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경영학을 전공하고 광고회사에 다니는 영은씨는 퇴근 후 집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SNS에 즐겨보는 드라마 후기를 올린다. SNS 친구들이 영은씨의 글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기도하고, 영은씨의 글을 공유하기도 한다.”

“대학시절 미국드라마 번역동아리 활동을 했던 영은씨는 이른바 ‘미드’ 매니아다. 이노베이터(innovator)는 아니더라도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에는 속한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전자제품을 이용하고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다. 가끔은 주말에 바빠서 못 봤던 미국드라마 시리즈를 몰아서 보기도 한다.”

사례 둘

“식품회사 영업부의 고부장도 미드 매니아다. IT 제품에 관심이 많으며, 미국드라마나 영화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보는 것이 익숙하다. 나이를 먹다보니 인터넷에서 미드나 영화를 찾아서 보는 것에 다소 귀찮음도 느끼고 있다. 가끔은 부하직원들이 파일을 찾아서 전송해주기도 한다.”

“영은씨와 고부장은 최근에 넷플릭스라는 인터넷동영상서비스에 가입을 했다. 미드와 영화, 그밖에 다양한 콘텐츠가 서비스된다. 여기에는 추천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콘텐츠를 찾기 위해 인터넷사이트를 검색할 수고를 덜게 된다. 첫 달은 무료이기 때문에 무조건 가입을 했고, 한 달 이용 후에 유료 전환을 고민하기로 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미디어를 이용하는 단편이다. 일종의 가정이지만 엉뚱한 상황은 아니다. 여기에는 TV콘텐츠를 이용하는 몇 가지 키워드가 관통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시청(SNS를 통해 TV 프로그램의 여러 정보를 공유하는 행위)’, ‘빈지뷰잉(binge viewing: 콘텐츠 몰아보기)’, ‘VOD’, ‘OTT’, ‘스마트기기를 통한 TV 시청’ 등이다.

넷플릭스의 등장

세계적으로 파죽지세의 행보를 보여준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했다. 넷플릭스의 국내 진입과 관련해 유료방송업계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여러 나라에서 유료방송을 끊고 OTT만으로 TV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하우스 오브 카드로 대표되는 넷플릭스의 자체 콘텐츠는 세계적으로 큰 열풍이 일기도 했다.

넷플릭스의 서비스가 한국에 공개된 지 보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넷플릭스의 영향력(또는 성공가능성)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물론 이런 의견은 넷플릭스의 국내 진입 전에도 있었다. 높은 지상파콘텐츠 의존도, 유료방송시장의 저가구조, 크지 않은 OTT 시장규모 등이 넷플릭스의 서비스가 강점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전반적인 의견이었다.

국내 진입도 IPTV 사업자와 협력을 통해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이 경우 외관상 보이는 형식은 PP인데, 기존에 미국드라마나 영화를 제공한 PP들을 생각해보면,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대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이미 다른 채널로 많이 이용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넷플릭스의 국내 진입은 사실상 국내 IP를 오픈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유료방송사와 입점료 협상은 불필요하며 바로 가입자들에게 비용을 부과한다. 지불의사가 있는 가입자들은 가입하고 이용하기 때문에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간단하다. 업계의 우려내지는 환호(혹자는 호들갑이라고 표현하기도 함) 때문에 홍보효과도 톡톡히 누렸다.

단순한 드라마 시청을 넘어선 미드 소비

방송업계가 긴장해야 할 부분은 여기부터 시작된다. 쉽게 말하면 넷플릭스는 인터넷을 통해 미드를 보는 사이트다. 인터넷으로 TV콘텐츠를 이용하고 미드에 익숙한 세대는 넓게는 10대~40대, 좁게는 20대~30대일 것이다. 이들에게 SNS, VOD, 빈지뷰잉, OTT는 익숙하다. 건당 과금으로 유료방송에서 VOD를 10개 이용하는 것보다 넷플릭스에 가입해서 필요할 때 VOD를 보는 것이 더 저렴하다. 물론 국내 유료방송사업자들도 월정액 무제한 콘텐츠를 제공하기도 한다. 어떤 사업자가 경쟁우위에 있는지 단정하긴 어렵지만, 넷플릭스와 미드라는 단어의 조합은 프리미엄 브랜드 효과를 제공한다.

즉 넷플릭스로 미드를 이용하는 사람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소비하는 사람이 되며, 방송콘텐츠 이용에 있어서 우월한 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된다. 더불어 SNS를 통해 또래집단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며, 자신의 소비행위가 이질적이지 않음을 승인받는다. 정리하면 넷플릭스의 소비는 최소한 20대~30대에게 문화이며, 패션이라는 것이다.

50대 이상의 시청자들은 미드에 인색하다(전격Z작전, 600백만 달러의 사나이 등은 예외다). OTT를 통해 VOD를 몰아보기에도 익숙하지 않다. TV 수상기에 익숙하다. 가족단위의 시청은 스포츠 경기에서나 봄직하다. 넷플릭스는 적은 비용을 들여서 최대한의 효율성을 만드는 사업자다. 넷플릭스의 입장에서 TV 수상기를 고집할 필요가 없으며, 모든 세대에 소구할 필요도 없다. 운영방식 자체(그리고 브랜드 자체)가 최소한 한국에서는 20대~30대에 소구되고 있다.

이들의 시청행위(또는 관성)를 넷플릭스는 분석할 것이다. 넷플릭스가 뛰어난 점은 이른바 빅데이터 분석능력과 콘텐츠 추천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20대~30대 시청패턴을 분석하고, 로컬 콘텐츠를 제작하면 넷플릭스판 응답하라 시리즈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해당시장에 특화된 콘텐츠를 제작해서 유통하는 것이 넷플릭스의 현지화 정책 중에 하나다. 이러한 콘텐츠가 제작되면 향후 넷플릭스의 아시아 시장 진출은 더욱 광범위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제작사와 콘텐츠를 제작하고 해외 유통과 판권을 넷플릭스가 가져가면, 한류 수출이라는 성과로 포장할 수 있지만, 해외 시장 유통에 넷플릭스 의존이 높아질 수 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한국 시장은 넷플릭스에게 아시아 진입을 위한 물류기지에 불과하게 된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제공되는 콘텐츠는 새로운 콘텐츠라기 보단 예전 콘텐츠가 많다. 시청자들은 항상 새로운 콘텐츠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과거의 콘텐츠도 반복적으로 보는 습관이 있으며, 과거의 추억을 반추하면서 철지난 콘텐츠를 이용한다. 따라서 예전 콘텐츠 자체가 경쟁력 약화의 요인이 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손쉽게 옛날 콘텐츠를 찾을 수 있어서 장점으로 볼 수도 있다.

넷플릭스의 향후 행보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전국단위의 파급력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넷플릭스의 목표도 아닐 것이다. 넷플릭스에 익숙한 이용자, 쉽게 익숙해지는 시청자가 일정부분 형성되면, 이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사업전략을 구상할 것이다. 따라서 국내 사업자들도 넷플릭스를 부러워해야 할 대상으로 볼지, 단순히 여러 사업자들 중에 하나로 볼지, 강력한 견제를 해야 하는 대상으로 볼지 빠른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가끔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 해외사업자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찬희 _ 언론학을 공부하고 직업인이 되었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 한 죄 때문에 십대 시절 심취했던 음악분야로 탈주하기 위한 경로를 아무도 모르게 구축하고 있다. 문화의 표상방식과 이데올로기 비판에는 늘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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