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주의 BEST : ‘엄마의 전쟁’ 제작진은 보고 배워라!
KBS <내 친구는 일곱 살> (2월 6일~10일 방송)

SBS <엄마의 전쟁>은 엄마가 전쟁에서 후퇴해야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강요했다. 그러나 KBS <내 친구는 일곱 살>은 후퇴할 필요 없다고, 새로운 아군을 투입하면 된다고 다독인다. <내 친구는 일곱 살>은 2개월 동안 “혼자서 컴퓨터 하고 휴대전화 만지고 TV보면서 지내”는 맞벌이 가정 자녀들과 “온종일 TV만 보고 앉아있다 누웠다가” 반복하는 할배, 할매들을 짝꿍으로 만들어줬다.

사람 대신 TV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공통점으로 70살이 넘는 나이차를 극복한 그들은 지식 대신 감정을 공유했다.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고, 경운기를 타고 소풍을 가며, 잔디밭에서 땀이 날 만큼 춤추고, 돗자리 깔고 앉아 서로의 얼굴을 그렸다. 직접 시장에 와서 야채 이름을 맞히고, 들판에서 직접 잡은 메뚜기를 튀겨 먹는 활동은 아이들에게는 산교육이자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을 끄집어내는 경험이 되었다.

▲ 2월 6일~10일 방송된 KBS <내 친구는 일곱 살>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서로를 빨리 이해하고 가까워질 수 있었던 데에는 제작진의 남다른 배려가 숨어 있었다. 짝꿍을 선정할 때도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교육학 박사가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의 희망과 어르신의 체력을 꼼꼼하게 고려해 선정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몇 번이고 되묻거나 춤을 잘 추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무조건 다그치지 않고, 귀마개를 해보게 하거나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게 하는 등 직접 어르신들의 입장이 되어보도록 했다. 세심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내 친구는 일곱 살>이 의미 있는 이유는, 어르신이나 아이들의 외로움에 대해 누구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를 사전 인터뷰할 때 18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녔다, 아이들이 혼자 TV나 휴대폰을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고 대답해도 제작진은 부모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르신들을 아군으로 데려와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면서 부모를 안심시켰다. “(집에 놀러) 오면 가기 바쁜” 손녀들과 함께 자본 적도 없는 박금향 할머니는 여섯 살 윤서와 함께 누워 자는 경험을 했고, 또래에 비해 말이 늦어 언어치료까지 받았던 윤서는 무조건 잘한다고 칭찬해주는 박금향 할머니 덕분에 말도 많아지고 “아빠 보고 싶었다”는 감정 표현까지 서슴없이 하게 되었다.

<엄마의 전쟁>의 결론은 여전히 워킹맘이 일이냐, 육아냐를 놓고 고민하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해하는 것이었다. <내 친구는 일곱 살>에서는 모두가 웃었다. 할매, 할배들은 오랜만에 아이들을 안아보면서 외로움을 달랬고, 아이들은 어르신들의 사랑을 한껏 받으면서 자연 속에서 뛰어놀았으며, 부모들은 아이들을 변하게 해 준 어르신과 제작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누구도 탓하지 않았고, 모두가 서로에게 고마워했다. 엄마가 전쟁에 뛰어들지 않고도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이주의 WOSRT : 어쩌다 꽉 막힌 부부상담 토크쇼가 되었나
O tvN <어쩌다 어른> (2월 11일 방송)

O tvN <어쩌다 어른>의 출발은 여타 토크쇼에서 다루지 않은, 녹록치 않은 삶을 사는 어른들만의 고민을 다루는 것이었다. 그 중심에는 좀처럼 예능에 출연하지 않았던 김상중이 있었다. 토크 주제도, 진행자도 신선했다. 그러나 지난 11일 ‘더 새로워진 39금 토크쇼’를 표방한 <어쩌다 어른>은 꽉 막힌 부부상담 토크쇼로 변질되었다.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아내 때문에 고민인 남편,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남편 때문에 고민인 아내의 사연을 다뤘다. 어른들 고민의 폭넓은 영역이 부부 문제로 좁혀졌고, 그 안에서도 이미 진부할 대로 진부해진 ‘맞벌이 부부 문제’를 첫 번째 주제로 내세웠다.

역시나 ‘맞벌이 부부’ 토크를 지배하는 건 워킹맘들의 죄책감이었다. 김지윤은 아들이 유치원에서 그린 가족 그림에서 엄마가 없었다며 씁쓸해했고, 윤손하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아침드라마 촬영으로 아무것도 챙겨주지 못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워킹맘 자녀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영희’들이 죄책감으로 똘똘 뭉친 경험담을 털어놓는 동안, ‘철수’들은 김태우처럼 여자들의 신세한탄에 맞장구를 치며 ‘좋은 남편’ 행세를 하거나 이휘재처럼 “남자들이 버는 건 생활비로 쓰고 여자들이 버는 건 비상금으로 쓰는 게 되게 억울하다”면서 이기적인 남편이 되었다. 여자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도 늘 나쁜 엄마 대접을 받고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남편이 되는, 틀에 박힌 대립구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토크를 이어나갔다.

▲ 2월 11일 방송된 O tvN <어쩌다 어른>

특히 이휘재의 태도는 불편하다 못해 불쾌했다. “아내의 강의료가 기름값도 안 나오는 액수인데 아내가 꽃을 너무 좋아하니까 외조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이휘재의 발언은 겉으로 보면 아내의 사회생활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천천히 곱씹어보면 아내의 페이를 굉장히 우습게 생각하는 동시에 ‘내가 너의 사회생활을 허락한다’는 우월감이 묻어난다. 심지어 아내한테 “여보 땅을 파봐, 10만원이 나오나”라는 막말까지 했다고 실토하는 그의 무의식 속에는 돈 버는 남자라는 우월감이 잠재되어 있다.

물론 어른들의 고민 중 부부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고, 이것을 잘 다루기만 한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사연을 다루는 패널들의 태도다. “나를 찾고 싶어 여행을 간다”는 남편의 사연을 접한 패널들은 고민의 본질을 이해하기에 앞서 ‘무리수’를 던지기 시작했다.

유난희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 다른 여자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넘겨짚었고, 김일중은 “사실 담배 한 대 피면서도 나를 찾을 수 있다”면서 남편의 고민의 무게를 멋대로 재단했으며, 이휘재는 “머리숱이 없는 아는 형님이 머리를 심고 하루 만에 나를 찾았다”면서 고민의 핵심에서 완전히 벗어난 발언을 했다.

고민의 영역도, 고민을 다루는 시야도 좁아졌다. <어쩌다 어른>은 정말 어쩌다 이렇게 꽉 막힌 토크쇼가 되었을까.

이가온 / TV평론가
웹진 텐아시아와 잡지사 하이컷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 회사를 퇴사한 후에도 여전히 TV를 놓지 못하고, TV평론으로 밥벌이하는 30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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