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드문 광경이다. 청와대가 개각을 단행했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길 원하는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22일 지면에 각각 다음과 같은 제목의 사설을 배치했다. <정관 말 경제 위기론 커지는데 이런 장관들로 감당하겠나>, <이런 개각으로 국정 정상화 잘되겠나>, <표밭 갈다 온 유일호 경제부총리, 위기 막을 역량 갖췄나>…. 하나 같이 비판적인 입장이다. 비판을 넘어서 거의 비난 일색인 모습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건 유일호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국토교통부 장관을 하다 총선 출마를 이유로 직을 내려놓았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랬던 인사가 한 달 만에 경제부총리로 돌아온 것은 결국 ‘회전문 인사’이며 무계획이며 인재고갈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보수언론들도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2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임시사무실에 밝은 표정으로 첫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는데, 이런 이상한 선택의 당위를 설명하기 위한 언론의 노력은 눈물겹다. 가장 호의적인 해석은 경제활성화 및 노동개혁 관련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국회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관료 출신이 아닌 정치인이 선택됐다는 것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과 법안처리 순서까지 대놓고 지시하듯 말하는 정권에서 경제부총리가 국회와의 무슨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애초 고려된 인사들이 우병우 민정수석이 주도한 인사검증을 통과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결국 ‘청문회’가 문제라는 얘기다. 관료 출신 보다는 경력 관리가 좀 된 정치인 출신이 청문회 통과를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낫다는 게 정치권의 통설이다. 인사검증 문제는 박근혜 정권의 고질적 병폐인데, ‘사람이 없다’는 진단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부족한 건 ‘수첩’으로 상징되는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인사스타일 때문이다. 유일호 내정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시절 비서실장으로 ‘깜짝 발탁’ 됐는데, 18대 국회의 상임위에서 옆자리에 앉은 점이 인연이 됐다고 한다. 말하자면 역시 ‘수첩인사’인 셈이다.

유일호 내정자가 과연 경제부총리의 직에 맞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측면에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간 대량실업과 사전구조조정을 언급하며 경제위기설을 직접적으로 언급해왔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유관부처의 컨트롤타워 역할까지 해야 하는 경제부총리는 그야말로 이 분야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 맡아도 모자랄 정도이다. 그러나 유일호 내정자는 특정 분야의 연구에 집중해야 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이다. 구체적으로는 조세와 재정을 전문 영역으로 한다. 거시경제를 아우르는 나머지 영역이나 실물경제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감각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

관료 경험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유일호 내정자가 무사히 임명되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관료 경력이 없는 경제부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부총리급은 아니었지만 ‘학자 출신’으로 분류되는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도 짧은 관료 경력이 있다. 이에 대해 당시에도 언론은 ‘조직장악 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박재완 전 장관이 현직에 있으면서 남긴 업적이 무엇인지 의문이라는 점은 이명박 정부의 인사실험(?)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한다.

물론 ‘관료만능론’을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정권 입장에서는 임기 중반부를 넘어가면 권력누수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고위공무원들이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하기보다는 ‘차기’와 ‘줄’에 예민해지는 때이기 때문이다. 중앙부처 중 ‘선임’의 역할을 맡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이른바 경제관계부처들 간의 입장을 조율하고 총괄해야 한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내정자의 경우처럼 주요 부처 장관이 관료출신이라면 그 필요성은 더 커진다. 관료 경력도 없고 국회 경력도 재선에 불과한 유일호 내정자가 ‘친박’이라는 꼬리표 하나로 감당할 수 있는 짐인지 의문이다.

이러니 ‘경제를 청와대가 직접 챙기겠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경제부총리를 사실상 ‘얼굴마담’으로 앉히겠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도 의문은 제기된다. 구체적으로 누가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수정하고 집행하는 일들의 핵심을 맡아 하느냐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그런데 안종범 수석 역시 조세 및 재정분야 전문가인 교수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즉, 유일호 내정자의 부족한 부분을 메꿔줄 수 없는 입장이다. 결국 누군가는 이 문제를 맡아야 한다. 경제기획원 관료 출신인 현정택 정책조정수석이 이 부분을 보조할 수는 있겠지만 청와대 내에서 안종범 수석을 제치고 경제정책을 좌지할 수 있을만한 정도의 ‘실권’을 쥐고 있는지는 정확치 않다.

이 대목에서는 좀 다른 상상(?)도 가능하다. 유일호 내정자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고 한 점이나 부총리를 교체하면서 경제수석은 그대로 두는 청와대의 인사 방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안종범 수석은 물론 박근혜 캠프 시절부터 ‘브레인’으로 통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최경환 부총리가 안종범 수석을 추천했다는 뒷얘기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당시 청와대 내에서는 조원동 수석이 유임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최경환 부총리가 강하게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와 안종범 수석은 소위 ‘위스콘신 인맥’으로 분류된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이 분류에 들어간다. 즉,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은 다분히 최경환 부총리 중심의 라인업으로 볼 수 있었던 셈이다.

▲ 최경환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10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유일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살아있는 실세’라는 최경환 부총리가 재임 중에 기획재정부의 고질적인 ‘인사적체’를 상당히 해소해준 것 역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지난 10월 개각에서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 방문규 보건복지부 차관 등이 탄생해 기획재정부 출신 고위관료들의 선전이 두드러졌는데, 이번 개각에서도 신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이 내정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최경환 부총리는 취임 직후 개각에서도 추경호 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을 국무조정실장으로 보내고 이석준 2차관을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으로 보내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결국 현재 내각의 핵심 실무를 최경환 부총리와 가깝거나 그에게 일정 부분 ‘빚’을 진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최경환 부총리와 유일호 내정자의 관계를 상정해봐도 일방적인 우위가 확인된다. 유일호 내정자의 입장에서 최경환 부총리는 이제 4선을 바라보는 원내대표 출신의 ‘실세’ 전임자다.

최경환 부총리가 여당으로 돌아가 친박의 새로운 구심이 되면 이 모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뻔히 예측할 수 있다. 이런 그림은 물론 ‘상상’에 가까운 것이지만 최소한 부동산 규제완화와 인위적인 단기적 내수부양으로 요약되는 ‘초이노믹스’의 기본 골격이 이후에도 유지되리라는 전망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렇다면 가계부채 폭증과 취약계층의 붕괴에 대한 어떤 대안도 박근혜 정부에서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요직엔 ‘얼굴마담’을 세우고 실권은 그 자리에 있지 않는 사람이 쥐도록 하는 박근혜 정부 특유의 비선정치가 더욱 기승을 부리리라는 점도 문제다. 오로지 최경환 부총리의 ‘금배지’를 지켜주기 위해 이런 무리를 해야 한다는 점은 서글프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는 대체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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