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철,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 등과 함께 인권변호사 4인방으로 불리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의 창립을 이끄셨던 인권변호사 1세대이돈명(토마스모어) 변호사의 5주기를 맞아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돈명인권상'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게 드릴 수 있게 되어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영광입니다.

2007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스물세살 딸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세상과 홀로 마주했던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아버님의 호소에 수원의 지역언론과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들, 노동안전단체 활동가들이 응답하면서 반올림은 시작되었습니다. 2007년 11월 20일 삼성반도체 기흥 사업장 앞에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 기본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하고 삼성 공장 인근을 누비며 피해자와 제보자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황유미씨처럼 삼성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렸다는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반올림의 활동이 없었다면 연기없는 공장, 세계 초일류의 반도체라인, 깨끗하고 안전한 최첨단 전자산업이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였다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알지 못했을 겁니다. 반올림 활동을 계기로 반도체 공장은 화학약품과 유독물이 넘쳐나는 곳임이 알려졌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삼성이라는 거대자본의 눈치만 보는 근로복지공단과 싸워 피해자들의 산재를 인정받는 일, 투쟁과 소송을 통해 삼성 같은 재벌 기업들의 책임을 묻고 사과를 받는 일 뿐만 아니라, 산재법을 개정하고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에도 나서야 했습니다. 반올림의 이런 활동은 많은 분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사람냄새>와 <먼지 없는 방>이라는 만화가 출간되어 삼성반도체 피해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소녀>라는 연극도 성황리에 무대에 올랐고,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과 극영화 <또하나의 약속>으로 만들어져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반올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반올림의 활동을 근간으로 사회적, 문화적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2014년 5월 삼성은 처음으로 삼성의 직업병 문제에 대해 7년 만에 공식 사과 했습니다. 또한 국내외에서 처음으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에 대해 산재인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직업병 인정범위의 확대 및 인정기준 개선에도 반올림의 역할은 컸습니다. 이는 피해자들과 반올림의 싸움, 그리고 사회적 관심이 만들어낸 성과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삼성 직업병 문제는 해결되고 있지 않습니다. 삼성이 지난해 대대적인 사과 이 후,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조정위원회의 권고를 시행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보상위원회를 꾸려서 피해자 개별 보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반올림은 삼성의 이중적인 태도에 문제제기 하면서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벌써 100일 가까이 노숙농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돈명인권상' 심사위원회는 만장일치로 반올림을 수상자로 선정하였습니다. 물론 후보들 중 누가 수상자로 정해진다고 해도 당연할만한 단체들이 추천되었습니다만 심사위원회는 여러 가지 기준을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수상자를 선정했습니다.

반올림은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사회적으로 인식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노동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노동권과 건강권의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 곳이 반도체/전자산업 노동현장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그들의 인권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 것만으로도 반올림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돈명인권상'을 수상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 상을 반올림에 드리며 자본의 이윤이 노동자들의 생명과 인권보다 우선시하는 사악한 거대 자본 삼성과 그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기업들을 꾸짖고 싶기도 했습니다. 근대사회 이후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노동현장에서 죽고 다치고 병을 얻었는지는 아마 통계도 낼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부족한 법과 제도를 보완하고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정부와 기업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오늘의 이 수상이 반올림과 반도체/전자산업 피해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지금도 현장을 지키며 고귀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분들께 위로와 응원이 되길 바랍니다. 반올림의 오늘이 있기 까지 함께 했던 많은 분들이 계셨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반올림의 역사 단 한장면에서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고 황유미님의 아버지 황상기 아버님, 직업병으로 투병 중인 한혜경님과 어머니 김시녀 어머님께 특별한 인사를 전합니다.

반올림을 이끌고 온 귀한 이름 이종란 노무사, 권영은 활동가, 임자운 변호사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반올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하는 박진, 안은정, 정유리 등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들, 산업보건안전이라는 의료계의 새 지평을 연 공유정옥 선생,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손진우 연구원,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조대환 활동가,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 임용현 활동가 등도 잊을 수 없는 이름들입니다. 무엇보다 거대 기업의 횡포와 정부의 묵인아래 직업병으로 쓰러져간 이름없는 수백, 수천의 청춘들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 천주교인권위원회는 반올림에 이 상을 드릴 수 있어 영광이고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