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노량진에 위치한 노량진수산시장이 내홍을 겪고 있다. 연말 연초 대목을 지나면서 오히려 웃음꽃이 피어나야 하지만 연일 상인들의 집회가 일어나고 있으며 수협쪽에서 돌리는 흉흉한 전단지들이 나돈다. 도대체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도매시장 현대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이미 서울시가 추진한 가락시장이라는 사례가 있다. 서울시 농수산물공사가 3천억원을 들여서 완료한 현대화사업 1단계의 결과로 준공된 송파구의 가락몰은 작년에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회센터와 주방용품점 등만 입점했을 뿐 시장의 핵심 기능인 청과 직판장 등이 입주를 거부하고 있다. 특히 가락몰의 경우에는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특정감사(2014년 8월)에서만 총 20건에 달하는 지적사항이 나올 정도로 계획에서부터 사업비 관리까지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3단계까지 진행될 예정인 가락시장 현대화사업의 총 사업비가 2005년 당초 5,055억원에서 2012년 변경계획에 따른 1조2,106억원으로 4,528억원이나 늘어났다. 이런 사업비의 부담은 고스란히 지방공사의 재정부담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임차상인들의 관리비로 전가된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세부적인 사항에서 차이가 날 뿐, 가락시장 현대화사업의 문제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기존의 노후화된 재래시장을 최신 유통시설이 갖춰진 현대화 시장으로 전환하겠다는 것도 같고, 사업 추진단계에서부터 형식적인 상인의견수렴과 요식절차에 멈춘 합의문을 전제로 밀어붙이든 사업을 추진하는 양태도 닮았다. 무엇보다 시장의 현대화 사업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업을 위해 시장을 현대화하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상황인 것도 똑같다. 앞으로 이 코너를 통해서 세 차례에 걸쳐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 노량진수산시장은 수도권내 최대 어류도매시장으로 새벽에는 경매(도매판매)가 낮시간에는 잔품판매(소매판매)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지하철역과 연계되는 고가 도로와 옥상 주차장은 노량진수산시장의 상징과 같다. 반면, 기존 시장과 동떨어진 곳에 지어진 현대화시장은 상인에게도 이용자 시민에게도 낯선 곳이다.

공기업 민영화와 WTO 투자협정

노량진수산시장은 일제 강점기인 1927년 서울역 인근 의주로에 설립된 경성수산을 토대로, 1971년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자회사인 한국냉장이 현재 위치에 도매시장을 이전 설치한 수산물 전문 도매시장이다. 원래 농수산물의 유통이 가지는 공익성 때문에 도매시장과 경매, 중도매는 모두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집행해왔다. 수도권의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이 서울시 산하 공사인 농수산물공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 하에서 추진된 <공기업민영화 추진계획>에 의해 매각될 위기에 처한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기업, 금융, 노동 등 4대 개혁과제를 제시하는 한편, 주요 공기업 및 자회사에 대한 매각계획을 수립한다. 이에 따라 포스코 등이 포함된 1차 공기업 민영화 계획이 1998년 7월 확정되고, 노량진수산시장을 운영했던 한국냉장은 뒤이어 발표된 2차 공기업 민영화 계획에 포함되었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한국냉장과 노량진수산시장은 동시에 매각대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노량진수산시장의 공공성을 고려해 매각하지 않는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공기업 매각으로 인해 1998년 대비 2002년에는 공기업 수에서 20.8%, 자회사 수에서 78.3%, 고용자 수에서 61.7%의 감축이 이루어졌다(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기업 민영화 성과평가 및 향후과제, 2011). 이 과정에서 한국냉장은 수입육 유통업을 하는 민간기업인 (주)아이델리에 매각되는데 당시 협상가격 산정에는 삼성증권이 주도했다. 이런 조건에서 노량진수산시장은 수협으로 이관된다. 즉, 매각 등의 방식이 아니라 시장의 공익성을 고려해 가장 유사한 사업영역을 가진 수협에 떼어준 셈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도매시장의 기능, 수산물 유통구조에 대한 고민 등이 전제되었다기 보다는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당시 한국냉장의 자회사였던 노량진수산시장을 편의적으로 분리했다는데 있다. 이에 대해 2005년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한 KDI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2002년 노량진수산시장이 농수산물유통공사 자회사인 한국냉장으로부터 수협중앙회로 이관된 배경을 보면, 공기업 매각 과정에서 노량진 수산시장 자체의 민영화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산시장의 모기업인 한국냉장의 민영화에 목적이 있었으며, 노량진수산시장은 도매시장의 공공성을 감안하여 비영리단체인 수협중앙회에서 인수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에 의해 수협으로 이관되었음.”(KDI,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 현대화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2005. 34쪽)

이로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수협이 노량진수산시장을 맡게 된 것은 정부정책적 차원에서 추진된 공기업 민영화 과정의 부수적 조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수협의 능동적인 노력이나 혹은 시장 상인들의 의견이 반영될 소지는 없었다. 이런 특징은 현재 논란 중인 ‘현대화사업’의 정책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은 2004년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 수산물유통체계 선진화 방안으로 ‘수산물도매시장 현대화 추진’이 포함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특별위원회는 김대중 정부 당시 WTO 뉴라운드 통상협상과 관련하여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2001년 대통령지시에 의해 설치된 대통령자문기구로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구다.

당시 계획에 따르면 현재 시장부지와 유통공사부지를 합친 27,000평의 땅에 지상 40층, 지하 5층의 복합시설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9,4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황당할 만한 규모가 아니라 애초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 자체가 시설의 노후화 등의 자체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WTO 투자협정을 통해서 수산물에 대한 수입개발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사전에 수산물도매시장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선것이라는 맥락이다. 표현으로는 유통선진화를 통해서 경쟁력을 강화해서 수산물 수입이 확대되더라도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이지만, 사실 그 경쟁력이라는 것이 수산물유통과정의 자체 경쟁력보다는 부대사업을 강화함으로서 기존 도매유통과정은 대형화와 간소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은 시장 내부의 필요에 의해 논의되고 의견이 수렴되는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에서 시행된 공기업 민영화와 WTO 투자협정의 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구조조정이라는 맥락에서 주어진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유통선진화인가, 수익사업 강화인가?

문제는 이렇게 노량진수산시장을 떠맡게 된 수협중앙회의 상황이 좋지 않았던 데 있다. 2003년 9월에 <수산업협동조합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수협중앙회가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노량진 수산시장을 떠맡은 때가 2002년인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노량진수산시장을 맡은 수협중앙회 입장에서는 시장에 대한 투자나 시설개선을 할 여력이 전무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해당 법률이 제정되기 전 해인 2002년말 결산결과 총 98개 수협중 58개 수협이 자본잠식상태에 있고, 자본잠식액이 1998년 1,085억원에 비해 3배가량 증가한 5,510억원에 이르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가 경영개선을 위한 공적자금을 투자하더라도 부실화된 일선 수협에 대한 구조개선을 강력히 추진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역수협에 대한 구조개선은 차일피일 미뤄진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수협이 지역 기득권세력과 마찬가지였고 이들은 어촌 지역구의 국회의원을 통해서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쥔 정부에 압력을 행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협의 경영개선은 제대로 이뤄지기 만무했다. 결국 해양수산부 장관 출신인 노무현 정부 하에서 수협의 개선은 이뤄지지 못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같은 12월 15일 수협개혁위원회를 발족시킨다. “그 동안 수협법 개정 및 국정과제인 수협정상화 및 구조조정계획 수립을 위해 수협과 협의해 왔으나 수협의 개혁의지가 부족한데다 정부와의 이견차이로 근본적 개혁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개혁위원회에서 도출된 사항 중 제도개선 필요성 과제는 수협법 개정안에 반영할 예정이다.”라는 당시 정부 관계자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수협은 지역수협의 로비력을 바탕으로 각종 개혁조치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사실상 외과적 개혁대상이 된 셈이다. 수협개혁위원회의 활동 결과를 바탕으로 2010년 <수산물협동조합법> 개정안이 위원회 대안으로 통과된다. 주요한 내용을 보면 수산업협동조합의 경영 전문화, 경제사업의 활성화 및 어업인 지원 강화 등을 위하여 중앙회 회장 및 지구별수협의 조합장의 비상임 명예직화, 지도ㆍ경제사업부문의 통합 및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중앙회의 인사추천위원회 도입 등이다. 수협은 이미 2001년에 1조1,581억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예금보험공사로부터 대출받은 상태였지만, 2009년까지 매년 3,000억원 이상의 미처리결손금이 발생할 정도로 부실했다. 오죽하면, 이런 부채들을 상환하느라 ‘협동조합’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 였다.

이렇게 수협이 부실의 늪에 빠져 있는 중간에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도 당초 취지와는 어긋나는 모습을 보인다. 정부와 수협이 노량진수산시장의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수산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유통구조의 개선이다. 수산물 유통구조는 ① 위판장, 중도매인 및 소비지 도매시장을 거치는 계통판매(총 6단계) ② 장외수집상 및 장외도매를 거치는 비계통판매(총 4단계)로 구분되는데, 1980년에는 계통판매를 통한 수산물 유통이 전체의 73.2%를 차지하였으나 강제상장제 폐지, 양식어업 생산량 및 수입생산물 공급량 증가 및 대형유통업체 성장에 따라 2011년에는 전체의 45.7%로 축소되는 등 전통적인 산지시장과 도매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상태였다(한국해양수산개발원, 소비지 수산물분산물류센터 건립 실행 방안 연구, 2012. 6).

▲ 계통판매는 중도매인을 매개로 품목별, 지역별 분배가 이뤄지지만 비계통판매는 중도매인을 거치지 않는 방식으로 유통된다

사실 비계통판매의 비중이 높아진데에는 대형마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이들이 기존의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고 산지에서 직접 조달하는 방식을 택한 탓이 컸다. 이는 자동적으로 기존 산지-도매 유통망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유통생태계를 파괴했다. 정부는 해외수산물의 가격과 대형유통업체의 가격과 비교해 기존 도매시장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유통과정의 단순화를 통한 ‘가격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유도한 것이다. 결국 기존 도매시장의 대형마트화라는 방식의 접근법이 유통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적용되었다. 그럼에도 기존 시장부지를 활용하는 것이 유지되었던 2007년까지는 유통의 선진화라는 방향이 정책적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긴 했지만 시장 자체를 위한 계획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침이 2007년 4월부터 갑자기 바뀐다. 그 전까지만 해도 기존 시장을 재건축하는 것을 전제로 기존 부지내 혹은 추가 부지내에 임시시장을 조성하는 방안이었다. 그런데 2007년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대체부지를 마련해 이전하는 방안으로 추진되는데 해양수산부의 설명에 따르면 자체부지에 재건축을 하게 될 경우 시설이 협소하여 시장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고 이에 대해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아예 대체부지를 마련해 상인들을 이주시키고 기존 부지를 수산복합테마파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애초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의 목표가 유통선진화를 통한 도매시장 기능의 강화였던데서 점차적으로 관광자원화라는 맥락으로 강조점이 옮겨간다는 데 있다.

해양수산부는 대체부지 확보방안을 확정한 후인 2007년 8월 29일에 <노량진수산시장, 제2의 아셈몰로 거듭난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낸다. 이에 따르면, 애초에는 점차 노후화되어 가는 시설물을 현대화해야 하지만 공사기간 동안 시장을 대체할 만한 부지를 찾을 수가 없어, 불가피하게 수산시장 북쪽에 “임시 시장건물”을 세운 뒤 2011년까지 자체 부지를 활용하여 재건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협소한 현 수산시장 여건상 도저히 시장 기능을 유지하기 어렵고, 공사기간 동안 기존 상권이 위축될 뿐 아니라 소음·공해 등으로 민원이 발생할 경우 순조로운 공사 진행이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어 결국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을 전면 재검토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2007년 8월에 해수부와 농림부는 노량진시장 서측 인접지역에 건립한 지 39년 된 농산물비축기지를 수협중앙회에서 재건축해 농림부에 기부채납하고, 대신 농림부의 비축기지 부지 일부를 제공받아 노량진수산시장 건립부지로 활용키로 한 내용의 협약서에 최종 서명함으로서,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장현대화사업의 목표를 “제2의 아셈몰”로 제시하는 것도 노골적이지만, 정부가 핑계로 제시한 근거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부지를 확보할 수 없어 ‘임시 시장건물’ 방식의 사업이 어렵다는 주장을 보자. 2005년 KDI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한 사업방식은 임시 시장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때 고려했던 내용은 현재 시장부지 내 외곽지역 등으로 기존 상가들을 산개시키고 순차적으로 재건축을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물론 추가부지 확보 방안도 있었지만 그럴 경우 부지매입비용이 늘어나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되었다(KDI 예비타당성 결과에 대한 내용은 다음 편 글에서 자세히 다룬다). 따라서 단순히 부지확보가 어렵다는 것은 솔직한 근거라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다음 근거로 제시한 민원은 어떤가. 단서는 2011년 수협이 동작구청에 낸 도시계획 변경신청서에 따른 의견청취안에서 찾을 수 있다. 알다시피 노량진수산시장은 노량역을 지나는 노면 철로와 노들길로 이어지는 강변도로 사이에 있다. 따라서 여기서 공사가 진행될 때 발생하는 소음과 교통불편은 주변지역의 일반 거주지나 상업지역일리 없다. 실제로 2011년 의견청취 당시 주민의견 1건과 부서의견 1건이 접수되었는데, 부서의견은 서울시 도시계획과였고 주민의견은 (주)케이미트 즉 과거 한냉 측에서 제출한 것이다. 따라서 공사에 따른 민원이 우려된다는 2007년 당시 해양수산부의 입장은 (주)케이미트의 입장을 반영한 것일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2007년 사업방식의 변경은 ‘불가피’해서라기 보다는 그와 같은 사업방식이 필요해졌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정리하자면, 2007년까지 기존 시장부지 내에서의 재건축 방식으로 추진되었던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이 어떤 맥락에서 신축이전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기존 시장부지는 ‘제2의 아셈몰’과 같은 방식으로 개발하는 방침이 수립된다. 이런 변화가 노량진수산시장의 시장 기능을 강화한 것인가 아니면 부실화된 수협의 경영상 필요에 의해 수익사업의 추진이 필요했기 때문인가. 적어도 2007년 해양수산부가 제시한 부지매입의 어려움이나 민원이라는 두 가지 근거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사유임에는 틀림없다.

관광과 외식산업이 노량진수산시장의 미래인가

현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수협에 가지고 있는 태도는 한마디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협이 사업을 추진해온 과정을 보면 뚜렷한 근거도 없이 사업의 내용이나 방향이 변경된다. 특히 작년 8월에 수협이 상인들과의 사전협의 없이 카지노를 골자로 하는 리조트사업 신청서를 문화관광체육부에 제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리조트 사업이 시장활성화나 도매기능 강화와 어떤 맥락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시장을 이끌어왔던 상인들을 정체불명의 건물로 몰아넣고 기존 시장부지에 신축시장 건물보다 훨씬 큰 리조트를 만든다는 수협의 태도는 선의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런 수협의 태도변화에는 해양수산부 등 정부차원의 정책변화가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7월 해양수산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는데, 여기에 노량진수산시장이 주요한 사업 중 하나로 등장한다. 여러가지 내용 중, 노량진수산시장에 대해서는 “도매시장 제도개선과 함께 도매시장의 시설 현대화 사업도 적극 추진하여 물류 환경을 개선하고 소비자의 편의성도 제고해 나갈 계획”이라고 하면서, 현재 현대화가 진행 중인 노량진수산시장은 ‘15년까지 선진 유통시설 건립을 위한 1단계 사업을 완료하고, 관광과 외식산업을 연계한 “수산물 복합공간단지”로 조성하기 위한 2단계 사업도 차질없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정부 주도의 관광지 개발사업에 시장을 들러리 세우는 방침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수협과 중앙정부의 정책방향이 널뛰기 하듯 오고가는 와중에서도 ‘왜 그런지’에 대해 상인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부실했다. 수협은 수십차례의 협의 횟수를 강조하지만, 사실 10여년 동안 이렇게 좌충우돌하는 계획을 상인들이 제대로 이해했을리 만무하다.

김대중 정부에서 추진한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안그래도 부실 투성이였던 수협에 떠넘겨진 노량진 수산시장은 WTO 투자협정을 위해 유통과정 개선이라는 명복의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그것이 시장기능의 다양화하는 방식의 개발사업이었다. 노무현 정부 말미에 아예 시장을 이전하고 해당 부지를 복합개발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은, 한미FTA에 의해 수입수산물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장기능이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노골적으로 ‘관광자원화’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유통과정의 선진화니, 시장기능의 강화니 하는 것은 뒷전이 되었다. 중앙정부의 정책변화가 있었다면,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나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2005년 KDI 예비타당성조사의 비용편익분석을 근거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이 갈등이 벌어진 배경이다.

▲ 수협 측이 일방적으로 점포추첨을 진행하면서 상인들에게 배포한 전달지의 일부다. ‘더 이상 추첨은 없다’는 단정적인 문구와 ‘명도 및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는 협박이 서늘하다. 지난 10여년 동안 수협의 사업체 중 흑자를 낸 몇 안되는 노량진수산시장은 대부분 상인들의 임대료로 운영되어 왔다. 이들이 지금 상인들에게 보이는 태도가 이렇다.

이런 지경인데도 노량진 상인들의 욕심이고 무지에 의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왜 정부의 정책실패와 변화에 대한 비용을 상인들이 일방적으로 부담해야 하는가. 왜 수협의 부실과 경영실패를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분담해야 하는가. 현재 수협 측은 일방적으로 신축건물에 대한 점포 추첨을 진행하고 있다. 이 추첨에 참여하지 않은 상인들에게는 추가적인 추첨 기회는 없을 것이라 협박하면서, 3월 15일이 지나면 명도소송을 통해서 이전하지 않는 상인들을 내쫒겠다고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수산물 도매시장이 이렇게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김상철 2004년부터 진보정당의 당직자로 서울시 행정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맡아 일하고 있다. 현재는 노동당서울시당 위원장이며, 문화연대, 나라살림연구소, 예술인소셜유니온에서도 활동 중이다. <정치를 탐하다>(2014,꿈꾸는사람들), <무상교통>(2014, 이매진)이라는 책을 펴냈으며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2014, 삶창)라는 책에 참여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노동과 인간중심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도시사회주의자'의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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