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주의 BEST : 잭블랙 ‘무도’ 출연, 원 모어?
MBC <무한도전> (1월 30일 방송)

경규옹은 늘 말씀하셨다. 예능 녹화를 길게 한다고 다 재밌는 게 아니라고. 정말 그랬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잭블랙은 단 4시간의 녹화만으로도 40시간 못지않은 재미를 쏙쏙 뽑아냈다. <무한도전>이 잭블랙을 위해 한국예능 속성과정을 준비했다면, 잭블랙은 그에 대한 답례로 ‘예능녹화 속성과정’을 몸소 보여줬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만나기 전 차에서 내려 대기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잭 형’의 몸에는 <무한도전>의 피가 흘렀다. 입으로 자체 BGM을 만들면서 본인의 등장을 웅장하게 만들었고, 대기실 소파에 그대로 누워버리면서 마치 어제까지도 녹화한 사람처럼 행동했으며, 무려 형돈이 옷을 입고 녹화장에 등장하면서 그의 빈자리를 채웠다. 멤버들과 만난 지 5분 만에 잭블랙은 유재석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면서 혼연일체의 경지에 이르렀고, 10분 만에 기어이 <무한도전>을 리드하고야 말았다.

▲ 1월 30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무한도전> 잭블랙 편이 재밌었던 것은 단순히 잭블랙이 웃겨서만은 아니다. 물론 잭블랙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재미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잭블랙과 <무한도전>의 궁합이 유독 잘 맞았던 부분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되는 건, 내한스타 본연의 매력을 드러낸 프로그램이 <무한도전> 이전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5분 남짓한 인터뷰는 시간상의 제약도 있긴 하지만, 누가 나왔든 그가 어떤 영화에 출연했든 어떤 캐릭터를 맡았든 간에 무조건 ‘불고기가 좋냐, 비빔밥이 좋냐’는 음식 취향을 묻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아냐고 묻고, 마지막에 가서는 ‘연예가 중계 살람해요(사랑해요)’ 혹은 ‘한국 대박’ 같은 어설픈 한국어를 구사하게끔 만든다. 얼굴만 바뀌었지, 그들의 워딩은 별반 다를 게 없다.

물론 이 날 <무한도전> 멤버들도 잭블랙에게 ‘대박’, ‘쩔어’ 같은 유행어나 ‘손가락 하트’ 같은 제스처를 요구하긴 했지만, 이것은 여섯 남자들의 흥이 절정에 올랐을 때 터진 감탄사처럼 매우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손가락 하트’마저 또 하나의 슬랩스틱 코미디로 승화시켰다. 일방적으로 요구한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웃음. 경직된 인터뷰가 아니라 온전히 잭블랙 스타일에 맞춘, 그러면서도 <무한도전>의 색깔을 자연스럽게 덧입힌 방송.

모든 면발이 잭블랙의 입 안으로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6초 만에 우동 먹기, 마시멜로 14개 입 안에 넣기, 스타킹 쓰고 촛불 끄기, 물공 헤딩 등 그는 <무한도전> 속성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마치 이제 갓 예능에 입성한 신인의 자세로, 그러나 적응력만큼은 유재석보다 더 빨랐다. 4시간 동안 하얗게 불태웠으면서도 “내일 갔으면 좋겠다”고 혼잣말하던 ‘잭 형’의 진심. 그렇다면 One More?

이주의 WOSRT : 기승전‘살’인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1월 30일 방송)

66사이즈 이상의 옷을 팔지 않는 옷가게에서 90kg 넘는 딸에게 “너도 한 번 입어봐”라는, 배려를 가장한 폭력적인 말을 건넨다. 딸이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면 사과는커녕 “네가 분위기 망쳤어”, “네가 창피한 걸 좀 깨달았으면 좋겠어”라고 더 몰아세운다. 멋쩍어서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또 음식 보지?”라고 몰아붙인다. 그래도 엄마를 도와주겠다고 빨래를 개는데 그걸 본 엄마는 “일어서서 개라”고 구박한다. 딸을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그녀의 커다란 수면바지를 돌려 입으면서 깔깔깔 웃는다. 그들은 ‘충격요법’이라 말하지만, 이건 인신공격이다. 주먹만 휘두르지 않았지 폭력과 마찬가지다.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에는 뚱뚱한 셋째 딸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 두 언니, 그리고 여동생이 출연했다. 셋째 딸에게 뚱뚱하다고 구박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먹는 걸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살이 찌고 성격도 난폭해졌다”면서 모든 원인을 살로 돌리고,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로 “남자친구도 못 사귀고 취직도 못하고 결혼도 못할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비만은 곧 인생의 실패고, 뚱뚱한 사람은 곧 인생의 낙오자라는 편견이 가족들의 뇌리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지금 되게 행복하다. 딱히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셋째 딸의 항변은 쉽게 증발해버린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논리를 강요한다. 넌 불행하다고, 불행해야만 한다고.

▲ 1월 30일 방송된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제작진도 사실상 공범이다. 셋째 딸은 “가족 중에서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출연자 중에도 없었다. 왜 셋째 딸이 날씬하지 않음에도 행복하다고 말하는지 그 이유는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다. 대신, 얼마나 많이 먹는지 궁금해 한다. 셋째 딸이 1분에 우동 몇 그릇을 먹는지 세어보기 위해 우동 수십 그릇이 놓인 식탁까지 녹화장에 대령했다.

가족뿐만 아니라 셋째 딸까지 모두 ‘괜찮아 괜찮아’를 외치기 위해서는 ‘셋째 딸은 스스로 불행하지 않다는데 굳이 다이어트를 권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주제를 논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방송 1시간 동안 셋째 딸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어떻게 다이어트를 할 것인지, 가족이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등 방법론에 대해서만 갑론을박을 했다. 폭력의 강도만 덜할 뿐, 몰아붙이는 건 패널들이나 가족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제작진이 마련한 화해의 시간에서도 끝까지 ‘딸의 건강’이 아니라 “언니 결혼식에서 평균체중 만들어서 드레스 입고 들러리 서야 하니까” 다이어트를 하라고 권했다. 이래놓고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가온 / TV평론가
웹진 텐아시아와 잡지사 하이컷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 회사를 퇴사한 후에도 여전히 TV를 놓지 못하고, TV평론으로 밥벌이하는 30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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