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관련된 이슈를 주로 다루는 미국의 인터넷 매체인 '어라운드 더 링스(AROUND THE RINGS)'는 지난 9일(한국시간) '한국의 올림픽위원회(NOC)가 자율성 논란에 휩싸일 것인가'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정관을 변경하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정부 개입 금지'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보도했다.

'어라운드 더 링스’는 "한국 정부가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선임하고 NOC의 예산 집행에 대해서도 관리, 감독할 수 있도록 정관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IOC에서 KOC의 위상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쿠웨이트올림픽위원회가 정부의 개입으로 징계를 받았다"며 "쿠웨이트는 올해 리우올림픽에 쿠웨이트 국기가 아닌 IOC 깃발을 들고 출전해야 한다"고 쿠웨이트의 사례를 상기시켰다.

여기서 일단 쿠웨이트가 IOC로부터 받았다는 징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10년 1월 IOC는 쿠웨이트 정부가 NOC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쿠웨이트에 징계를 내렸다.

올림픽 헌장에 따르면 NOC는 정치적으로 독립해 자율적으로 운영돼야 하지만, 쿠웨이트는 NOC 위원장을 비롯해 각 경기 단체장들을 정부에서 임명했다는 것.

이와 같은 IOC의 징계에 따라 쿠웨이트는 IOC가 주관하는 모든 스포츠 행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됐고, 쿠웨이트 선수들은 IOC 주관 국제대회에 국가대표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게 됐다.

▲ 카를루스 아르투르 누스만 브라질올림픽위원장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016년 리우 하계올림픽 축구 경기를 치를 도시를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 결과 쿠웨이트는 각종 대회에서 자국 국기가 아닌 올림픽 오륜기를 사용하게 됐고, 국호 대신 '쿠웨이트에서 온 선수들(Athletes from Kuwait)'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다. 또한 메달을 따도 시상식에서 쿠웨이트 국기가 아닌 오륜기가 걸린 시상대에 서야 한다.

‘어라운드 더 링스’의 지적대로 IOC가 한국에 쿠웨이트와 같은 징계를 내린다면 한국 스포츠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어라운드 더 링스’의 보도내용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인지 살펴보자.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은 올해 체육계의 최대 과제 중 하나였다. 국내 엘리트 체육을 관장해 온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을 관장해 온 국민생활체육회, 그리고 정부 추천 인사로 구성된 통합준비위원회는 지난해부터 15번에 걸쳐 통합체육회 새 정관 마련을 위해 논의를 이어왔다.

그리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정관 심의를 완료했다며 오는 15일 통합체육회 창립 발기인 총회 개최를 예고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가 반발하고 나섰다. 이유는 전체 정관 내용을 정부가 정해 놓은 다음 통합준비위원회에서 결의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유였다.

결국 통합 체육회의 요체가 되는 정관의 내용을 정부가 정했다는 말이 된다. 이는 심각한 수준의 개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통합체육회 정관이 관련 회의에서 대한체육회 대표자들을 비롯한 구성원들이 만장일치로 합의를 본 내용으로 이미 정한 통합 일정대로 갈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대한체육회도 이미 동의한 내용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이쯤 되면 대한체육회와 정부가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만약 대한체육회의 말이 맞는다면 정부가 체육계 통합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IOC의 징계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정부 측 주장이 맞는다면 이는 체육계 통합을 내심 못마땅해 하는 엘리트 체육계의 밥그릇 챙기기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정관의 심의 절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어 보인다.

KOC 상임위원을 지낸 이달순 ‘헬로스포츠’ 발행인은 지난달 20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새로 제정된 '통합체육회 정관'에 장관 승인 조항이 24개나 있는 것이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IOC 헌장의 지침에 위배된다는 것”이라며 “우리에게도 올해 열리는 리우올림픽에서 퇴출당할 위기가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뜻이다. 이 심각성을 정부나 체육 지도자들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국제 스포츠의 조류는 '체육단체의 주체는 비정부 순수 민간 자주·자립단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재정 자립의 방안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통합체육회 정관은 마치 체육회가 정부 산하 공기업체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며 “통합체육회를 추진한 정부, 국회, 그리고 체육 지도자들은 국제 스포츠의 흐름을 너무 모르고 있다. 추진위원들은 이른 시일 내에 이런 사실부터 확인하고 국제 스포츠계에서 퇴출당하지 않도록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국 체육계가 통합된 이후에도 정부가 체육계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통합 체육회 정관내용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쯤 되면 ‘어라운드 더 링스’가 허무맹랑한 보도를 한 것은 아닌 셈이다.

▲ 한국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이 2016년 3월부터 통합 관리된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5년 만에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합 체육회 회장 선거 제도 관련 공청회. Ⓒ연합뉴스

여기서 ‘한국 정부가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선임하고 NOC의 예산 집행에 대해서도 관리, 감독할 수 있도록 정관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는 ‘어라운드 더 링스’ 보도와 관련, 참고할 만한 정부 관계자의 멘트가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감독을 받는 예산은 KOC 예산이 아닌 대한체육회 예산"이라며 "대한체육회는 예산의 90% 이상을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언뜻 보기에는 맞는 말 같지만 체육계가 통합되고 예산 집행과 관련, 체육계 내부의 감사 시스템이 제 기능을 발휘해준다면 과연 정부의 이와 같은 관리가 필요할 지 의문이다.

좌우지간 현재 분명한 것은 체육계 통합과 관련, 일방 당사자가 이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투명하게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원만한 체육계 통합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정부가 이 상황에서 시간에 쫓겨 강압적으로 체육계 통합을 밀어붙이고 통합 체육회 정관마저 입맛대로 요리한 그대로 채택시킬 경우 자칫 잘못했다가는 올림픽 무대에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극기가 아닌 올림픽기를 들고 ‘한국에서 온 선수들’이란 집단의 이름으로 나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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