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편향적인 심의를 해서 ‘정치 심의’, ‘청부 심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소위원장 김성묵, 이하 방송소위)에서 결국 사고가 터졌다. 강도 높은 막말로 야권을 비난한 종편 방송 내용에 행정지도 수준의 낮은 제재를 내리려는 여당 추천 위원들의 판단에 반발, 야당 추천 장낙인 위원이 퇴장한 것이다. 그는 “(불공평한) 사례를 아무리 얘기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며 “앞으로 저는 방송소위에는 들어오지 않겠다”고 밝혔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사진=연합뉴스)

20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소위에서는 지난해 7월 31일 방송된 <정치부장 이하원의 시사Q>(이하 <시사Q>)에 대한 의견진술 및 심의가 진행됐다. 당시 패널로 나온 조갑제닷컴 조갑제 대표는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새정치라는 세력이 어떤 성향의 조직인지 분명히 알게 됐을 것이다. 한민족 편은 아니다’고 말했고, <시사Q>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14조 ‘객관성’과 27조 ‘품위유지’ 조항 위반으로 심의 대상이 됐다.

TV조선 보도본부 뉴스센터 정박문 편집2부장은 “<시사Q>는 이하원 정치부장이 자존심을 걸고 품위 있는 방송을 하려고 한다. 조갑제 씨는 국정원과 같은 안보 이슈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이슈가 될 때의 위험성을 짚어보기 위해 출연했던 것”이라며 “‘새정치민주연합이 한민족 편은 아니다’라고 한 데에 야당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죄송하다. 다만, 우리 안보를 위해 국정원의 비밀활동을 야당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는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정박문 편집2부장은 논란이 된 조갑제 대표의 발언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조갑제 대표가 평소 여당과 대통령에게까지 신랄한 비판을 해 왔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사Q>는 가급적 치우침 없이 특히 품위 있는 방송을 하고자 노력했다. 조갑제-장기표 맞대응 토론을 했고, 주승용, 박지원 등 수많은 야당 의원들과 박원순 시장, 윤장현 광주시장도 이 프로에는 다 나왔다”면서 “(새정치가) 한민족 편이 아니라는 이분법적 발언에 대해서는 즉각 (진행자가) 정정했고, 바로 안내 자막을 띄웠어야 되는데 제작진 대응이 미숙했던 것은 깊이 반성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야당 추천 장낙인 위원은 ‘국정원 얘기만 나오면 거의 발작적으로 괴롭히고 선동하고… 새정치는 어느 편에 선 진영이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30명인데 이 중에 21명이 국보법 반공법 위반으로 형을 살고 나온 사람들이다’, ‘야당이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했다’ 등 조갑제 대표의 말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았는데도 여과 없이 전달된 것을 문제 삼았다.

장낙인 위원은 “조갑제 같은 분이 나와서 얘기하면 <시사Q> 시청자들은 (하는 말을) 사실로 인식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한 진행자의 반론도 별로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틀린 발언을 하면 방송 프로그램 내용의 정당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하원 정치부장은 이런 내용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얘기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더라. 사실관계가 틀리므로 객관성을 위반했고 반론이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게 했으므로 공정성 부분도 위반한 것 같다”고 밝혔다.

야당 추천 윤훈열 위원은 TV조선 방송이 막말과 내용의 객관성, 공정성 문제로 방송소위에 자주 올라오는 것을 두고 자체적인 개선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정박문 부장은 “심의실장이 오랫동안 신문기자 하셨던 보도국 간부로 바뀌었고, 데스크 입장에서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얘기해 수정한다”며 “전과 다른 자세와 프로세스를 갖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관계 틀리면 엄중한 잣대 들이대야… 심의 의미 없어”

의견진술이 끝난 후, 여당 추천 하남신 위원은 “조갑제 대표의 고정코너도 아니고 보수논객으로서 자기 주의, 주장, 견해를 피력하는 과정에서 (일부 표현이) 정제되지 않았다는 점을 제작진도 인정하고 재발 방지하겠다고 하니, 권고 조치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고 밝혔다. 김성묵 소위원장은 “(조갑제 대표의 발언에는)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는 것 같다”며 “그러면 법정제재하기 조금 힘들지 않느냐는 느낌을 갖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당 추천 함귀용 위원도 권고 의견을 냈다.

수위 높은 비난이 자주 등장했고 일부 발언은 사실관계도 틀렸는데, 방송사 재허가 시 감점사유가 되는 법정제재가 아닌 행정지도(권고)를 주장하는 데에 야당 추천 윤훈열 위원은 “진이 빠진다”고 반발했다. 윤훈열 위원은 “이렇게 토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본인(제작진)들도 품위유지, 객관성, 공정성 문제를 자인했던 내용을 이런 식으로(의견제시나 권고 등의 행정지도로) 결정한다면…”이라며 “심의규정에 따라 문제가 된다면 심의를 정확하게 해 향후 이런류의 방송이 더 안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규정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장낙인 위원은 “성남시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났을 때 (사상자가) 학생이라고 했다가 젊은이로 바꾼 것 가지고 경고(법정제재, -2점)가 나온다. 국정교과서 문제 관련해 뉴욕타임스 사설 날짜 잘못된 것으로 법정제재가 나오고…”라며 “사실관계 아무리 확인해서 말해도 (종편 막말 방송에서) 정치평론가는 이 정도 (발언)할 수 있는 것 아이냐 해서 대부분 행정지도가 나갔다”고 토로했다.

장낙인 위원은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이 있다면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지 않나. (정치적 논란이 없는 경우) 웬만하면 법정제제가 나갔다”며 “1년 7개월을 들어왔는데 더 이상 방송소위에 들어와서 심의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저는 방송소위에는 들어오지 않겠다”고 말한 후 퇴장했다. 결국 이날 회의는 심의를 마치지도 못한 채 도중에 종료됐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