광고가 너무 많이 허용되고 있다는 정계의 비판도 거세다. 광고총량제로 방송사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국내 공영방송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다. 방송수신료를 정당하게 운영할 기관도 없고, 합리적인 방송체계를 구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방송수신료 인상을 요구하는 그들의 주장이 타당하지 못한 이유다. 다음 글에서는 독일 공영방송의 재원 현황과 방송수신료가 사용된 사업들을 간략하게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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