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전국 민심이 교차하는 기간이다. 명절 밥상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따라 이후 정치의 국면이 달라진다. 이번 설은 총선을 앞두고 있는데다 기성 정당의 주요지지 기반 지역 여론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에 특히 더 중요하다.

초미의 관심사는 호남 여론이다. 제1야당이 호남 여론을 중심에 놓고 분열하였기 때문이다. 다 같이 국민여론이라는 점에서는 최소한의 공통지반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간 호남지역 여론과 수도권 여론이 일정하게 분리된 형태로 움직여왔던 것도 사실이다. 수도권에서 안철수 의원의 신당창당을 비교적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흐름이 강했다면 호남의 경우 “서울에서는 아직도 문재인이 인기라던데?”라며 의아해하는 경우가 있었을 정도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두고 저울질하는 호남 민심

이번 설에 수도권과 호남 여론이 교차된 이후의 변동 가능성을 예측해봐야 하는 건 그래서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볼 때 유리한 건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일 가능성이 조금 더 크다. 분당 이후 악재가 될 요소보다는 호재가 될 요소가 많이 쌓인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창당을 촉발하였음에도, 국민의당에 대한 호남 민심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된다.

국민의당은 한상진 창준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을 필두로 하여 이명박 정부 인사 영입론, 안철수 사당화론, 철새도래지론 등에 흔들려왔다. 이 주제들은 국민의당 창당을 둘러싸고 일어난 단순한 잡음이 아니라 당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이승만 국부’ 발언과 이명박 정부 인사 영입론은 호남 여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식구가 아니’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그런데 동시에 국민의당 지지층은 당 지도부가 중도적 행보를 이어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당이 명확한 정책적 지향을 가지지 못하는 이상 이 ‘중도적 행보’를 보여주는 방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런 식의 논란은 반복될 것이다.

▲(위) 설 연휴가 시작된 6일 오전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가 서울 노원구 상계 중앙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새해 인사를 한후 상인들이 건넨 전을 맛보고 있다. (연합뉴스) / (아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7일 낮 중앙위원회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의결로 공식 사퇴하기 전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중앙당 당직자들과의 오찬에서 당직자들로부터 '퇴직금'이름으로 금화 모양의 초콜릿 한 상자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안철수 의원의 사당(私黨)이 되고 있다는 비판과 안철수 의원이 호남에서 개혁정치를 추진하지 못하고 구세력에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같이 나오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애초 안철수 의원은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하였으나 그와 행보를 함께한 것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기성 정치인들이다. 여기에는 말할 것도 없이 ‘공천’ 문제가 걸려있는데, 국민의당 지지층 여론을 보면 그들에게 공천을 줘도 문제, 안 줘도 문제이다. 현역 의원들에 대한 비토 여론이 강한데다 더불어민주당이 ‘호남 개혁 공천’을 공언하고 있으므로 최소한의 경쟁을 위해 일정 수준에서의 ‘물갈이’는 필수인데, 이를 기성 정치인들에 가까운 인사로 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결국 안철수 대표가 선호하는 인물을 ‘꽃아 내리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안철수 사당화’ 비판에 다시 직면하게 된다.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은 신진인사의 영입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정치적 재산권을 주장하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등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가 많아졌다. 최근의 영입사례를 통해 ‘사람’이라는 문제에서 우위를 주장할 수도 있게 됐고 정책이라는 측면에서도 국민의당보다 분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입장이 됐다. 국민의당 지지자가 그나마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논리는 ‘문재인으로는 정권교체 못 한다’인데, 그렇다고 안철수 대표가 정권을 교체할 적임자로 재기할 수 있는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최근의 누리과정 예산 문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과의 설전 문제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다시 주목받는 상황도 있었다. 반면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 이외의 유력 차기대권주자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호남에서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가 만나 대화를 나누면 누가 할 말이 더 많을 것인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TK목장의 결투, 박근혜 아킬레스건 될까

여권의 상황을 보자면 가장 ‘핫’한 곳은 대구경북 지역이다. TK지역은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정치기반으로 볼 수 있다. ‘배신의 정치’로 찍힌 유승민 의원을 필두로 한 일군의 친박 이탈자들이 여기서 살아남는지 아닌지가 관건이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낙하산에 태워 내려보낸 일군의 ‘진박’들이 친박 이탈자들을 꺾고 승리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 이후 새누리당에 대한 직접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 100% 상향식 공천을 관철시키겠다고 장담하는 김무성 대표가 친박 이탈자들과 다시 연합하면 박근혜 정권은 실질적 레임덕 국면에 빠져들 수 있다. 최경환 의원이 전면에 나서 ‘진박 감별사’ 노릇을 하고 다니는 이유에도 이런 절박함이 작용했을 것이다.

여론을 가늠해보면 ‘진박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노동개혁이니 경제활성화니를 두고 국회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행보를 해왔다. 급기야는 경제살리기를 위한 국민적 서명에 동참하는 깜짝 놀랄만한 행동까지 했다. 국민적 호응이 이어지고 대통령에 대한 동정여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조짐은 없다. 민심은 냉랭하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일을 오로지 국회가 가로막아서 못하고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권한과 책임을 가진 대통령이 제대로 정치를 하지 못해서 이런 상황이 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런 판국에는 ‘진박 마케팅’이 먹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진박’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인사들의 경쟁력이 그리 대단해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이와 비교해 ‘배신의 정치’로 찍힌 유승민 의원은 이미 전국구적인 인물이 됐다. 대구 사람들 입장에서는 ‘우리를 물로 보지 마라’는 생각을 할 수 있고, 유승민 의원에 호의적인 수도권 여론은 설을 경유하면서 이런 흐름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 대단히 문제적이다. 대통령이 낙하산에 태운 사람들이 TK에서조차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이후 상황은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 국면이 돼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위)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3일 오후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에서 열린 추경호 예비후보(대구 달성군)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아래)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이 5일 오후 대구 동구 불로전통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아직 변수는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의 선전에 의한 위기감 조성과 같은 문제를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김부겸 의원이 당선되고 유승민 의원이 살아 돌아오면 새누리당은 더 이상 대통령의 직할 통치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TK가 실질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정권재창출이 힘들어 진다는 것을 고려해야 되는 것도 문제다.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이 미워도 명줄(?)을 끊을 수야 없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확산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가능성이 큰 것은 아니지만 동북아 정세의 위기가 유승민 의원으로 불똥이 튀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유승민 의원은 국회 국방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사드 배치를 강력히 주장해온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중국이 이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외교력 및 대북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확대되는 상황은 유승민 의원에게는 일견 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윤상현 의원이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정치인들이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고 치고 나온 것 역시 이런 상황을 반영한 걸로 보인다.

문제는 사드가 어디에 배치되느냐는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대구, 정확히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이 유력한 걸로 판단된다. 살고 있는 지역 바로 옆에 군사시설이 배치되는 상황을 대구 시민들이 어떻게 판단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과연 핵미사일로부터의 안전에 환호하게 될지, 아니면 여러 불이익에 분노하게 될지는 그 때 가봐야 안다. 분노의 방향이 사드를 결국 배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박근혜 대통령에게로 향할지, 대구 배치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도입론을 강하게 주장한 유승민 의원에게 향할지도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박근혜 정권이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급하게 추진하면 반드시 유승민 의원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 지역 설날 밥상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박근혜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간 통화 이야기가 주요하게 오를 걸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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