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참여연대 전 사무처장인 김민영 씨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이었던 오성규 씨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일부 언론은 기껏해야 ‘운동권 경력의 영입'이냐고 폄훼했지만 대다수의 언론들은 이를 전하며 ‘박원순'이라는 이름을 꺼내들었다. 그러니까, 사실 이 사람들의 영입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박원순 시장이 차지하고 있는 상징적 위치가 드러났다.

작년 말부터 박원순 시장의 대권 도전이 기정사실로 회자되는 경험이 잦았다. 특히 제 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혼란이 가중될수록 그랬다. 이른바 문재인 대표가 제안했던 문안박 연대는 당 내에서 실질적인 시민권이 부재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당내 행위자로 호명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원하든 원하지않든 이제는 정당인으로서 움직여야 하는 정치 구도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사실 정치인 개인으로 박원순 시장의 선택에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정치의 길에 있어, 대선을 경유하는 방식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도 있을 테고 역으로 3선 서울시장으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또 각각 어떤 선택이든 잃게 되는 것도 있을 것이니, 선택이란 그런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양상은 많은 부분 의아하다. 왜냐하면 그동안 스스로 거리를 두려고 했던 기존 정치권 내에서의 행보가 노골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박원순 시장은 늘 자신의 역할을 행정가로 한정하려 했고, 서울시의 많은 정책들이 ‘정치화'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표해 왔다. 특히 임기 초반부터 역점을 두고 추진해왔던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해 정치적 논란에 대한 그의 입장은 대표적이다(관련기사).

“- 마을공동체 활동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2017년까지 3천여 명의 활동가 양성 계획에 대해 '박원순의 정치적 부대'를 만드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어떻게 자기 정치세력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나? 나는 진짜 상상도 못했다. 내 개인 정치조직을 만드는 데 동원될 만큼 요새 시민들이 바보인가? 그런 목적이었다면 그분들이 금방 비난하든가, 아예 이 사업이 시작도 안 됐을 것이다.”

솔직히 이 인터뷰를 보고 순진한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인지 둘 다 참 걱정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마을공동체 사업은 정치적 과정이고, 이 정치는 기존의 제도정치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새로운 생활정치의 계기로 말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을공동체 사업에 기계적인 정치적 중립성이 강조되면서 기존에 자리잡고 있던 정치적 기득권 구조가 강화되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런 특징은, 마을공동체 사업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거세시키는 역할을 했다. 당시 박원순 시장은 물론 재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고, 보궐로 당선된 0.5시장이라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애초 시민후보로 시작했던 그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탈바꿈하는 것에 선뜻 내켜하지 않았다는 것과 당내 정치구도에 대한 불만을 지속적으로 표명해왔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다.

박원순 시장을 정치의 장으로 불러온 것은 ‘더불어민주당’

하지만 재선 이후 작년 상반기 메르스 사태에 대한 대응에서부터 하반기 청년수당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 그리고 최근 누리과정 논란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중앙정부와 대립하는 일이 잦아졌고 이 때문에 서울시 자체의 혁신과 변화만으로는 힘들겠다는 자기 판단이 나왔을 수 있다. 무엇보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과 같이 아예 박원순 저격수로 자신의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수행하는 이까지 나타난 마당에, 더 이상 비정치라는 입장 만으로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시장이 자신의 소속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이재명 성남시장과 같이 시장으로서의 대응, 즉 중앙과 지방의 갈등이라는 구도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무게가 쏠리지 않겠는가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작년 말 서울시의회의 예산안 사태에서 보듯이 박원순 시장의 시정운영에 가장 큰 걸림돌은 새누리당 등 서울 내 야당의 반대보다는 새정치민주연합 내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기존의 정치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의 다양한 사업들이 시의회를 우회하여 집행되고 확장되는 순간, 서울시의 여당 시의원들이 자당 서울시장을 보이콧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협소한 자기 이익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정치구조 내에서 자기 세력이 전무하다시피한 박원순 시장이 과연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한 축에 있었다. 이를 전제로 오히려 박원순 시장이 기존의 탈정치 혹은 비정치라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정치로서 시민정치라는 제3지대의 대표주자로 상징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욱 타당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무엇보다 서울시는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을 껴안고 있는 곳이며, 20조가 넘는 자체 재원을 운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런 구도가 당내 역할론으로 급격하게 기운 것은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문 대표가 당내 갈등의 해결책으로 ‘문안박 공동지도체제’를 제안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중앙정부와의 대립으로 인해 서울시장으로서 한계를 느끼고 중앙정부를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실제로 중앙정부가 반대한다고 해도 서울시가 못할 것이 없는 조건을 봐야 한다. 중앙정부로부터 받는 각종 교부금이나 보조금이 있지만, 이미 서울시는 재정력이 높다는 이유로 다른 지방정부에 비해 차등을 받아왔다. 다소간 영향은 있겠지만 서울시가 아무 것도 못할 정도의 강제력을 미치긴 힘들다. 그래서 박원순 시장의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박근혜 정부와의 갈등으로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그렇게 보여지도록 하고픈 쪽의 의도에 가깝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표가 문안박 공동지도체제를 제안하자 박원순 시장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드리기 위해서 중단 없는 혁신과 통합이 우리 당에 매우 절실한 상황이라는 데에 공감했다"면서 “당의 혁신과 통합을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고 헌신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사전선거운동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전날 문 대표와 합의한 문구를 보면 알겠지만 ‘선거'란 이야기는 없다. 총선 이야기도 없다"고 반박한 후 “여당에서 제기하는 선거법 위반 의혹은 그야말로 정치 공세"라는 입장을 내놓았다(관련기사). 사실상 이번 문안박 연대가 선거를 위한 것이며 총선용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박원순 시장의 화답에 대해 논란이 오갔다. 무엇보다 서울시장의 이른 대선출마론에 의해 서울시에 걸려 있는 쟁점 사항들이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사실상 조기 레임덕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어찌되었든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든 것은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이었다.

박원순 키즈들의 출마, 대선에 도움이 될까

이 과정에서 그동안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무라인을 담당했던 인사들이 줄줄이 총선출마에 나섰다. 언론에서는 청와대 수석들의 총선출마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지만, 정작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장 서울시에서 벌어진 노동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던 임종석 정무부시장이 사임했다. 작년 연말까지 내홍을 겪었던 다산콜센터 직접고용문제는 사실상 임종석 부시장이 주도해서 추진했던 일이었는데 내부 동력이 사라지자마자 시설관리공단으로의 간접고용 방식이 튀어나온 사례다. 그동안 협의를 주도했던 정무부시장이 사라진 자리에 그를 대체할 정무라인이 부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비슷한 예로 작년 초에 서울시청 로비를 점거하며 직접고용을 요구했던 중앙차로 관리업체의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 고용도 중단된 상태다. 여기에 기존 비서실장 출신의 권오중씨는 서대문을에 출마를 선언했고 기동민 전 정무부시장과 천준호 전 정무보좌관도 서울지역 내 출마가 유력시 된다.

실제로 지난 1월 1일 신년 새해맞이 행사를 서대문구 안산에서 맞이했던 박원순 시장은 내내 전 비서실장이었던 권오중 씨와 함께 했다. ‘측근 지원사격'이라는 언론에서의 지청구가 있었지만,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간접 지원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당 내 세력화가 소위 박원순식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제까지 대선후보로 거론되었던 박원순 시장의 가장 큰 약점은 역설적이게도 당내 경선통과의 불투명성이었다. 즉, 험난한 당내 경선을 뚫을 수 있는 자기 세력이 없이는 본선에 오르는 과정 자체가 힘들 것이라는 진단이다.

하지만 만약 세력만 필요했다면 더욱 쉬운 방법도 있다. 기존의 계파를 활용하면 된다. 하지만 그럴 경우 시민후보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쌓아왔던 정치적 상징을 모두 잃게 된다. 결국 이번 총선을 통해서 소위 박원순 세력을 만들어 놓는 것이 정치적 상징도 지키고 당내 실질적인 영향력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일차적으로는 당장 여당 내 유력 현직 의원과 맞붙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하지만 설사 당선이 된다 해도, 이들이 구현하는 가치가 박원순 시장의 공간을 열어줄지 미지수다. 실제로 임종석 전 부시장의 경우에는 오히려 박원순 시장 본인보다 더불어민주당 주류에 가까운 사람이고, 기동민 전 부시장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천준호 비서관이나 권오중 비서실장의 경우엔 박원순 시장의 영향력이 클 수 있으나 실제로 공인으로서 평가의 대상이 된 적이 별로 없는 인사들이다. 즉, 세력으로서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정치집단으로 보기엔 싱겁다. 그것은 이번에 새롭게 정무부시장이 된 하승창 씨도 마찬가지이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기로 한 김민영 씨나 오성규 씨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박원순 시장을 제외하고 이들이 그동안 서울시에 관계하면서 ‘시민단체 출신다운' 어떤 혁신이나 새로움을 보여주었다고 보기 힘들다. 그러니까, 박원순 키드라고는 하지만, ‘박원순 정파’라고 부름직한 어떤 공유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조기 등판한 박원순 시장, 시민들에겐 득이 될까

결국 시간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차분하게 자기 세력을 만들고 서울시의 자원을 활용해 경험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력이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밀도가 있는 팀을 구성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부 혼란이 박원순 시장의 조기 등판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불려나간 박원순 시장은 이번 총선을 통해서 승부를 볼 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장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선출마라는 이유 탓에 2016년 상반기면 서울시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엄살을 떨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박원순 시장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임기가 2년이나 남아 있는데도 조기 레임덕을 걱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취임 첫해에나 볼 수 있는 예산안의 미숙함은 이런 정치적 조급함의 결과로 보인다.

아마 이런 탓에 상반기에 주요한 서울시 행사는 줄줄이 건너 뛰게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시장의 의지에 의해 해결되어야 하는 뉴타운재개발 사업의 연착륙 문제나 공공기관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대중교통 체계의 근본적인 전환과 같은 사항들은 모두 선거에 발목 잡힌 시장 덕분에 장기 휴업할 개연성이 커졌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시장의 일이고 스스로 밝혔듯이 서울시장은 ‘당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면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바라는 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봤을 때,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고 웬만하면 트집을 잡히려 하지 않으려는 조심성은 박원순 시장 개인에게서 나올 것 같다.

정치인 박원순 시장이 자기 정치 구상을 갖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정치적 행보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쉽게 재단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다. 오히려 애초부터 행정가로서 서울시장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서울시장으로 출발했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그래서 출발부터 박원순 이후에 대한 고민을 같이 시작했으면 좋았겠다. 이명박 전 시장은 자신과 함께했던 사람들을 대선 캠프로, 청와대로 끌고 가서 ‘S라인'이라는 비야냥을 얻었다. 만약 박원순 시장도 이 정도라면 그저 ‘S라인 시즌 2’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시민을 내걸고 당선된 만큼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자신의 정치적 구상을 맞추는 것도 방법이다. 그것의 첫 번째는 소위 서울시 개혁 정부 이후의 로드맵에 대한 것이다. 아무리 확인해도 그것을 고민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다. 내용이 달랐을 뿐, 서울시를 디딤돌로 대권에 도전하려는 그저 그런 정치인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식상한 경로가 아니라 좀 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 아니라 팀을 만드는 것이어야 하고, 변화된 서울시라는 자산이 박원순 개인의 정치적 자산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서울시의 혁신을 위한 자산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작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흘러가는 모양새로 보건데, 이런 기대는 이번 총선에서 ‘박원순 키드'가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 더 실현되기가 쉽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것은 개개의 사람 문제가 아니라 억지로 끌려나간 선수를 다시 불러들일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꿈꾼다면 천만 서울시민들의 꿈부터 훔쳐가는 것이 순서다. 그것으로 1/4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다. 오델로 게임 하듯이 서울지역 국회의원 몇 개를 파란색으로 뒤집는다고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김상철 2004년부터 진보정당의 당직자로 서울시 행정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맡아 일하고 있다. 현재는 노동당서울시당 위원장이며, 문화연대, 나라살림연구소, 예술인소셜유니온에서도 활동 중이다. <정치를 탐하다>(2014,꿈꾸는사람들), <무상교통>(2014, 이매진)이라는 책을 펴냈으며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2014, 삶창)라는 책에 참여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노동과 인간중심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도시사회주의자'의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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