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나 추석에는 꼭 찾아오는 것이 있다. 명화 시리즈와 아이돌 예능이다. 둘 모두 식상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막상 명절이 닥치면 또 은근히 기다려지는 이상한 마력(?)을 발휘한다. 다른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방송사마다 명절만 되면 나름 사운을 걸고 아이돌 예능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거기다가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이 기간을 예능 파일럿을 내보낼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는데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중 절반은 역시 아이돌 중심의 구성을 가져간다. 이번 설 명절만 놓고 보더라도 듀엣가요제, 몰카대전, 톡하는대로(MBC), 우리는 형제입니다, 본분금메달, 전국아이돌 사돈의 팔촌 노래자랑, 머슬퀸 프로젝트(KBS), 사장님이 보고 있다, 먹스타 총출동(SBS) 등이 아이돌이 중심이거나 혹은 최소 중심에 둔 파일럿 예능들이다.

▲ KBS 2TV 설 특집 예능 파일럿 <본분금메달>

흥미로운 것은 KBS가 아이돌을 집중 활용했다는 사실인데, 이번에도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반면 이번에도 큰 차이는 아닐지라도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그 중 선전한 곳은 MBC였다고 할 수 있다. SBS의 경우 아이돌을 내세우지 않은 음악예능 두 개를 선보여 MBC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기대할 만한 성과도 올렸다.

많은 파일럿들 중 무엇이 정규편성의 상을 받아갈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번 설 명절 예능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키워드는 확실하게 추려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음악예능’이라는 것이다. MBC는 나가수에 이은 복면가왕의 성공으로 오른 음악예능의 권좌를 굳히기 위해서 듀엣가요제를 기획했고, 이번 설 명절 파일럿들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SBS의 경우는 공교롭게 MBC의 듀엣가요제와 콘셉트가 겹치는 판타스틱 듀오와 또 다른 일반인 참여 음악예능 신의 목소리를 포진시켜 복면가왕의 인기를 견제할 대항마를 찾기에 고심한 흔적을 드러냈다. 파일럿 대전에서는 MBC를 제압하지는 못했지만 1억원이라는 상금까지 걸린 신의 목소리는 정규편성이 된다면 의외의 반등을 보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 SBS 설 파일럿 음악 예능 <보컬전쟁: 신의 목소리>

아무튼 이번 설 파일럿 대전은 MBC와 SBS가 올 한해는 음악예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뜨거운 파일럿, 그것도 음악예능, 그것도 일반인을 적극 참여시키는 콘셉트마저 비슷한 양 사의 경쟁은 정규편성이 된다면 더욱 뜨거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규편성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슷한 양 사의 파일럿에서 차이를 보인다면 MBC는 다소 아이돌의 비중이 높았고, SBS는 아이돌을 배제시켰다는 것이다. MBC의 듀엣가요제는 일단 추석에 우승을 했던 마마무의 휘인과 복면가왕의 신데렐라 EXID 솔지가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반면 SBS는 휘인과 솔지가 아직은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없는 중견가수들이 전면에 나섰다. 특히 나가수를 상징하는 김범수(판타스틱 듀오), 윤도현, 박정현(신의 목소리)이 등장한 것이 흥미로웠다.

▲ MBC 설 특집 음악 예능 <듀엣가요제>

우선 이들의 장점이라면 이슈만 만들 수 있다면 출연자 풀이 매우 풍부하다는 점이다. 복면가왕이 먼저 가수만이 아니라 배우, 개그맨, 뮤지컬배우 등 아주 다양한 출연자들을 캐스팅해 출연자 풀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반전이라는 부가효과도 함께 얻어내기까지 했다. 그런데 듀엣가요제나 신의 목소리 등은 일단 기존 가수들을 고정으로 하고 일반인 도전자들만 잘 선발하면 되기 때문에 동이족의 후예들 속에서 숨은 고수들은 얼마든지 존재할 것이다.

지난 10년을 놓고 볼 때도 나가수가 됐든 아니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됐든 음악예능은 꾸준히 어디 한 곳에서는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특징은 기성가수와 신인으로 나눌 수 있지만 그것을 역시나 관통하는 한 가지는 경쟁이라는 점이다. 결국 이번 음악예능 파일럿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녹여내는 것으로 활로를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상당히 설득력을 갖는 솔루션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지상파 예능 음악 대전의 승자가 누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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