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고통이다. 무너진 공영방송의 현재를, 그 밑바닥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MBC의 ‘알려드립니다’를 보면서 이런 고통은 배가되었다. 벽을 보고 말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는 표현은 이제 단지 비유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가 공영방송 MBC를 둘러싼 여러 추문에 대해 고민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전달한지 여러 날이 되었으나, 이른바 녹취록 사태는 비상식에서 상식으로의 변화를 추동하는 게 아닌 밑바닥의 아래에 또 다른 밑바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만 기능하고 있다.

MBC는 이 사태를 “MBC 본부장과 간부가 한 인터넷 매체 사람들과 사적 대화를 나눈 것을 녹취록이랍시고 폭로하여 마치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처럼 침소봉대하고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규정한다. 공영방송의 고위간부가 사적인 자리에서 아무 말이나 좀 하였기로서니 그것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투다.

권력형 비리를 취재하고 보도해 온 MBC의 구성원이라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MBC의 고위 간부는 극우 인터넷매체의 관계자와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고 모종의 계획에 의기투합하였다. 이는 극우 인터넷매체가 언론노조 MBC본부를 공격하고 <100분 토론>,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관계자가 출연하는 등 구체성을 가진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건 ‘사적 대화’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다. 권력이 작동하는 자리가 사적인 성격의 것인지 공적인 성격의 것인지는 문제의 본질과 아무런 상관없다.

▲ 뉴스타파 화면 캡처

만일 MBC가 이 문제의 본질이 ‘사적 대화’에 국한된다고 본다면 해야 할 일은 오히려 명확하다. 이따위 논란의 원인이 된 것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사과하고 진상을 조사하며 관계자의 잘잘못을 가려 징계하는 절차를 밟는 것이다. 그게 공영방송의 바람직한 처신이다. 그러나 MBC가 선택한 것은 ‘특정 정치세력’, ‘모 정치인’, ‘좌파 인사’의 ‘정치 공작’에 힘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녹취록과 관련한 내용을 이른바 ‘좌파 신문’인 한겨레와 ‘좌파 인터넷 매체’인 뉴스타파가 공개해 파장이 인 날 MBC가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의 선거법 위반 의혹 내사 사실을 보도한 것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즉, MBC는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앞뒤 맥락도 파악하지 않은 채(이미 다 아는 얘기니 파악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곧바로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태도를 정한 것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이들은 공영방송의 가치를 둘러싼 논란을 좌우세력이 가진 힘의 대결로 파악하고 있다. ‘알려드립니다’에는 이들의 이러한 인식과 철학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는 앞서 자신들의 행위를 ‘사적 대화’로 치환한 것처럼 공적 맥락을 어떤 음모로 둔갑시켰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의 인식 속에서 폭로를 통한 문제제기는 특정 정치인의 ‘기획 이벤트’로, 보도를 통한 비판의 확산은 좌파들의 조직적 역할 분담으로, 비판은 정치공작과 음모 이간질로 맥락이 뒤바뀐다.

MBC의 고위 관계자들이 언론 보도와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곧잘 소송을 선택한다는 것도 이들이 저널리즘보다 ‘힘’을 선호하는 자들이라는 걸 나타내준다. 이를테면 녹취록에 등장하는 MBC 측 법무 담당 인사의 다음 발언을 보라.

이번에 ○○○ 상대로 열 몇 개를 가지고 정정보도 들어갔는데, 이제 ‘해라’ 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이게 구차한 거야. 정정보도를 들어가 갖고 뭘 이렇게 게시하라 그러는 게. “야, 됐어. 민사소송이나 들어가자. 빨리.” 소송 들어갈 거예요.

“비용문제가 아니라 그냥 간단하게 지난번에 ○○○(에 소송을) 했더니 알아서 정정을 했어요. 그것도 거기다 사과까지 했어. 우리는 사과를 강제할 수 없잖아요. 근데 ‘MBC와 관계자 여러분께 심려끼쳐 죄송합니다’라고 그렇게 했어. 거기까지 알아서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소송) 취하했죠. “아름답다 니네.” 미디어스는 (정정보도 요구) 하나 들어갔는데, 미디어스한테 뭐라고 딱 하니까 우리 회사(에 대한) 게시물에 전문을 게재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인가 어제 미디어스 (소송) 하나 들어갔고, 오늘 “○○○ 빨리 서둘러.” 그래서 오늘 딱 (정정보도) 들어갈려 그랬더니 결재까지 올렸어. “와, 너무 짜치다. 열 몇 개 기사를 정정보도를 해 갖고 탁자에서 만나는 건 좀 아니다. 그냥 소송 가자 이건.” 왜냐면 사실적시가 아닌 부분이 많아갖고 그걸 손배로 가버릴려면 악의적인 표현들이잖아, 평가적 판단들. “야, 이거 그냥 소송 가서 일거에 해결해야지, 몇 개 사실은 정정, 몇 개는 민사로 따로 하지 말고 그냥 한 번에 민사로 가지.”

요약하자면 자신들을 비판적으로 다룬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 등을 요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위력이 없으니 아예 처음부터 민사소송을 걸자는 얘기다. 실제로 모 매체에게 이러한 방식을 적용해보았더니 효과가 있더라는 경험담까지 곁들여졌다. 오해하지 마시라. 언론이 법외의 존재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언론이 아무리 공익을 추구하려 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이익을 해칠 가능성이 상존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한 행위가 언론 보도라는 특수한 맥락 안에서 공익을 위한 것으로 판단될 여지가 있는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만큼 져야 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선 법을 동원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MBC의 이런 태도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 지는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MBC는 노조가 경영진을 비판하거나 매체전문지 등이 자신들에 불리한 보도를 할 경우 이에 대한 해명을 내면서 반드시 ‘민형사상 법적조치’를 언급한다. 지난 26일 내놓은 입장에도 이런 취지의 주장이 들어가 있다. “문화방송은 사실에 대한 확인 없이 무차별 허위 기사를 유포하고 있는 일부 매체의 비정상적인 보도 행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또한 이로 인해 발생되는 명예훼손에 대해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방침임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문장이다.

MBC는 이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자신들의 보도나 행태에 대한 약간의 비판에도 무조건적인 법적조치를 검토해온 것으로 보인다. MBC가 미디어스와 기타 매체전문지 등에 그동안 건 소송의 내용을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MBC는 자신들의 보도에 대한 모든 비판적 평가를 거부하고 있다. 자신들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상대를 윽박지르고 위축시키기 위해 소송이라는 기술을 동원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어느 매체는 MBC가 하도 불필요한 소송을 마구잡이로 해대니 아예 MBC 관련 기사를 쓰지 않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소문도 있다. 아마 MBC는 자신들의 마구잡이식 소송이 이런 효과를 불러일으키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MBC 고위 관계자들의 이런 생각은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 해고에 대한 태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그때 최승호 하고 박성제 해고시킬 때 그럴 것(패소)을 예측하고 알고 얘들을 해고시켰거든, 그 둘은. 왜냐면 증거가 없어. 걔네들이... 걔네들 후견인이야. 노동조합 파업의 후견인인데, 이놈들 후견인은 증거가 남지를 않잖아. 뭘 했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놈을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해고를 시킨 거예요.”

실제로 두 사람 해고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2심까지 일관되게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MBC 고위 관계자들이 계속해서 문제삼고 있는 170일 파업에 대해서도 2심까지의 법원은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잘못된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정답이다. 이를 위해 MBC를 비판하는 매체전문지들을 돈 몇 푼에 ‘외주를 주십사’ 비위를 맞춰가며 행동대장처럼 처신하는 생계형 극우주의자들과 동급으로 취급하면 곤란하다. 우리는 그따위 것에 겁먹지 않는다. 우리가 묻는 것은 MBC의 저널리즘에 대한 것이지 특정 정치세력이나 어느 ‘좌파 인사’의 이해에 관한 게 아니다. 공영방송은 극우주의자들이 그들이 상정하는 어떤 ‘좌파’들과 힘을 겨루는 각축장이 아니다.

▲ 안광한 현 MBC 사장(왼쪽)과 김재철 전 MBC 사장 (연합뉴스)

“MBC가 당신들 것인가”라고 묻는 질문은 “당신 것이 아니고 내 것”이라는 사실판단을 전제하지 않는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했다. 이 모든 사단은 ‘낙하산 사장’을 통한 특정정치세력의 방송장악으로 시작됐고, 그 ‘낙하산 사장’에 비위를 맞추던 이들이 지금도 MBC 고위직을 줄줄이 꿰차고 있다. 이 ‘낙하산 사장’은 2014년 자신의 고향에서 지자체장 선거에 출마하려다가 낙마하였다. MBC를 정치적 발판으로 삼으려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이렇게 분명한데도 자신들에 비판적인 상대를 ‘특정 정치세력’이니 ‘좌파’니 낙인찍는 MBC의 현실 인식은 좋게 말하면 유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파렴치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한다. MBC는 당신들 것이 아니다. 그러니 헛소리 그만하고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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