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응답하라> 시리즈의 영향일까, 사회가 어려워서 일까.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 복고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그리고 그 관심은 과거에는 유행했지만 현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공간에 대한 그리움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겨울 서민들의 난방을 책임졌던 연탄가게, 사장님의 독특한 작명 실력과 IQ 증진을 운운했던 오락실, 그리고 하굣길 잠시 짬을 내어 다채로운 작품의 세계에 빠질 수 있었던 만화방. 물론 이런 공간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지며 잊혔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억의 공간 중에서 만화방은 모두에게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다. 경찰이나 학교, 학부모 차원에선 오락실과 함께 비행 청소년의 온상으로 여겨지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나마 오락실이 기성세대에게만 눈총을 받았다면, 만화방은 만화를 만드는 제작자들 사이에서도 꺼려야 할 대상이었다. 마땅히 제 값을 받고 팔아야 할 만화책을 매우 싼 가격에 볼 수 있게 만들어 만화의 가치를 떨어뜨린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만화가 박무직 등의 주도로 반대여점, 반만화방 운동인 ‘자유의 검은 리본’(자검댕)이 탄생하기까지 했을까.

▲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내에 마련된 6-70년대 대본소를 재현한 전시 공간. 대본소, 그리고 후신격 존재인 만화방과 도서 대여점은 한국 만화를 이야기하는 것에 있어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기성 세대와 만화가 모두에게 비판받는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사진 제공=부천시)

물론 만화방으로써는 억울할 수도 있는 처사였다. 당시 청소년이 즐길 수 있는 여흥거리를 제공하는 몇 안 되는 곳이기에 어른들에게 밉상으로 찍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국 만화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부진에 빠진 모든 책임을 만화방과 도서 대여점으로 돌리는 것은 대본소 시스템을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 만화 시장의 형성 과정을 무시하고서 덤터기를 씌우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활활 타오르는 분노 앞에서 만화방은 당장 격퇴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인터넷망의 보급으로 스캔본이 문제가 되자 만화계의 책임론이 대여점에서 불법 공유로 선회하고, 만화방 역시 출판 만화와 함께 몰락의 기로에 서게 되면서 천덕꾸러기인 것도 모자라 버림받고 기억에서 사라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동네에 있는 만화방은 어느 샌가 자취를 감쳤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만화방은 노숙자의 쉼터 같은 존재가 되었다. 1996년 말 전국 적게는 8,700여 곳에서 많게는 12,000여 곳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던 만화 대여점은 2012년 현재 3,638곳으로 급감했다. 그나마도 이는 만화 이외에도 다른 서적도 같이 취급하는 대여점을 포함한 수치이며 순수하게 만화만을 취급하는 만화방이나 대여점은 811곳에 불과하다.

사라질 것 같던 만화방, ‘만화카페’로 다시 돌아오다

이런 상황이 족히 십 년 이상 지속되었기에 몇 년 만 더 지나면 만화방은 추억에만 존재하는 공간이 될 줄 알았다. 이제 더 이상 한국 만화의 중심은 출판만화가 아니며, 만화 대여 수익의 빈틈을 메꿔줄 수 있는 소설 대여나 비디오-DVD 대여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스템은 전통적인 만화방과 큰 차이가 없지만, 좀 더 다양하고 세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화카페’가 본격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만화방과 만화카페를 큰 줄기로만 따져본다면 별다른 차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 시간제로 만화를 볼 수 있는 권한을 이용자에게 판매하며, 구입한 시간만큼 점포 내부에 마련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작품을 볼 수 있다. 동시에 만화를 보면서 출출해진 배와 심심한 입을 채우기 위한 간단한 음료나 스낵 등의 음식을 판매한다.

하지만 만화카페는 만화방과 다른 큰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만화방이 총판을 통해서 수급되는 일일만화나 전통적인 코믹스 단행본 같은 작품만 들여놓는다면, 만화카페는 일일만화는 거의 취급하지 않으며 대신 애니북스나 세미콜론 같이 권당 평균 가격이 8천원에서 만원 사이에 놓인 고가 단행본을 적극적으로 취급한다. 만화방이 대개 24시간 문을 열며 밤샘 손님을 취급하는 일이 잦다면, 만화카페는 늦게까지 문을 열어도 0시 이전에 문을 닫는다.

▲ 메가박스 코엑스가 리모델링을 하며 계단 아래 공간에 새롭게 만든 만화카페 ‘계단 아래 만화방’. 신촌-홍대 등지를 중심으로 조금씩 등장하던 만화카페는 이젠 기업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유행하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타겟으로 삼는 이용자층이 다르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만화방은 중장년의 남성 손님을 대상으로 주로 영업하기에 매장 디자인이나 운영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만화카페는 2-30대의 젊은 사람들을 주된 영업 대상으로 삼는다. 만화책들이 가득 꽂힌 서가와 자유롭게 만화를 볼 수 있는 테이블이나 빈백 등이 없다면 평범한 카페와 다른 점을 발견하긴 어렵다. 취급하는 음식들도 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카페와 달리 식음 판매에 중점을 두는 대신, 가게 안에 있는 만화를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시간’을 주된 판매 대상일 따름이다.

일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만화카페가 한국에는 언제부터 들어왔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합정의 ‘즐거운 작당’, 망원의 ‘망원만방’, 상수의 ‘상수동 만화방’ 같이 신촌-홍대 부근 번화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만화카페들이 최근 인기를 얻으면서 타 지역에도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 코엑스몰에 위치한 메가박스 코엑스는 최근 리모델링을 하며 계단 아래의 작은 공간 일부를 ‘계단 아래 만화방’이라는 이름의 만화카페로 만들었다. 상암 DMC 같이 사무 공간이 밀집된 지역에서도 만화카페가 속속 오픈하고 있는 중이다. 필자가 사는 곳 근처에도 만화카페가 최근 문을 열었다. 이렇게 사라지리라 생각했던 만화방은 좀 더 친숙하고 정감 가는 휴식공간으로 다시 우리 곁에 다가오게 되었다.

‘만화카페’를 좀 더 함께하는 장소로 만들기 위하여

이렇게 만화를 읽는 방법 중 하나로 조금씩 만화카페가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만화계에서 만화카페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간혹 나오더라도 단편적인 인상비평 수준에 머무를 따름이다. 8-90년대 같이 대본소나 만화방, 도서 대여점이 뜨겁게 확산되는 상황까지는 아니기에 미온적인 태도일 수도 있지만 조금씩 만화카페가 확산되는 상황은 좋든 싫든 만화계가 만화카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마치 ‘자검댕’이 그랬던 것처럼 만화카페 역시 독자들이 만화를 사지 않게 만드는 해악한 공간으로 봐야할까. ‘자검댕’을 비롯한 대여점 책임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만화방이나 대여점이 만화책을 총판 가격으로 싸게 구입하는 것은 물론 이후 만화 대여로 발생하는 수익이 작가에게 가지 않는 것을 궁극적인 한계라며 비판했다. 하지만 이 비판은 오랜 시간 동안 한국 만화 사업이 전국 각지에 존재한 대본소나 대여점의 구매력으로 존속해왔고 80년대 후반부터 새롭게 한국 만화의 주류가 된 대원씨아이, 학산문화사, 서울문화사 역시 이에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간과한 단편적인 것에 불과했다.

물론 ‘자검댕’ 등의 말대로 저작권사에 일정 비율로 대여권조의 비용을 지불하는 영화와 달리 만화와 같은 도서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어 아무리 만화가 많이 대출되어도 그 수익이 출판사나 작가에게 가지 못하는 문제는 기존 만화방/대여점 시스템의 결정적인 한계이다. 또한 총판을 통해 만화방에 작품을 팔더라도 대여가 잘 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반품이 되어 판매 수익이 깎이는 문제 역시 존재했다. 이 중 대여 수익이 저작권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 ‘대여권’을 법적으로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협의가 지지부진한 동시에 시기 자체가 만화방과 대여점이 몰락하던 시기였기에 이야기는 곧바로 수면 밑에 잠들고 말았다.

▲ 2003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만화 대여권에 대한 관계자들의 토론이 벌어지는 모습들. 2000년대 초반 불거진 대여권 도입 논의는 지리한 논쟁과 만화방, 대여점의 몰락이 겹치며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하고 마무리 되었다. (사진 제공=한국만화영상진흥원)

그 후로 약 십여 년이 지났다. 십 년이면 강산이 한 번 바뀐다고, 한국 만화 역시 판도가 대폭 바뀌었으며 만화방 역시 좀 더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만큼, 만화카페를 대하는 자세 역시 이전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여전히 한국 만화 대다수는 총판을 통해 유통되기에 앞서 언급되었던 ‘반품’의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겠지만, 애니북스를 비롯한 고가 단행본 대부분은 일반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이들 작품은 총판을 통해서 유통되지 않으니 근본적인 한계로 지적된 유통 구조의 문제는 분명 이전과 달라졌다. 단순히 만화방과 어떤 차이가 있냐는 식으로 만화카페를 퉁명스레 볼 이유는 그리 없는 것이다.

오히려 만화카페가 제 가치는 있지만 쉽게 구입할 엄두를 못 내게 만드는 고가의 만화 단행본을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점에선 만화카페는 어떤 기관이나 단체 못지않은 한국 출판 만화 최고의 파트너인 셈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영화에 도입되어 있는 ‘대여권’ 같은 수익 재분배 시스템을 고려해야겠지만, 웹툰에 쏠려 숨 쉴 구석을 쉽게 찾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출판 만화의 접근성을 키웠다는 점에서 만화카페의 공은 분명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출판만화의 진흥을 논하고 싶다면 그저 지원금을 뿌리는 형식을 넘어 이렇게 자생적으로 생기는 새로운 시스템을 활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배제를 넘어 좀 더 폭 넓은 사고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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