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북한이 예고한대로 로켓을 발사했고 이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으로 간주한 정부와 정치권은 ‘대책 마련’이라는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한미 간의 사드 배치 협의가 공식화됐고 훈련을 빙자한 무력시위를 대규모로 진행하기로 했으며 대북 확성기 방송을 확대하기로 했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듯이 이 모든 것은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를 실질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물론 실질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을 당장 내놓으라는 건 무리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무언가를 하는 거다. 문제는 그 ‘무언가’를 할 때도 이와 관계된 각국과 세력이 여러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서 생긴다. 대표적으로는 사드다. 사드 배치는 기본적으로 남북관계를 구실로 한 미중 간의 이슈다. 사드를 배치하는 것과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사드 배치가 북한의 미사일 실험에 대한 대응책이라면 둘 중 하나의 조건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사드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요격할 수 있다. 둘째, 사드를 배치하면 여러 외교적 효과에 의해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할 수 없게 된다.

첫째는 전문가들끼리도 의견의 대립을 보이는 사안이다. 물론 의견의 대립이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 정부가 어떤 결정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만큼의 정치적 부담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다. 정치적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은 단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관계만을 고려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늘상 입에 올리는 ‘국익’을 중심에 놓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정권의 통치는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태도는 비록 정권이 실패하더라도 ‘책임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과연 사드 배치 이후의 상황을 박근혜 정권이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드 배치는 박근혜 정권이 신념을 갖고 추진하는 종류의 일인가? 단 몇 개월 전만 해도 여전히 3NO(No Request, No Consultation, No Decision)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던 박근혜 정권이다. 이 문제를 무책임하게 다루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사드 배치가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억제효과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사드를 배치하든 말든 한미일 간의 군사동맹이 강화되든 말든 북한은 그들이 주장하는 ‘핵억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핵무장의 강화를 추진하고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4차 핵실험으로 사드 배치가 예고되는 상황에서도 북한이 로켓 발사 실험을 강행하였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를 협의하게 되면 반발하는 것은 중국이다. 즉, 한미일 대 북중러의 전통적 대결 구도가 강화된다. 박근혜 정부가 이른바 ‘친중외교’를 펼쳐왔고 한국과 미국이 중국의 북한 제재 동참을 종용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해보면 북한의 로켓 발사 실험과 사드 배치 협의는 중국을 다시 북한의 후견인으로 묶어두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로켓 발사 버튼을 누르기 전 북한 수뇌부는 적어도 그렇게 되리라는 점을 예상했을 것이다. 한국이 교착전선에 묶여야 ‘통미봉남’을 관철시킬 수 있다.

▲ 조선중앙통신이 7일 보도한 광명성 4호 발사장면 (연합뉴스)

일각에서 대중외교무용론이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보수언론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그간 중국에 편향된 외교 노선을 통해 얻은 것이 없다는 게 확인됐다며 외교라인의 경질을 요구하는 강경한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물론 ‘장삼이사’에 해당하는 네티즌들까지 박근혜 정부의 그간 친중행보에 대해 노골적 반감을 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일견 이해되는 바도 있으나 합리적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대중외교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중국 체제를 따르라거나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라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현실적 필요성을 따져보라는 것이다. 외교는 미국, 중국, 일본의 고정된 상품들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고르는 쇼핑몰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 미국에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하며 일부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하고(이는 위안화의 SDR바스켓 진입 시도 및 가치절하라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현실화됐다) 개헌선 이상 의석을 확보한 상태에서 노골적인 평화헌법 개정을 시사하는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을 통치하며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방침을 고수하는 상태에서 중동과 러시아에 목을 매는 이상 대중외교의 강화를 통한 활로의 모색을 상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전승절 열병식 참가’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단지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이란 핵협상에서의 성과가 예고되고 미일관계가 ‘신밀월’로 불릴 정도로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우리 정부가 ‘한미일 동맹’에 몸을 싣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국에 그만큼의 외교적 구실을 주지 않으면 안됐을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내에 일본과 위안부 피해자 관련 협의를 서둘러 마무리 하고 한미일 동맹 강화 행보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로써 ‘친중외교’는 사실상 끝났다. 문제는 애초에 ‘친중외교’라는 카드에 ‘짝’이 필요했다는 거다. 그 짝은 당연히 대북관계 개선이다. 대중관계 개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시한부라는 점을 애초에 알고 있었다면 반드시 그 기간 안에 대북관계의 개선이 병행돼야 했다. 이는 박근혜 정권이 전임 이명박 정권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대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방안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실제로 대북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책임지지 못할 방식으로 진행됐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대북관계 개선이라는 목표가 ‘북한 체제붕괴론’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됐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 과정에 대한 청사진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나 ‘드레스덴 구상’ 등의 경제 및 개발 협력이 중심이 된 의제들을 통해 밝혔는데, 이는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 등이 사석에서 노골적으로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등의 주장을 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체제 유지에만 관심이 있는 북한 정권이 보기에는 체제가 무너진 이후 관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겠다는 것으로 오해받기에 알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오해를 불식시켜야 했지만 오히려 통일준비위 등의 자리에서 ‘북한붕괴론’을 직접 거론함으로써 쐐기를 박았다. 보수언론 역시 이를 거들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장기간에 걸친 통일 기획이나 이를 위한 기금 모금은 북한의 체제 붕괴를 대비하자는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권의 ‘통일은 도둑처럼 온다’는 인식이나 ‘통일세’를 신설하자는 제안과 별 차이도 없는 것이란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주요 지지층이 무엇을 상정하고 있는지 ‘알아버린’ 북한이 체제 수호를 위하여 가던 길을 계속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언론은 북한이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 실험을 한 이유와 의도에 대해 분석하고 탐구하고 있지만 이건 다 소용이 없는 일이다.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 ‘북한은 왜 했는가’가 아니라 ‘북한이 하는 걸 왜 막지 못했는가’이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실패는 미국이나 일본, 또는 중국을 너무 좋아하거나 신뢰한 것의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정권이 머리 따로 몸 따로 손발 따로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아마추어적 태도로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에 일어난 실패이다. 박근혜 정권은 지금도 그런 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에게는 북한의 로켓 발사 실험이 또 하나의 ‘변수’고 ‘기회’로 작용하지만 우리 자신에게는 그야말로 실질적 문제다. 남북문제 놓고 카드게임을 벌이는 주변국들의 테이블에 마치 제3자인 것처럼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왜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사태가 이렇게 됐는데도 ‘북한붕괴론’의 진원지 중 하나인 군 출신의 김관진 실장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 자체가 박근혜 정권이 이 문제를 얼마나 성의없이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니, 이제는 ‘성의없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포기’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차피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상황에 맡겨두자는 포기론자들의 반대편에는 이렇게 포기할 수 없으니 핵무장이라도 하자는 비상식인들이 앉아있다. 이것이 ‘헬조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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