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위 “KAL기 폭파, 북이 자행”>

‘국정원 과거사위’의 조사결과를 다룬 오늘자(25일) 조선일보 1면 제목이다. 하필(?) 이런 제목을 뽑았을까 ‘의문’이 들긴 하지만 탓할 마음은 없다. 제목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의 문제는 편집자의 권한이다. 그 자율성은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결과를 다룬 전반적인 보도태도는 ‘문제’가 많다.

▲ 조선일보 10월25일자 1면.
국정원 과거사위. 정확히 말해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4일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펴낸 보고서는 모두 6권. 국정원 과거사위의 이번 조사보고서는 중앙정보부와 그 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법부와 대학 노동 등 전사회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사찰과 압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 등 사법기관은 자의든 타의든 정권의 사찰과 협력에 ‘적극’ 협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결과…‘조선일보식 보도’의 전형을 보여주다

▲ 조선일보 10월25일자 6면.
방대한 분량의 조사보고서 가운데 조선일보가 ‘중점적으로 택해서’ 지면에 배치한 것은 3가지다.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과 KAL 858기 폭파사건 그리고 정보기관들의 조선일보 통제 시도.

1면에서 <과거사위 “KAL기 폭파, 북이 자행”>이라는 제목을 통해 ‘자신들의 색깔’을 드러냈으면 관련기사 등을 통해서는 이번 보고서의 대략적인 내용을 간추려 줄만도 한데 조선일보의 관련기사(6면) 제목이 <‘KAL기 폭파’ 음모론은 사실무근>이다. 그 하단에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을 배치했고, 우측은 ‘조선일보의 탄압사’를 다루고 있다. 국정원 과거사위의 방대한 조사보고서가 조선일보에 와서 3가지 형태로 축약된 셈이다.

물론 조선은 국정원의 7대 의혹사건을 표로 정리하는 등의 ‘성의’를 보였고 이는 동아와 중앙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번 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결과를 DJ 납치사건과 KAL기 858기 폭파 사건위주로 보도한 곳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조선일보를 문제 삼는 이유가 있다. 조선의 6면 <정보기관들 60-80년 ‘조선일보 통제시도’ 드러나>라는 기사 때문이다.

상당한 분량의 ‘조선일보 탄압사’ … 현대사에서 그만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나

이 기사는 조선일보가 이날 1면과 6면에서 다룬 국정원 과거사위가 발표한 조사결과 내용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보면 알겠지만 한 지면(6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문제 없나. 문제 많다. 정치권과 사법부, 대학 노동 등 전사회 분야에 걸쳐 정보기관이 광범위한 사찰과 압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국정원 과거사위의 조사결과에서 ‘조선일보 탄압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다른 건 논외로 하더라도 언론분야에만 국한시켜도 조선일보의 지면배치가 얼마나 ‘오버스러운지’ 알 수 있다.

조선은 6면 기사에서 “중정은 72년 10월 1일부터 73년 3월 4일까지 약 6개월간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한 업체의 명단을 작성했다”면서 “73년 3월 5일, 조선일보 3월 6일자에 광고를 게재하기로 예정돼 있던 9개 업체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전면 취소하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은 “과거사위는 조선일보 광고탄압의 원인에 대해 ‘당시 총선 부정선거 등 정부 비판 보도와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같은 날짜 한겨레를 보면 다른 해석이 나온다. 이런 내용이다.

“중앙정보부는 1973년 3월6일치 <조선일보>에 광고를 싣기로 돼 있던 국제극장 등 9개 업체 관계자에게 압력을 넣어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했다 … 하지만 과거사위는 ‘정부 비판적 보도 때문에 광고 탄압을 받았다는 조선일보 쪽 주장과는 달리 당시 다른 신문도 정부 비판 보도를 한 점을 볼 때 유신 선포 뒤 언론통제 수단으로 (광고 통제가) 강구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한겨레 10월25일자 10면.
안기부와 당시 2대 일간지 사장 ‘협조’ 논의는 왜 빠졌나

유신정권이 광고통제를 언론을 통제하기 위한 보편적인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에는 이런 부분은 언급돼 있지 않다.

또 이런 내용도 있다. “안기부가 지난 84년 2월 ‘신학기 학원대책 추진상황 보고’에는 국내 2대 일간지 사장을 만나 협조를 논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해당 언론사들의 반응은 ‘협조 약속. 근일 중 기획물 연재 기사 작성 중. 대학 이사장이라는 입장 초월, 지원의사’ 등으로 나타났고, 실제 한 신문사는 같은 해 3월 관련 기획기사를 여섯 차례에 걸쳐 내보냈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하지만 이 또한 조선일보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외에도 <사상계> 폐간과 관련한 중앙정보부의 공작 등도 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결과에는 언급돼 있지만 조선일보는 ‘침묵’이다.

정리하자. ‘조선일보 탄압사’를 평가절하하려는 마음은 없다. 다만 그것이 한국 현대사와 언론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 등을 고려했을 때 지나친 오버라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오버도 정도껏 해야 하는 법인데 오늘자(25일) 조선일보는 그 정도를 넘어버렸다. 정도를 넘은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 '특혜'를 통해 급성장을 해온 일부 언론사가 당시 어떤 논조를 보였는지 고스란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조선의 이 같은 보도는 '혼란'스러움을 준다. 그 '특혜'로부터 조선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이 "우리 탄압 많이 받았다"며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반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한편으로 조선이 오버하는 '의도'가 의심스럽다. 조선일보는 국정원 과거사위의 조사결과를 ‘KAL 858폭파’가 북한의 소행이었다는 쪽으로 ‘주지’시키면서 ‘조선일보 탄압사’를 강조, 결국 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결과 전반을 사실상 ‘왜곡’시키는 쪽으로 비틀고 있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조선일보식 보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염치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이렇게 의미를 풀이하고 있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결과에 대한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서 염치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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