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또 핵무장론이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 출석해 “우리도 자위권 차원의 핵을 가질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북한이 계속 우리 머리에 핵무기라는 권총을 겨누고 있는데 우리가 언제까지 계속 제재라는 칼만 갖고 있을지 답답하다”고도 발언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 2013년에도 이런 식의 핵무장론을 주장한 바 있다.

원유철 원내대표의 발언은 조선일보의 논조와도 일부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 킬체인 구축,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체제 도입 등을 논의할 수 있지만 모두 한계가 분명한 것들이라면서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 철수했던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적극 논의해 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핵우산의 ‘전개’를 적극적으로 촉구한 것이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과 원유철 원내대표가 7일 오전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미국 내 한국 전문가들이 동맹국의 핵보유를 사실상 용인하자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며 “한국의 핵무장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북의 수소폭탄 실험까지 보면서 미국과 협의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말미에 프랑스의 핵무기 개발 사례를 들며 “우리도 앞으로 상황에 따라서는 ‘과연 미국은 서울을 지켜주기 위해 워싱턴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까지 썼다. 사실상 직접적으로 ‘핵무장론’을 거론한 것이다.

▲ 조선일보 7일자 사설

조선일보가 슬쩍 언급하는 것처럼 한국의 핵무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라늄235의 농도가 90% 이상인 고농축우라늄(HEU)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라 한국은 농도 20% 미만의 저농축우라늄만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이 핵무기를 합법적(?)으로 가지려면 우선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한미원자력협정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극비리에 고농축우라늄 제조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 협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분명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일일 것이다. 조선일보와 새누리당은 한미동맹의 기본적인 틀을 깨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조선일보와 여당의 핵무장론이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상충된다는 점도 문제다. 학반도 비핵화 선언은 그간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하는 주요한 논거로 활용돼왔다. 그런데 이제 우리도 핵을 갖자는 것은 이 선언을 무효로 만들자는 얘기나 다름이 없다. 그럴 경우 남는 것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지 않는 방법을 강구하는 게 아니라 서로 더 강한 위력의 핵무기를 경쟁적으로 개발하는 것뿐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당장 정부가 원유철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한 ‘진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 긴급 현안보고에서 “정부는 한반도에 핵무기의 생산, 반입 등이 안 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한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아무리 박근혜 정부라고 할지라도 이런 입장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당 지도부와 조선일보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보수층 여론이 호전적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여론에 주요 일간지와 여당 지도부가 호응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 이율배반이다. 북한의 군사력과 기술력을 과대평가함으로써 그들의 의도를 국내에서 적극 관철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는가?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큰 논거는 북한의 핵실험에 의해 일어난 인공지진의 규모가 수소폭탄의 폭발 결과로 보기엔 너무 작다는 것이다. 북한도 이런 점을 의식해 ‘소형화된 수소탄 시험작’ 등의 용어로 설명하고 있으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감안하더라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하기 위한 하한선에 미치지 못하는 규모라는 분석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때문에 우리 군과 정보기관은 북한이 수소폭탄의 전단계인 ‘증폭핵분열탄’ 실험을 진행한 걸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실험이 성공한 것인지 여부도 사실 장담할 수 없다. 증폭핵분열탄이란 일반적인 핵폭탄에 소량의 핵융합반응을 첨가해 핵분열의 효율을 증가시킨 것이다. 같은 양의 원료라면 훨씬 큰 폭발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북한의 이번 핵실험의 위력은 오히려 3차 핵실험 때보다도 못한 것으로 측정됐다. 실험에 투입된 우라늄의 양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상식적으로 이 결과만 보자면 북한이 무슨 실험을 어떻게 해서 무슨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최근까지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했다고 주장한 것 역시 비슷한 사례다. SLBM은 한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저지를 위해 상정하고 있는 ‘킬체인’을 무력화시킨다는 점과 발사 원점을 이동시킬 수 있어 핵미사일 추진체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보수언론 역시 이 점을 강조하며 공포분위기 조장에 나선 바 있다. 조선일보는 7일자 지면에도 <북, 핵탄두소형화해 SLBM에 장착땐 가공할 위협>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 조선일보 7일자 기사

그런데 북한이 실제로 SLBM의 개발과 발사 실험에 성공했는지, 성공했다면 과연 어느 수준까지 진전된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북한은 자신들의 성과를 증명하기 위한 사진과 동영상을 내보인 바 있으나 ‘조작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입장이다. SLBM 발사 동영상에 CG를 사용했다거나 미국의 자료 영상을 도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판국이다.

결국 북한이 무슨 실험에 성공했다거나 신무기를 개발했다고 말하는 것은 주장 그 자체만 중요한 것이다. 근거는 늘 최소화되거나 조작된다. 국제관계적인 여러 측면에서 북한은 주장 자체만으로도 외교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고 이를 통해 어떤 종류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단기적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일관되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북한의 이번 핵실험으로 사실상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을 제기해볼만 하다. 당장 정부는 민간협력 및 교류부터 단절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상황을 역으로 놓고 말하자면 대북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북한이 내놓고 있는 주장의 허구성이 입증되는 게 중요하다. 무분별한 군비증강과 핵실험에 대한 ‘처벌’은 당연히 존재해야 하지만 북한이 의도한 공포효과를 차단하고 무력화함으로써 핵개발 등의 시도가 국제정치적 차원에서 어떤 성공도 거두기 힘들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당과 보수언론은 북한 핵실험에 따른 위기를 과대평가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사실상 실패한 실험을 놓고 ‘민족사적 대격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자신들이 만들었다는 신무기에 대한 허술한 합성사진이나 CG를 만드는 의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여당과 보수언론이 겉으로는 북한을 적대한다면서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에 오로지 국내정치적 이익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걸 이미 안다. 북한 핵실험 이후 직관적으로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평가가 나오는 건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심판을 자처하며 선수로 뛰려 하지 말고, 이제 언론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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