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자사 보도 감시 활동을 한 2명의 기자를 징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들과 같은 기수인 KBS 보도본부 27기, 33기 기자들이 연명 성명을 내어 징계 시도를 강력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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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지난 15일, 새 노조 공추위 전 간사였던 A기자와 KBS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인 B기자가 자사 보도 문제제기를 한 것을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직장 내 질서를 훼손했다”면서 징계에 회부됐다고 통보했다. (▷ 관련기사 : ‘자사 보도 비판’ 입 막는 KBS, 기자들 징계 추진)

A기자와 같은 기수인 KBS 보도본부 27기 기자 20명은 17일 성명을 내어 “기자를 상대로 보도 내용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고 해당 리포트의 근거에 대해 문제제기성 발언을 했다는 것이 징계 대상이라니. 그럴듯한 구실로도 보이지 않는 징계 사유에 분노를 넘어 서글픔마저 느낀다”며 “숱한 갈등과 반목 속에서도 말하는 입에 재갈을 물린 적은 없었다”고 개탄했다.

27기 기자들은 “공정성을 금과옥조처럼 지켜야 할 뉴스가 그릇되고 편향된 길로 나아가면 우리 스스로 당연히 질문해야 한다. 특정 세력을 편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소한 문제를 과장해 부풀린 건 아닌지, 어떤 음험한 의도를 숨긴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며 “A기자는 당시 본부노조(새 노조) 공추위 간사로서 자신의 공적 책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27기 기자들은 “진정으로 우려스러운 건 사실 징계가 아니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 말하지 않는 양심의 마비와 싸늘한 침묵, 그것이 악순환이 돼 보도본부 안에서 언로가 막힌다면 앞으로 우린 그 누구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줄 수 있겠는가”라며 사측에 징계 절차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B기자와 같은 기수인 33기 기자 21명은 18일 짧은 성명으로 사측의 징계 시도를 비판했다. 33기 기자들은 “동기 김준범은 평소 말이 많지 않았다. 할 말만 짧게 하고 묵묵히 취재만 하는 기자였다. 그를 위한 우리의 변호는, 그래서 길지 않으려 한다”며 “징계에는 근거가 없다. 제 발 저린 자들의 우스운 호통만 있을 뿐이다. 어이없는 징계를 거두라”고 밝혔다.

“보도본부 간부들, 최소한의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징계 시도”

같은 날, KBS기자협회 이병도 협회장도 “보도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성실과 품위유지 의무를 위배했다”는 사측의 징계 사유와 관련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병도 협회장은 “B기자는 <청년 대한민국 중계차>와 관련해 업체 선정 경위가 석연치 않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후, 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으로서 묻는 것임을 미리 밝히고 (담당 기자에게) 섭외 경위 등을 물었다. 보도에 대한 어떤 평가나 비판, 요구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병도 협회장은 “징계회부서에 나와 있듯이 ‘정부에서 밀어주는 업체이지 않느냐’라든가 ‘업체 대표가 박근혜 정부 인수위 출신이니 오해 소지가 다분하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며 “업체 대표가 인수위 청년위원 출신인 것이 사실인 상황에서 업체 선정이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 물어본 것이 부당한 개입인가. 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으로서, 아니 한 명의 기자 선배로서도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A기자의 징계에 대해서도 “A기자는 <서울 시내 교통 마비에 논술 수험생 발 ‘동동’>(링크) 리포트에 대해 인터뷰이가 논술 수험생의 학부모가 맞는지, 정말로 많은 피해 수험생들이 발생했는지를 물었다. 노사 단협으로 운영되는 공정방송위원회 노측 간사로서 지극히 당연한 행위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기자의 문제제기 후 일부 내용이 수정돼 방송됐음에도, 해당 리포트는 과장된 보도, 불명확한 보도로 대내외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고대영 사장 청문회에도 ‘문제의 리포트’로 등장했다”고 덧붙였다.

이병도 협회장은 징계 절차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확한 통화 내용이 어땠는지 알기 위해서는 당사자 확인이 필수적인데도 보도본부장 이하 어떤 간부도 A기자와 B기자에게 아무런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점, A기자-B기자와 각각 통화한 기자들이 보도 관련 압박을 받았다고 판단하지 않았는데도 제3자인 보도본부 간부들이 취재기자들의 양심의 자유가 침해됐으리라고 추정하고 징계사유로 삼은 점 등을 들어 “이치에 맞지 않는 궤변”이라고 밝혔다.

이병도 협회장은 “황당함과 분노를 넘어 서글픔을 느낀다. 이른바 ‘공정보도 감시’ 이런 표현들을 떠나서, 쉽게 말하면 다 잘해보자고 한 것 아닌가. 우리 뉴스 좀 더 공정하게 하자는 것 아닌가. KBS뉴스가 사장과 본부장, 국장 등 일부의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내부의 건전한 비판과 감시를 위해 사실확인을 한 것을 두고 보도 독립성을 침해했다니 어떻게 이런 적반하장식의 사유가 있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유치한 시도를 당장 그만두십시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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