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보면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에 활용된 ‘대량살상무기론’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중단’(정부의 표현이다) 결정을 보면서 당시를 떠올렸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파탄지경으로 몰아갈 정도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있다던 대량살상무기는 찾을 수 없었다.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중단’의 이유로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북한에 유입된 현금이 총 6160억원에 달하고 정부와 민간에서 총 1조190억원의 투자를 했음에도 이러한 비용이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고도화하는데 쓰여 졌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주장을 쉽게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개성공단 인건비, 정말 핵무기에 쓰였나

정부가 언급하고 있는 현금과 투자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선 인건비 문제를 꼽을 수 있는데, 임금의 30% 가량을 북한 당국이 ‘사회문화시책비’ 명목으로 걷어 간다는 점이 정부가 개성공단에 투입된 현금이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 능력의 고도화에 쓰였다고 말하는 근거로 보인다.

그런데 이를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의 국가기구를 대상으로 검찰 중수부가 하듯 현금 흐름을 되짚어보거나 계좌 추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를 ‘사실’로써 제기하려면 국가정보원의 상당한 활약상을 전제해야만 한다. 현재로서는 국정원이 그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결국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개성공단 전면중단’으로 인한 피해가 북한 당국보다는 입주 기업들에 더 심각한 수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 역시 문제다. 지난 2013년 개성공단 가동이 160일간 중단됐을 당시 입주기업들의 피해금액은 거의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었다. 당시 통일부가 증빙자료를 통해 파악한 규모는 이와는 차이가 있는 7천억원 정도의 규모였으나 그렇더라도 상당한 액수의 피해가 예상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개성공단에 이미 들어가 있는 설비와 자재 등의 반출도 과연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부 당국자는 “기본원칙은 각 기업의 설비와 자재, 보관 중인 완제품을 모두 철수시킨다는 것이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북측과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남북이 극한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이들이 말하는 ‘협의’가 과연 어느 수준에서 가능할 것인지 부정적인 예측을 할 수밖에 없다.

▲ 설 연휴마지막날인 10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연합뉴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 더 좋지 않은 대목은 앞으로 이런 방식의 경제협력이 더 이상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리스크에 의해 일방적인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어떤 기업주가 일부러 남북 간의 평화를 위해 개성공단에 입주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이윤 창출은 순전히 정부가 이의 효과를 전적으로 보증할 때에만 가능한데, 북한에 의한 피해를 경험한 상황에서 이제 우리 정부마저 적극적으로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시킨 것은 이런 방식의 경제협력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기업주들의 입장에서는 한 번 속지 두 번 속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개성공단의 사실상 실패에 대해 정부가 보상하는 정도도 기업주 입장에서는 결코 충분치 않은 수준이다. 이는 2013년 당시에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개성공단 폐쇄, 누구 손해인가

오히려 이번 조치로 인하여 북한이 받게 될 타격은 크지 않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개성공단이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 수준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5만여 명의 북한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당장 생계에 타격을 입는다는 점과 외자유치 실적 하락과 경제개발구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조차도 간접적인 효과일 뿐이다. 국민의당 김근식 통일위원장의 논평에 따르면 개성공단 인력을 더 높은 임금으로 중국에 송출해 경제적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이외에도 ‘간접적 타격’에 대해서는 북한 당국이 얼마든지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결단을 왜 내렸느냐를 되물을 수밖에 없다. 추측컨대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에 대해 유엔안보리 결의와는 별개로 자체 제재에 나서고 반면 중국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에 더 큰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간 대북정책의 실패로 현재 활용할 수 있는 카드라고는 대북 확성기 방송 밖에 없으니 이것 보다 훨씬 충격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보수층 일각에서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개성공단에 손을 대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모처럼 꺼내든 사드 배치 카드가 중국의 반발에 밀려 위력이 축소될 가능성도 가늠해 보았을 것이다. 총선에서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안보 마케팅을 활용해 나름대로 쏠쏠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초보적인 계산도 해보았을 테다.

개성공단 사업은 남북관계의 개선을 바라지 않는 보수세력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실제로 개성공단 사업의 파탄 가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커져왔다. 지난해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5.18% 인상을 일방 통보했을 당시 북한의 의도는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사업을 애초 계획대로 확대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걸로 해석됐다. 개성공단의 성격이 변모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경협의 대의를 고려해 획기적인 수준까지 인건비를 낮춘 것인데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메시지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개성공단 사업 초기 최저임금의 수준은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직접 결정한 걸로 알려져 있다.

즉, 현재의 상태는 개성공단 사업을 확대하거나 중단하지 않으면 북한에 끌려갈 수 있는 시기에 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국면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10일 “개성공단은 김정은 정부의 현금지급기 역할을 해왔다”면서 개성공단 사업의 사실상 중단을 촉구했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지금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하는 것은 앞으로 정상적인(?) 방식을 통한 대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사실상 상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뜻한다. 이명박 정부가 했던 것처럼 물밑 접촉을 통해 이런 저런 의사타진을 해볼 수는 있겠으나 ‘김정은 리더십’에서 이것이 가능할지는 부정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대북관계 개선의 일환으로 추가적인 경제협력 등을 제안하지 않으면 북한도 응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이대로’ 죽 가야 한다는 얘기다.

대북정책 실패, 레임덕 방아쇠 될 수 있어

물론 정부가 언급한 대로 개성공단 가동이 다시 재개되는 경우의 수도 있다. 중국이 강력한 대북제재에 기적적으로 나서는 경우다. 중국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북한이 핵실험과 로켓 발사에 대하여 책임있는 조치를 취한다면 이를 명분으로 다시 개성공단 가동 재개가 가능하다. 물론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지만 어쨌든 정권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가오는 4월 총선에서 상당한 이득을 보는 시나리오다. 문제는 이 경우의 확률이 여전히 크지 않다는 것과 일종의 ‘정치적 도박’에 자국민의 재산권과 안전을 내맡겼다는 윤리적 비판 역시 피할 수 없다는 거다. 일부 네티즌들은 ‘중국을 향한 자해 공갈이냐’는 비아냥까지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에 일관된 철학이 없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박근혜 정권은 초기만 해도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분명히 갖고 있었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라는 공약의 얼개가 그러했고 과거 이명박 정권의 대북관계 파탄에 대한 반성적 평가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가진 일부 인사들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곧 이런 의지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5회 국무회의 전 티타임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수위 시절 대북 비둘기파로 알려졌던 최대석 인수위원이 불확실한 이유로 ‘날아간’ 것을 비롯해 비슷한 성향이라는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이나 홍용표 현 통일부 장관이 영 힘을 쓰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파악된다. 국정원의 경우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발표되기 직전 차장 3명의 인사가 한꺼번에 진행된 점이 심상찮다. 일부 언론은 ‘이병호 체제’라는 그럴듯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으나 실상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우병우 민정수석 등과 가까운 인사들이 전면에 나선 청와대 직할체제의 강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외교관 출신으로 나름 온건파라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해 때 아닌 ‘왕따설’에 시달렸다. 국정원도 통일부도 청와대 비서실장도 이 국면에 주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제는 ‘강경파’마저도 마음대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간동아의 보도에 의하면 ‘한 당국자’는 “박 대통령은 지난 연말 인사를 앞두고 스스로 사의를 밝힌 안보 분야 핵심 참모조차 유임케 한 바 있다”면서 “누구를 장관으로 기용하든 결국 일은 본인이 하는 것이므로 별 의미가 없다는 게 대통령의 기본적인 생각인 것 같다”고 했다. 오마이뉴스의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단장 인터뷰를 보면 이 ‘안보 분야 핵심 참모’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으로 추정된다. 김종대 단장은 “결국 문고리 권력 등 보이지 않는 손이 외교안보까지 좌지우지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일각에서는 호남 출신인 김관진 실장이 총선에 출마할 거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는데, 어찌됐건 상황을 이리 저리 꿰어 맞춰보면 결국 좌충우돌하는 이 상황에도 ‘비선’의 그림자가 있는 셈이다.

시간은 박근혜 대통령의 편이 아니다. 대북정책이 파탄나면 4월 총선 이후 여권의 누군가가 반드시 이 문제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다. ‘배신의 정치’니 ‘진실한 사람’이니의 어휘를 동원했지만 사드 배치를 말하면서 이를 아예 ‘미사일방어’로 간주하는 유승민 의원은 아직 건재하다. 여당 소속인 국회 국방위원장은 ‘외교안보라인의 총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외교안보정책 파탄의 책임을 물을 다음단계는 ‘비선권력’을 언급하는 것일 수 있다. 그건 결국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레임덕’의 시작일 것이다. 대통령이 문제를 총선에서 활용할 하나의 카드로서만 다루는 게 아니라 자기 권력의 향방을 좌우할 중대한 문제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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