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하는 것조차 고통스럽지만 돌아보지 않을 재간도 없다. 야권의 2016년을 전망하기 위해 2015년을 평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제1야당을 중심으로 평가해보자면 2015년은 싸움박질로 시작해서 싸움박질로 끝난 해였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2015년 2월에 문재인 대표가 박지원 의원을 꺾고 당선된 것은 절반의 놀라움이었다. 문재인 대표는 유력 대권주자의 입장이므로 미리부터 링 위에 올라와 공격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직접 나선 것은 물론 2012년에 진 패장으로써 잊혀지지 않기 위한 자기 정치를 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믿지 못할(?) 세력에게 당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어떤 선의도 분명히 작용하였을 것이다.

문제는 이 ‘선의’가 문재인 대표 본인에게야 좋은 뜻이 되었겠으나 그의 정치에 의구심을 보내는 비주류의 입장에서는 어떤 ‘음모’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박지원 의원이 대표 경선 과정에서 당권-대권 분리론을 제기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어떤 합리적 맥락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무대 뒤편의 사람들이 “왜 문재인은 당권과 대권을 모두 독식하려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했다. 여의도 정치의 모범답안은 ‘문재인은 2017년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2016년 총선 공천권부터 장악하려 한다’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문재인 대표의 의도가 단지 그런 공학적인 차원에만 머물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개혁공천을 통해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시스템 공천’을 통해 내부의 계파갈등에 의한 잡음을 없애 보자는 진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표가 된 입장에서는 의도를 미심쩍어하는 비주류를 설득해야 하는 짐을 질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문재인 대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문재인만의 정치’를 보여주고, 2012년에 패배한 문재인 후보로서가 아닌, 새롭게 거듭난 강한 대권주자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반을 쌓아야 했다.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3일 오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벤처기업인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 입당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시작부터 천정배 의원의 이탈로 전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집을 뛰쳐나간 천정배 의원이 제1야당의 심장부인 광주에서 당선되자 문재인 대표를 향한 비주류의 의구심은 ‘밀면 밀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결합하게 됐다. 이 불길에는 참여정부 시절부터 문재인 대표 등에 가져왔던 악감정을 2012년 대선 패배와 결합시킨 제1야당 일부 지지층의 비토정서가 기름처럼 끼얹어졌다. 당권을 가진 문재인 대표로서는 상황에 꼭 들어맞는 처방으로 불길을 진화해야 했으나 모든 사람이 본 바와 같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정청래 의원의 돌발행동이 ‘막말 논란’으로 이어진 건 치명적이었다.

안철수 의원을 사실상 방치(?)한 것도 문재인 대표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철수 의원은 기성정치의 문법에 익숙치 못한 상태에서 대중적 인기라는 하나의 요소만을 갖고 현실 정치로 진입한 케이스다. 문재인 대표 체제는 안철수 의원의 그러한 특성을 존중하기 보다는 공통의 지반 위에 서있는 대권주자의 하나로서만 인식해 온 측면이 크다. 물론 문재인 대표 체제가 안철수 의원을 기성 비주류 소속 정치인들과 분리해 다루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이후 ‘문안박 연대’와 같은 제안이 정치공학의 차원에서 공감을 이루기보다는 ‘들러리를 서달라’는 1차원적 술수로 이해되도록 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2015년에 당 대표를 맡음으로써 쉽게 돌파하기 어려운 과제에 도전했던 문재인 대표는 결국 제1야당의 분열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눈앞에 두게 됐다. 이런 상황으로 밀려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비극적인 일이지만, 그보다도 슬픈 사실은 이후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선거 구도의 문제다. 안철수 신당이 출범하면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층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일부 지지층까지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제1야당에 반드시 손해가 되는 것은 아닐 거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지층이 총결집하는 박빙의 승부에서 수도권 구도가 어떻게 짜여질지는 그야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거연대와 같은 최소한의 공감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안철수 신당 측 일부 인사들은 총선을 포기하더라도 ‘마이웨이’를 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걸로 보인다. 제1야당을 ‘혁신거부세력’으로 낙인찍은 상황에서 또 다른 논리를 통해 선거연대를 모색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철수 신당이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기반인 호남에서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부담이다. 제1야당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한 번의 패배가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정국이라는 점도 문제지만, 스스로 거듭나려는 제1야당의 노력이 피상적인 차원에서 그치고 만다는 것도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은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과 김병준 웹젠 이사회 의장 등을 영입하고 선거대책위원장에 호남 출신 유력 인사를 앉히거나 대구의 김부겸 전 의원을 차출(?)하는 방법 등으로 여론을 수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대책들은 소폭의 반짝 효과는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제1야당의 정치는 정권을 잃은 이래로 이런 ‘미봉책’에만 의지해왔다. 이 ‘미봉책’은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결국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저차원의 공학적 판단에 대한 강력한 선호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시장판 정치’라는 개념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치가 자기가 가진 고유의 사상과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표를 많이 획득할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포지션으로의 이동으로 한정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2015년 마지막날인 3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테면 이런 비유다. 새누리당은 우측에 강력한 시장을 갖고 제1야당 지지자 중 과격파들이 좌측에 또 큰 장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정도에 판을 깔면 중도층이 모여들어 하나의 큰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주장 같은 것들이다. 2010년 정세균 대표 시절의 ‘뉴민주당 플랜’이 그런 거였고 2012년 대선 직후 좌클릭에 대한 반성 역시 같은 맥락이었으며, 문재인 대표가 당선 이후 내세운 ‘유능한 경제·안보정당’ 프레임 역시 마찬가지의 것으로 볼 수 있다. 실내용은 다르지만 과거 2002년 대선 국면에서 유시민 전 장관이 ‘제1야당과 진보정당의 사이’를 지시하며 개혁당을 창당하였던 것도 이런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걸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념의 좌표라는 게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일직선상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며, 정치 역시 그저 물건을 사고파는 정도의 깜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이런 점에 눈 감은 채 제1야당 주변에서 늘상 벌어지는 ‘원칙 대 현실’, ‘급진 대 온건’, ‘좌측 대 중도’의 구도에 대한 논쟁은 사실상 허상을 놓고 벌이는 저차원적 언어게임에 불과하다고 밖에 평할 수 없다.

이런 논쟁은 이것 자체가 정치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과연 무엇인지, 그것을 대중들이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규명하는 과정이 될 때에야 유효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쟁은 오직 무슨 단어를 말하면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는지 숫자를 헤아려 보는 수준에 불과했다. 좌클릭이든 중도든 무얼 선택하더라도 제1야당 내의 파벌다툼은 반복됐다. 정당으로서 내세우는 그들의 정치가 시대와 호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적인 것들만 부각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결국 대중이 갖는 열망의 실제 내용이 아니라 여론의 분포만 피상적으로 따져 온 야권의 정치가 오늘날의 분열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는 이 대목에서 현실을 뒤집어 파악할 수도 있다. 암울한 선거구도, 무능한 구성원, 어디로 튈지 장담할 수 없는 라이벌이라는 구도에도 불구하고 야권이 2016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를테면 선거에서 조직을 이기는 유일한 수단은 바람이다. 그리고 바람은 대중이 품고 있는 시대정신을 정치가 건드려 깨울 때에야 일어난다.

2002년 ‘노풍’, 2004년 ‘탄핵 정국’, 2010년 ‘무상급식’이라는 성공사례가 주는 교훈은 어떤 ‘요행’을 기대하라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야권이 비어있는 시장판의 자리를 노리는 보따리 장사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이 시대의 대중이 원하는 것, 이 시대의 대중에 필요한 것, 이 시대의 대중이 감당해야 할 것에 정치의 초점을 맞춘다면 판은 뒤집어질 수도 있다. ‘정치’는 모든 것을 이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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