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해고’가 아니라고 한다. 근로기준법에 어디에도 ‘사용자는 근로자를 자를 수 있다’는 내용이 없다고 한다. 맞다. 법이 인정하는 ‘합법적 해고’는 근로기준법 제23조의 징계해고와 24조 정리해고뿐이다(물론 이것도 지방‧중앙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밖에도 일반해고(통상해고)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노동법에는 없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공정인사 지침’은 일반해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다. 노동부는 “현저히 업무능력이 부족한 경우 등의 통상해고는 새로이 만든 제도가 아니다”라며 “법과 판례에 있는 징계․정리․통상해고 등의 유형과 유형별 정당한 이유와 절차 등 제한사항을 구체적으로 명확히 했다”고 설명한다.

이를 두고 정부와 재계는 ‘노동계가 주장하는 쉬운 해고는 절대 없다’며 오히려 ‘해고의 요건이 까다로워졌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쉬운 해고가 가능해졌다’고 반박한다. 주장이 엇갈리는 단서는 노동부 지침 때문이다. 노동부는 ‘사업장에 극히 예외적으로 업무능력이 현저히 낮거나 근무성적이 부진하여 주변 동료 근로자에게 부담이 되는 경우 등’에 ①근로자 대표 등이 참여해 평가기준을 만들고 ②공정한 기준에 의한 평가를 진행하고 ③교육훈련과 업무전환 등 해고회피 노력을 한다면 “근로계약 해지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리하자면 노동부의 공정인사 지침은 근로기준법과 판례에 등장하는 ‘해고요건으로서의 정당한 이유와 절차’를 분석한 것이다. ‘법원이 정당한 해고 사유로 인정한 것은 이런 것들이고 우리가 알려준 절차를 만들어 해고한다면 이는 정당한 해고가 될 수 있다’는 식이다. 쉽게 말해 이 지침은 ‘저성과자를 합법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다.

놀라운 것은 보수신문의 해석이다. 조선일보 문갑식 선임기자는 11일 <근로기준법도 안 읽고 ‘쉬운 해고’라니>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노동계 주장을 반박하며 “법전을 들춰만 봐도 ‘쉬운 해고’라는 말 자체가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문갑식 기자는 노사가 공히 A씨를 저성과자로 인정하고, A에게 교육훈련을 통해 능력을 기르도록 배려하거나 업무를 전환하는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고, 그래도 제몫을 못해야 해고할 수 있다면서 “이 절차를 다 밟으려면 최소한 몇 년이 걸릴 텐데 이게 ‘쉬운 해고’인가?”라고 되물었다.

▲조선일보 2016년 2월11일자 35면에 실린 문갑식 선임기자의 칼럼

일견 맞는 말이다. 세상에 쉬운 해고는 없다. 그러나 노동부 지침은 ‘학대 해고’를 유도한다. 양대 지침 이전인 2014년에 노사합의로 이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한 KT를 보자. 2014년 KT 노사는 인사평가에서 두 번 연속 최하등급을 받은 직원을 ‘면직’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 절차도 정부 지침에 나온 내용과 유사하다. 이는 KT가 과거 민주노조 성향 직원과 희망퇴직 거부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가동했다가 법원에서 ‘불법’ 판결을 받은 ‘C-Player 프로그램’의 세련된 버전이다.

법원 판결로 드러난 CP프로그램의 실체는 이렇다. KT는 희망퇴직을 거부한 114 상담원에게 전신주에 올려 보냈고 또 영업을 시켰다. 성과가 없자 KT는 경고를 반복했고 조직적으로 ‘저성과자’를 소외시켰다. 버티다 못한 직원들은 회사를 관뒀다. KT의 CP프로그램, 면직제도와 유사한 노동부의 지침은 그래서 노동자에게 매우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학대’ 프로그램이다.

정부의 지침은 모든 현장에 적용된다. 저성과자 산정 근거가 될 수 있는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집행지침’은 전체 직원의 10% 이상을 최하위등급으로 평가하도록 하는데 이럴 경우 한국의 노동자 2587만9천명 중 258만7900여명이 저성과자로 평가돼 퇴출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노동부 지침은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에서 더 ‘빠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조선일보 문갑식 기자가 인용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자 2587만9천여명 중 1842만명만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회사에 다닌다. 실제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는 이중 10.3%인 190만명에 불과하다. 2400만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조직조차 갖고 있지 못한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 보수신문 기자는 여전히 부채질을 한다. 문갑식 기자는 “모든 게 다 수포로 돌아간 지금 근로자가 할 일은 근로기준법 통독”이라며 “조문을 들추면 왜 46년 전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충고한다. 맞다. 근로기준법에 ‘쉬운 해고’는 없다. 문 기자가 노동부 지침을 ‘어려운 해고’로 오독한 것은 근로기준법만 읽었기 때문이다. 노동부 지침은 근로기준법에는 없는 내용이다.

적어도 언론을 자처한다면 자본이 지독하게 학대해 내보낸 정규직 노동자들, 아주 쉽게 내보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아니,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보수언론은 사건을 비틀고 교묘하게 본질을 감추면서 자본이 원하는 쉬운 해고의 지름길을 만들고 있다. 문갑식 기자 말대로 “무식은 괴담의 씨앗이요,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지금 보수언론은 괴담보다 무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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