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짧은 겨울, 고작 저녁 8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이미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고층 빌딩이 가득한 여의도 골목 한 귀퉁이에는 조그마한 천막이 세워져 있다. 회사의 정리해고에 맞서 ‘10년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기타 제조사 ‘콜트악기’와 ‘콜텍’의 해고노동자들이 노숙 농성을 하는 곳이다. (* 콜트악기는 전자기타를, 콜텍은 통기타를 만드는 기타 제조회사로 모두 박영호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콜트악기와 콜텍에서 정리해고된 사건을 콜트콜텍 사태라고 부른다)

이들이 다시 차가운 거리에서 몸을 누이게 된 이유는 ‘화가 나서’다. 그리고 ‘사과’를 받기 위해서다. 지난해 9월 3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최고의원회의에서 “강경 노조가 제 밥그릇 늘리기에 몰두해 건실한 회사가 아예 문을 닫는 사례가 많다”면서 콜트콜텍을 언급했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2006년 한 해를 빼고는 적자를 낸 적이 없던 튼튼한 회사는 2007년 ‘경영 악화’라는 명목 하에 난데없이 노동자들을 잘라냈다. 민주노총 도움으로 뒤늦게 노조를 만든 콜텍의 경우, 회사의 일방적 ‘폐업’으로 시작한 지 1년 만에 회사를 떠나게 됐다. 파업? 당연히 없었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 다음날인 9월 5일부터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잘못된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1달 동안 꿈쩍도 않자, 콜트악기 방종운 지회장은 천막을 펴고 단식에 들어갔다. 벌써 100일을 훌쩍 넘긴 노숙 농성의 시작이다. ‘콜트콜텍 투쟁’이 시작된 지 3291일째이자, 천막을 편 지 123일째였던 지난 4일, 금속노조 콜텍지회 이인근 지회장에게 ‘10년의 싸움’을 들어 보았다.

“노동자들이 단식해도 코빼기조차 안 비쳐… 이게 새누리당이 노동자 바라보는 시각”

미디어스 : 새누리당 당사 앞에 천막을 폈다. 노숙 농성하게 된 계기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이인근 지회장(이하 이인근) : 9월 3일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최고의원회 회의 석상에 수익성도 좋고 잘 나가는 회사가 강성노조 때문에 망했다고 콜트악기, 콜텍을 예로 들었다. (콜트콜텍은) 강성노조로 인해서 문을 닫은 게 아니라 사장이 조금 더 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에서 싼 임금을 찾아 인도네시아, 중국 등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한 것이다. 회사는 멀쩡히 잘 있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에 대해서 사과를 요구하면서 9월 4일부터 약 한 달 정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는데 새누리당이나 김무성 대표가 어떠한 제스처도 없고 해서, 좀 화가 나서 10월 5일부터 노숙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콜트악기 방종운 지회장님이 먼저 단식에 들어가시고, 45일간 단식 농성을 하시다가 건강이 많이 악화돼서 병원으로 실려가셨다. 그 뒤를 이어서 제가 단식을 이어 갔다. 그런데 단식 중에 좌측 7번 갈비뼈에 금이 간 걸 알고 단식을 멈췄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들하고 마찰이 있어서 연행됐는데, 그 과정에서 갈비뼈에 금이 간 것 같더라. 그래서 13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당사자들이 단식하는 걸 두고 주위에서 너무 고되니까 그러지 말고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 해서 일일 릴레이 단식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 와서 하시는 분도 계시고 자기가 있는 위치에서 하시고 인증샷 보내주시는 분도 있다.

▲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 세워진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단식 농성 천막. 주차구역을 점거하고 있다는 이유로 매일 2만원의 주차요금을 내고 있다. 콜텍 이인근 지회장은 이를 '월세 50만원'이라고 표현했다. ⓒ미디어스

미디어스 : 4달 넘게 농성 중인데 새누리당이나 김무성 대표는 아무 반응이 없나?

이인근 : 그렇다. 그러니 여기서 노숙 농성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총선 때라도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최선을 노력을 하려고 한다. 이런 자세가 새누리당이 국민을, 노동자 민중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이 아닌가 싶다. 진정으로 노동자 민중, 국민을 하늘 같이 생각한다면 이럴 수는 없다, 사실. 노동자들이 45일, 13일 이렇게 단식하는 동안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는다는 건 이미 그들에게 노동자라는 사람은 인간이 아닌 것이다.

미디어스 : 혹시 당사 앞에 천막을 칠 때 방해를 받거나 하진 않았나.

이인근 : 당 쪽에서나 경찰에서나 별 반응은 없었다. 우리가 농성장을 차린 데가 주차라인 하나 정도라 매일 2만원씩 주차료를 내고 있다. 주말은 안 받으니 대략 월 50짜리 월세를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미디어스 : 노숙 농성을 한 지도 4달이 넘었고, 정리해고 이후 복직 투쟁을 시작한 지를 따지면 올해 벌써 10년째 투쟁을 하고 있다.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시민들도 있지만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사연을 모르는 시민들도 아직 많다. 그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이인근 : 하고 싶은 말이 딱히 있는 건 아니다. 다만 해고라는 게 대한민국에서는 너무 자유롭고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법으로 규정돼 있는 해고가 징계해고, 정리해고 2가지인데 정리해고의 경우 ‘미래에 다가올 경영 손해’까지 법원에서 걱정해 주고 있다 보니까 정리해고 제한 조항은 사실상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거기다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저성과자 해고’라는 이름 아래 일반해고마저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법을 만들고 있다. 언제든지 노동자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자본과 권력이 노동자들을 위해 이런 제도들을 없애주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이 잘못된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잘못된 걸 입법하려고 하면 폐기 내지는 개정하지 못하게끔 제스처나 행동이 있어야 될 것 같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오면서 강조되는 ‘노동 시장의 유연성’은 곧 노동자 해고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다. 달콤한 말에 속지 말고. 해고는 한 가정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것인 만큼, 당하고 나면 많이 힘들다. 해고당하기 전에 다 같이 잘못된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나섰으면 좋겠다.

“언론, 사실을 사실대로 알게끔 하는 역할조차 전혀 안 하고 있다”

미디어스 : 시민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정책의 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언론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인근 : 국민들이 어떤 현상에 대해 ‘사실’을 ‘사실대로’ 알게끔 했으면 좋겠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안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연예인 누가 결혼하는 게 팬들에게는 관심사가 될 수는 있겠지만 전 국민이 알아야 되는 관심사는 아니다. 국민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그런 정보도 아니고. 그런 정보들이 넘쳐나는 반면 사회 문제에 대한 정보는 너무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 미미한 것조차도 왜곡돼서 싣는 경우가 많다.

정부에서는 ‘노동개혁’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좋은 쪽에서 나쁜 쪽으로 가는 것을 추진하는데 ‘개혁’이란 말을 붙이는 걸, 언론에서는 전혀 이런 부분을 얘기하지 않는다.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면 고용이 창출된다는데 정말 그런 사례가 있는지 살펴보지도 않으면서, 왜곡된 사실을 언론 스스로가 재생산해내고만 있다.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 요건 4가지를 규정해 놓고 있는데, 이게 지켜지지 않으면 왜 안 지켜지는지 따져 묻고 법원이 (정리해고의 범위를 완화해주는 판결을 내놓는) 이런 상태라는 것을 국민에게 알려야 하는데 전혀 그런 역할을 안 한다. 2014년 6월 12일 콜텍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는 ‘미래에 다가올 경영 위기’를 이유로 정리해고를 해도 된다고 했다. 그 ‘미래의 위기’를 누가 아느냐. 대법관 스스로가 추정한다는 소리냐. 이게 법원이 할 일인지 언론이 계속 되짚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국민들로서는 눈과 귀가 닫힌 상태다. 올바른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까.

비교적 올바른 정보를 전해주려고 하는 언론은 몇 개의 인터넷 매체, 일간지밖에는 없는데 사실 노동자들은 그런 매체를 찾아서 보고 하기에는 여건이 만만치 않다.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집에 가서 잠자기 바쁜 일상인데 인터넷으로 이런 매체를 찾아볼 여유가 잘 없다. (큰 언론사들은) 정권의 시녀가 돼서 오로지 권력층에서 내 놓는 것들만 받아쓰기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다 보니까…

언론도 문제가 있지만 국민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기도 하다. 언론 탓만 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됐다고 얘기해야 하는데 ‘나 혼자 되겠나’ 하는 생각으로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들이 많이 안타깝고 속상하다. 뭐든 그냥 바꿔지지는 않지 않나. 또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이기를 거부하는, 경영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부분도 너무 심한 것 같다.

미디어스 :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0년 동안 장기 투쟁을 하면서 언론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인근 : 2009년에 동아일보에서 사측 얘기만 듣고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제목도 기억난다. <7년 파업의 눈물>. 노동자들이 파업을 너무 많이 해서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기사를 써서 정정보도와 손배 청구를 했고 결국 이겼다. (2011년 9월 19일자 동아일보 정정보도문 바로가기) 얼마 전에는 한국경제에서 박영호 사장이 콜텍 관련해서 승소한 다음에 자기 지인들에게 보낸 장문의 메시지를 그대로 인용한 <공장폐쇄하고 7년 소송에 시달린 기업인의 하소연>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한국경제는 소송까지 않고 정정보도 요청을 받아들여 결국 고쳐졌다. (2015년 10월 1일자 한국경제 정정보도문 바로가기)

▲ 4일 저녁 8시,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 노숙 농성 천막에서 만난 금속노조 콜텍지회 이인근 지회장 ⓒ미디어스

“가장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

미디어스 : 이곳저곳에서 여러 투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콜트콜텍은 ‘장기전’을 하고 있는데 특히 더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이인근 : 농성을 하는 것은 우리의 상황,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않나.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새로운 사건에 관심을 기울인다. 전에 일어난 사건은 잊혀진다. 그게 가장 힘들다. 잊히는 게 가장 힘들다. 잊히는 건 곧 고립된다는 말이니까. 그래서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농성자들이 다른 뭔가를 찾아야 하지만 막상 뭘 찾기가 힘들다. 소송, 집회, 고공 농성, 단식 농성, 해외 원정 투쟁, 문화제를 다 했지만 극한투쟁이 아니면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기 때문에 고민스럽다. 1인 시위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면 그걸 하지 철탑에 올라간다든지 단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다양한 시위 방식이 일상적인 투쟁이 되고, 언론에서도 기삿거리가 안 되다 보니까… 극한투쟁을 해도 며칠 지나고 나면 다시 잊혀지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까, 사실 농성자로서는 많이 힘들고 어렵다. 아닌 게 아닌가 너무 힘들다. 대한민국에 산다는 게 참 힘들고 서럽다. 자본과 권력이 결탁해 국민을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스 : 그동안 너무 무거운 질문만 한 것 같다. 곧 설인데, ‘새해 희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인근 : 새해 희망은… 얼른 콜트콜텍 문제가 해결돼서 그리운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박 사장이 전향적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지만… 노동자들은 더 이상 양보할 게 없다. 십 년 넘게 싸웠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부당하다면 과감히 수정하겠지만 결코 부당한 내용이 아니다. 국내 공장을 그렇게 폐쇄시켜서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쫓아놓고는 10년째 노사 대화자리에 한 번도 (박영호 사장이) 직접 나온 적이 없다. 위임장 받은 간부가 대신 나오는데 서로 무슨 대화가 되겠나. 10년째 저희가 사측에 요구하는 건 단순하다. 국내 공장을 정상화하고, 해고노동자들을 복직시키라는 것이다. 회사는 현재 기타를 만드는 국내 공장이 없는데 어떻게 복직시키냐고 한다. 좋다, 그럼 국내에서 기타 생산을 안 하겠다는 걸 문서화해서 공증을 받자고 했더니 그걸 왜 써 줘야 하느냐고 묻는다. 언젠가는 다시 국 공장을 가동할 생각이 있지만 우리들과 같이 일하기는 싫다는 거다.

[인터뷰] 콜트콜텍 공대위 랑희 활동가

* 미디어스는 콜텍 이인근 지회장을 만나기 앞서, 8년 가까이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 온 콜트콜텍 공대위의 랑희 활동가를 만났다.

미디어스 : 콜트콜텍 사태 초기부터 연대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만남의 시작이 궁금하다.

랑희 : 활동하는 곳이 인천인데 콜트악기 부평 공장에서 정리해고가 일어났다고 해서 그때 집회에 들렀었다. 집회를 하면 찾아가는 정도였지만 공장에 직접 가봤던 그때의 기억이 굉장히 강렬했다. 나중에 문화연대가 콜트콜텍 사태에 연대하면서 여러 가지 문화행사가 열렸는데, 여기에 참여하면서 공동행동을 하게 됐다. 그게 2009년쯤이었던 것 같다.

미디어스 :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하는 투쟁이라면 왠지 다른 곳과 분위기가 좀 달랐을 것 같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만든 밴드도 있다고 하던데.

랑희 : 2011년~2012년에 복직 투쟁할 때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집’이라는 이름을 짓고 부평공장에 진을 치고 있었다. 연대하는 사람들도 함께. 문화제도 하고 미사도 하고 각종 프로그램도 진행하면서 빈 공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작가들이 입주해서 각자의 작업실을 만들고 거기서 살았다. 이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이 계속 공장으로 ‘오게끔’ 만들었는데, 회사가 공장 자체를 매각하고 악기제조업에서도 손을 떼서 이듬해 모두 쫓겨났다.

사람들은 기타노동자들이니까 당연히 기타를 엄청 잘 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이 분들은 기타를 제대로 연주해 본 적도 없었다. 기타를 만들 줄은 알지만 전 공정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었고, 자기 부분만 알았다. 아무래도 악기노동자들의 투쟁이니 뮤지션들과의 연대가 활발했는데 ‘기타노동자가 기타도 못 치면 어떡하냐’ 이런 얘기가 하도 자주 나와서 아예 밴드를 만들어 보자 해서 ‘콜밴’(콜트콜텍 노동자 밴드)이 탄생했다. 처음에는 해고자 4명이 각각 기타, 베이스, 까온(앉아서 치는 타악기의 한 종류)을 맡았고 3명이 하고 있다. 악기를 전혀 다루지 못해서 배우는 데 한참 걸렸지만 수요문화제에서 첫 공연을 한 후 지금까지 유지하며 자기 투쟁을 알리는 활동을 ‘공연’을 통해 해 내고 있다. 작년에는 투쟁 3000일을 맞아 전국 투어도 했다. 4월 20일에 출발해서 진도 팽목항, 제주 강정마을, 재개발 반대 투쟁 중인 부산 만덕공동체, 생탁-한남교통 노동자들이 고공 농성 중인 부산시청 앞 광고탑, 스타케미칼 차광호 씨의 구미 고공 농성장 등을 훑었다.

미디어스 : 지난해 10월부터는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랑희 : 오랫동안 투쟁을 하다 보니 소수의 노동자, 4명만이 남았다. 사실 뭔가를 하기가 무척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매주 목요일에 서울 강서구 본사 앞에서 집회를 하고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홍대 클럽 빵에서 수요문화제를 하고… 일이 있으면 그걸 하는 식이었는데 지난해 9월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여러 가지 망언 시리즈를 내놨다. 거기에 강성인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면서 콜트콜텍을 얘기했다. 투쟁 9년차 노동자들의 현실을 왜곡해서 얘기한 거다 보니까 (해고노동자들은) 그 말을 듣고 굉장히 자존심 상해하고 모욕감을 느꼈다. 회사가 망하지도 않았고. 우리끼리는 이런 농담도 했다. ‘진짜 강성이었으면 이런 얘기 안 나온다. 우리가 앞으로 정말 강성이 되어야 한다’고. 콜트악기 방종운 지회장은 ‘우리 투쟁을 얼마나 무시하면 저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여전히 싸우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 존재로 취급되고 있나’ 하며 분노하셨다. 특히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정부여당의 기조에 (콜트콜텍이) 활용됐다는 것에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았다. 김무성의 막말 제물이 된 것이기도 해서 그냥 못 넘어가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노조가 있어도 이렇게 어이 없이 해고를 당하는데 노동개악 후에는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해고하겠나, 먼저 해고된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싸워야 한다 해서 단식 농성을 벌이게 된 것이다. 45일째에 실려가셔서 지금은 복식 중이시다.

미디어스 : 싸움이 길기도 했고 남은 사람들도 적다고 했다. 100일, 1년 싸움도 힘든데 사실 10년 투쟁은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울지 감히 상상이 안 된다. 그럼에도 투쟁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

랑희 :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똑같이 사는 것이다. 매일매일 극적일 수는 없지 않나. 하루하루 살면서 그만큼 더 버티는 거다 보니까. 어쩌면 기사로 쓸 수 있는 ‘거리’는 별로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늘 ‘뭔가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한다. 이 사람들이 잊혀지니까. 잊혀지는 게 제일 두렵다. 회사는 이 사람들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는데 세상으로부터도 잊혀지니… 이 문제를 잊지 않는 목소리가 계속 나올 때 회사도 부담을 느끼는데, 투쟁 10년이 되면 수요문화제도 그냥 ‘매달 하는 것’이 되고 만다. 뭔가를 꾸준히 하고 있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매번 새로운 걸 할 수도 없으니 늘 불안과 긴장 속에 있다. 잊혀지면 어떡하지. 우리를 잊으면 어떡하지.

당사자들이라고 중간에 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없었겠나. 어제 마음과 오늘 마음이 다를 수 있고 이렇게 계속하는 게 미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을 거다. 주변에서 만류하면 흔들렸을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싸워야겠다고 결심한 건 각자 마음 속 ‘무언가’ 때문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보고 ‘안됐다’고 하면서도 가족을 생각한다면 빨리 다른 직장을 구해서 사는 게 더 낫지 않냐고 조언한다. 현실적으로 와 닿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한마디’로 설명되기가 힘들다. 지금 이 시간과 공간을 버티는 데에는 어떤 중요한, 묵직한 마음이 있는 것이니까.

그게 자기가 노동자로서 버릴 수 없는 신념일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러면 안돼,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 인정하고 넘어갈 수 없다는 무엇이 있을 수도 있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는 것 같다.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라는 거다. 이걸 타협하게 되면 다른 걸 얻어도 내 마음이 무너지니까. ‘후회’라고 표현하기엔 좀 약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지는 빚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미디어스 :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을 꼽자면.

▲ 콜트콜텍 공대위 랑희 활동가 ⓒ미디어스

랑희 : 기타노동자들을 처음 만나본 거였다. 공장을 가본 것도, 기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된 것도 이들 덕분이었다. 만들어진 ‘악기’는 사람들에게 즐거움, 행복을 준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사람들은 악기를 갖고 자기 삶의 어떤 부분들을 표현하고, 그 시간은 삶에서 소중한 부분이 된다. 특히 음악인들에게 기타라는 것은 삶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어떤 것이 되는 거다.

그런데 정작 그런 악기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도 비인간적이었다는 거다. 먼지가 가득 쌓이는데도 창문이 없어 환기도 못하는 곳에서 일하면서, 자기 월급보다 비싼 기타를 만드느라고 자기 몸보다 소중하게 다루고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기타를 만든다는 자부심 하나는 굉장히 컸고. 기타라는 물건과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이 사람들 때문에 알게 됐다.

또, 콜트콜텍 사태에 연대를 함으로써 다른 연대가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기타노동자들을 만난 후 알게 된 작가들, 사진가들, 종교인들, 시민들… 그분들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일을 벌일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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