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에 다시 촛불이 밝혀졌다.

지난 5월 3일 미친쇠고기, 미친 교육 이후 국민들은 정부에 요구할 것이 있거나 시정을 촉구할 때마다 촛불을 들었다. 마치 정전이 되었을 때 서둘러 촛불을 켜듯 그렇게 국민 스스로 나서서 한국사회 앞날을 걱정하고 바른길로 이끌려는 의미인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앞을 밝힌 촛불은 학생 삶을 경쟁으로 몰아가고 옥죄는 일제고사를 안볼 권리를 의미하기도 하고 일제고사를 거부하다가 파면 해임된 7인의 교사들을 구제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매일 밤 이어지는 촛불행사에는 교사도 아니고 학부모도 아니고 서로 이메일 아이디로 부르는 낯선 사람들의 그룹도 출현한다고 한다. 새로운 운동의 주체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 10월 초등학생 일제고사에 이어 12월23일 전국의 중학교 1, 2학년 135만명 대상으로 일제고사를 실시했다. 일제고사는 이명박 정부 ‘기초학력 미달 제로플랜’에서 비롯되었다. 세계화·정보화·다양화를 지향하는 7차 교육과정 도입으로 일제고사는 지난 1996년 이후 초등학교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그동안 정부는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 중학교에서는 표집 평가를 통해 학습부진아 통계를 내왔는데 이를 전국학생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번시험은 지난 3월초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된 중1 학력 진단평가와 한 쌍이다. 지난 봄 나쁜 성적을 기록한 일부 학교에서는 절치부심하며 이번 시험을 기다렸을 것이다. 더구나 지난 봄 서울과 부산, 울산 등 7개 시도교육청이 개인 석차 백분률을 포함해 학교·지역 평균을 성적표에 공개해 파문을 불러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시험결과도 공개할 것이다. 이미 한달 전부터 학교 홈페이지에 성적을 공개하도록 법령을 정비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지역별 학교별 서열이 매겨지고 학생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교사간 학교간 경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주변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가 아이를 2주동안 붙잡아 놓고 국어, 수학 시험 준비를 시킨다니 더 말해 무엇하랴?

▲ 학업성취도평가 시험이 실시된 23일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중의소리
이러한 시험은 얼핏 보면 각 학교마다 학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처럼 보이나 실질적으로 학습부진아 대책의 형식화, 사교육비 증가, 지역 간 학력 논란, 학력개념 왜곡 등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다. 정부는 미국 부시 정부의 낙오학생 없애기 정책을 본따 시험을 통해 학력을 높이고 뒤처지는 학생을 없애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솔직히 학부모들 중에서 교육청이 학력부진 학생을 책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시험 성적표를 받아든 학부모 입장에서 당장에 내 아이가 반에서, 전국에서 꼴찌라는데 무슨 강심장으로 교육청과 이명박 정부만 믿고 있겠는가? 당장에 학원으로 쫓아가 대책을 세우는 것이 급할 뿐더러 아무리 학원을 다녀본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식으로 사교육비가 증가할 것이다. 더구나 서울시교육청이 11개 학군의 성적을 비교하고 12만명 학생의 백분위 석차까지 학부모들에게 통지한다고 함은 결국 성적 부진아 뒤치다꺼리를 학부모와 교사들 간에 경쟁을 부추겨 해결하려는 뜻이다.

학생의 학업 부진에는 부모의 경제력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다. 지난 봄 진단 평가 결과 사교육을 많이 받는 영어·수학 과목에서 도시·농촌간 격차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평균은 대략 비슷한데 서울의 경우 11개 학군 특히 강남·북 차이가 심해 영어는 최대 22점 차이, 수학은 18점 차이가 났다고 한다. 개별 학교 간 격차는 이보다 더할 것이다. 초등학교 6년 동안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의 영어·수학 성적 차이가 가장 심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교육과 선행학습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이 차단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의 모든 학력 평가는 학생이 아닌 학부모 평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명박 정부 교육공약인 사교육비 절반, 학교 만족 두배 공약은 공수표가 되어가고 있다. 가계소득은 줄어드는데 사교육비는 상승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민심을 잃는다면 그 중심에는 교육문제가 자리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상위 1%가 한국을 먹여 살리는 엘리트라고 계속 우기며 부유층을 위한 정책을 펴나간다면 정부가 위기에 처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 글은 3월 23일 한겨레 기고-‘일제고사는 학부모 줄세우기’를 새로 고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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