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국 만화를 정리할 때마다 단골처럼 화두에 오르는 요소가 있다. 바로 ‘성장’이다. 1990년대를 지나고 한국 잡지 만화가 본격적으로 몰락한 트라우마 때문일까. 청소년보호법에 대한 논의, 만화 쿼터제나 만화 대여점에 대한 논쟁의 귀결은 결국 한국 만화 산업의 크기에 대한 문제로 연결되었다. 이는 웹툰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과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메인 플랫폼’이었던 잡지와 단행본과 웹으로 연재되는 만화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고, 이 차이가 어떤 변화를 낳는지 논하기 보다는 ‘웹툰 통해 한국 만화 시장이 이만큼이나 성장했다’가 더 관심의 대상이 됐다. 틈만 나면 ‘K-’나 ‘한류’를 앞에 붙이는 것도 이와 관련 있을 것이다.

▲ 난 11월 3일 개최된 제 15회 만화의 날 홍보 포스터. ‘세계로! 미래로!’ 라는 표현을 통해 한국 만화가 성장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올해의 한국 만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크기’가 아니라 다른 것을 말해야만 한다. 만화 창작 자체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청소년보호법이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처럼 ‘표현의 자유’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만화를 만들기 위해서 고민해야만 하는 것들, 그리고 폭넓은 창작을 위해서 표현한 것들에 대한 문제이다.

2015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키워드 중 하나는 ‘여성 혐오 문제’였는데, 한국 만화 역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아니, 한국 만화는 이러한 문제의 핵심 축에 존재했다. 레바의 레진코믹스 연재작 <레바툰>은 장동민의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여성 혐오성 발언에 대한 논의와 여론을 본의 아니게 전면에 끌어올린 작품이었다. 조석의 네이버 웹툰 연재작 <마음의 소리>, 설이 글-윤성원 그림의 네이버 웹툰 연재작 <뷰티풀 군바리>에 대한 논란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

이 작품들이 의도적으로 여성 혐오적 경향을 보였다는 것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더 아나가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에 동의하든 동의할 수 없든 분명 해당 작품들로 일어난 논란의 크기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다양한 매체에서, 그리고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갑론을박을 벌이며 각자의 주장을 펼쳤고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아쉬운 것은 논쟁의 크기에 비해 만화계 내에서 이에 대한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거나 정리되는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만화 비평-리뷰 매체를 표방한 <에이코믹스>, <크리틱엠>은 물론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와 같은 작가 단체에서도 이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서울산업통산진흥원 산하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부천시 산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등도 어떤 액션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나마 <에이코믹스>는 연성매체이며, <크리틱엠>의 경우 12월 들어 팟캐스트를 제외하면 사실상 글이 세 편 밖에 올라오지 않을 만큼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만화가들을 대표하는 단체, 만화계에 대한 지원 및 연구기관을 표방하는 기관들이 이 문제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심각하다. 표현의 자유에 보장, 만화가들의 계약에 대한 고민, 한국 만화의 외적 성장과 같은 자랑거리와 달리 여성 혐오 논란을 비롯해 작품 표현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적당히 넘겨도 상관없다는 뜻일까?

묻혀 버리는 사안들

▲ 최봉수 작가가 그린 <스페이스 차이나 드레스> 원작의 1화 표지. 해당 작품은 이후 학산문화사의 제의로 원현재 작가가 다시 작화를 담당하는 식으로 <찬스>와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었지만, 최근 최봉수 작가의 폭로로 연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별다른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 사례는 이뿐이 아니다. 최근 연재가 종료된 최봉수 글, 원현재 그림의 <스페이스 차이나 드레스>(이하 <스차드>) 역시 이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원래 애니메이션 감독인 최봉수 작가의 개인 블로그를 비롯해 네이버 도전만화 등에 연재되던 아마추어 연재작이었던 이 작품은 학산문화사의 월간 소년만화잡지 <찬스>(현재는 청년만화잡지 <부킹>과 통합해 <찬스 플러스>가 되었다.)에 연재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버 웹툰에 동시연재를 시작하게 됐다. 동시대 한국 만화의 현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이 작품은 연재가 끝나기 전 지난 11월 15일, 최봉수 작가의 트위터로 터트린 폭로로 논쟁에 휩싸였다.

최봉수 작가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은 <스차드>를 잡지에 연재하며 ‘판치라’(パンチラ, ‘팬티 노출’을 뜻하는 일본의 은어) 장면을 넣고 싶지 않다고 밝혔지만 이는 담당 편집자에 의해 묵살되었고, 이러한 요소로 자신의 작품이 눈요기 대상이 되는 것이 무척이 불편했다는 것이다. 이후 작가는 여러 번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그린 원작을 잡지 및 웹툰으로 연재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토로하였다.

이 문제는 성적 대상화된 표현이 ‘상업화’를 명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황과 함께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 있어 작가와 편집자와의 관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형성되어야 하는지가 복합되어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는 단순히 해당 작품의 그림을 맡은 원현재 작가의 주장대로 ‘주인공이 짧은 치파오(중국의 전통 의상)을 입었는데 팬티가 안 보이는 건 이상해서 팬티를 노출시키도록 그렸다’거나 몇몇 팬들의 주장대로 ‘괜히 완결 직전에 쓸데없이 논란을 일으킨다’거나 ‘최봉수 작가가 그린 원작에서도 팬티가 보인다’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여성 혐오에 대한 논란이 활발히 벌어진 상황에 맞춰 만화 작품의 여성성에 대한 표현의 문제와 더불어 편집자의 역할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측면에서의 논란은 확대되지 못했다.

이는 단순히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옹호론이 아니다. 최봉수 작가의 주장은 어느 정도 공감하고 맞는 부분이 있다 보지만, 대다수의 독자들이 이해하기엔 설명이 불친절하거나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폭로 내용의 상충되는 부분에 대해 좀 더 쉽게 설명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별개로 이 사안은 한국 만화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얽혀있는 사건이며 공적 영역의 논쟁으로 이끌어내야 할 필요성이 충분했다. 그러나 여성 혐오성 표현에 대한 문제가 현재 그렇듯, 이 문제 역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화려한 외양 뒷면에 가려진 속살을 보기 위하여

필자는 작년 2014년 한국 만화를 결산하는 글을 쓰면서 (▷ 링크 보기) 만화계가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있는지를 지적했었다. 그리고 올해 9월 말에는 <뷰티풀 군바리> 논란에 대한 칼럼을 쓰면서 (▷ 링크 보기) 표현의 자유와 함께 동시에 지니는 책임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을 말했다. 누군가는 계속 웹툰 시장이 커가고 있는데,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표현의 자유 문제로 억압을 받아왔는데 왜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사건은 결국 단순히 현재의 성장에 만족하고, 과거의 억압을 돌아보며 혀를 차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바로 최근 연재가 사실상 중단된 귀귀 작가의 네이버 웹툰 연재작 <낚시신공>에 대한 문제이다. 이미 작가는 2012년 야후 만화세상 연재작 <열혈초등학교>의 폭력 표현은 <조선일보>의 대대적인 기사를 낳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웹툰에 대한 본격적인 심의를 고심하게 만들고, 다시 만화계 인사들이 이러한 조치에 반발하는 ‘노컷 캠페인’을 벌이게 만든 시발점을 만든 이력이 있다. 또한 이후 연재작인 <귀귀 갤러리> 역시 선정적, 폭력적인 표현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러한 전력이 있는 작가의 신작에서 지난 12월 10일 비록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지만 손목과 얼굴 가죽을 잘라내는 장면이 나오면서 다시 한 번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다.

▲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장면 삭제 및 해당 연재분 삭제가 된 귀귀 작가의 네이버 웹툰 연재작 <낚시신공>의 논란이 된 장면의 모습. 이후 <낚시신공>은 부랴부랴 ‘1부 완결’의 형태로 연재가 사실상 중단되었다.

해당 연재분은 작품이 올라온 당일 새벽 1시경 문제의 컷이 삭제되었지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연재분 자체가 삭제되었다. 이후 12월 16일, 네이버 웹툰과 작가가 사과문을 올리고 ‘1부 완결’로 작품을 끝내는 것으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정상적으로 마무리된 것 같지만 논란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네이버가 해당 작품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갑작스럽게 연재를 중단하는 것에 대한 공식적인 논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미 작가가 여러 번 문제를 일으킨 ‘문제아’이기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인가, 단순히 ‘청소년 관람불가’로 돌리면 해결 가능한 문제이기에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2012년의 ‘노컷 캠페인’ 운동으로 웹툰에 대한 심의가 한국만화가협회의 자율심의로 넘어갔으니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어찌되었든 확실한 것은 여성 혐오 표현에 대한 논란, <스차드> 연재에 있어 생긴 소통의 문제와 더불어 이 문제 역시 단순한 쟁점 이상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단체와 기관은 그저 지원정보를 공유하고, 자신들이 거둔 성과를 퍼트리고 동시에 저작권과 ‘계약’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이다.

이러한 기묘한 상황은 지난 10월 17일 대전에서 개최된 세계만화가대회에서 발표된 공동선언문에서도 드러난다. 총 3개조로 구성된 선언문은 각각 ‘(만화와 만화가에 대한) 존중의 마음’, ‘만화가의 권리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 그리고 ‘미래의 만화를 위한 국가간 교류’로 이루어져있다. ‘존중의 마음’에서는 만화 사업자로 하여금 만화와 만화가가 단순한 수단으로 보아서는 안 됨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그를 위한 노력이나 성명, 움직임은 부족했다. 두 번째 항 역시 좋은 말이지만 정작 해당 구문에는 불법 공유가 만화가의 창작의욕을 저하시킨다는 말로 끝이 난다. 만화가들이 받는 고료나 실태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상 언급되어 있지도 않다. 물론 만화가들이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없다.

공식적 차원에선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표현에 대한 논란, 작가들이 받는 처우에 대한 논란은 이미 현실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웹툰 플랫폼의 모범으로 여겨진 레진코믹스가 작가들에게 제시하는 조건 역시 다른 사업체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충격과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짬툰은 여성 혐오적 표현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홍보 문구 등의 문제까지 더해 많은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물론 만화가협회가 작년 운영진이 변경된 이후 적극적으로 심의나 계약 문제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있다는 한계도 있지만, 그럼에도 논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 역시 현실이다.

단순히 예산이 부족해서 실태조사가 어렵다는 식으로 (2014년 12월 19일, [기자의 눈] 만화가 문하생ㆍ어시스턴트의 정당한 대우를, 인현우 기자, 한국일보)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가. 분명 한국 만화는 성장했다. 잡지 만화가 흔들리고 앞날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여러 작가와 기업의 시도는 한국 만화의 새로운 장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고 작가 대다수의 대우를 이전보다 향상시켰다. 하지만 이젠 그 이상을 논의할 때이다. 그리고 성공 뒤에 가려진 어두운 문제들을 파악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

2015년, 올해의 주목할 만화들

레진코믹스의 성공은 다양한 웹툰 플랫폼의 창설을 불러왔고 그로 인해 이전에는 쉽게 시도되기 어려운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흥행에서도 드러나는 독립출판물에 대한 호응 역시 이러한 추세를 더욱 돕는 기폭제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한국 만화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가능성이 보이는 가운데, 과연 올해는 어떤 만화들을 주목할 수 있을까.

<단결툰>, 반지수 구성 및 그림, 월간 오늘보다 연재중

<단결툰>은 독특해보이지 않지만 독특한 작품이다. 노동과 사회를 말하는 작품은 이제 서서히 보이고 있지만, 좀 더 본격적으로 사회 운동과의 만남을 모색하는 작품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반지수 만화가, 그리고 월간 오늘보다의 편집부 사람들이 직접 현장에서 노동, 사회 운동을 하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현황을 듣고 다시 그 상황은 만화로 그려진다. 매 화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이지만 2010년대 현재 동시대의 사회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동안 단절되어 있던 만화와 운동과의 연대를 보여주는 점에서 <단결툰>은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처음으로 만화를 그리는 작가이지만, 매화 참신한 연출을 하는 작가의 성장도 주목할 지점이다.

<단지>, 단지 만화, 레진코믹스, 2015년 12월 발간, 현재 레진코믹스 연재 및 1권 발매중

여성 혐오 문제가 한국 사회의 전면으로 불거진 이래 주목을 받은 이 만화는 작가 자신이 가족 내부에서 겪어왔던 여성 차별 문제를 진솔하게 그려낸다. 물론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국을 비롯해 해외에서 자전적 성격을 지닌 성별 차별에 대한 만화는 꾸준히 제작되어 왔었다. 하지만 <단지>가 갖는 의미가 있다면 웹툰과 일상툰이라는 성격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비슷한 문제를 지닌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치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 작품은 단순히 작품으로 남는 대신 모든 고통을 지닌 이들과 함께하는 일종의 커뮤니티의 기능을 수행하는 작품이 된다.

<데미지 오버 타임>, 선우훈 만화, 유어마인드, 2권 완결

<데미지 오버 타임>은 여러 면모로 2015년 한국 만화의 문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픽셀 하나하나를 찍어내는 방식으로 묘사된 동시에 완전한 3차원도, 완전한 2차원도 아닌 ‘쿼터뷰’(Quarter View)로 그려진 작중의 세계는 마치 컴퓨터 게임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감각을 선사한다. 주로 1인칭이나 2차원에 머무르는 대다수의 작품과 달리 이러한 시도는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에 있어서는 물론 서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도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만들었다. 좀비물이라는 요소를 활용하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단순히 해당 장르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대신 장르성에 충실하지만, 동시에 이들과 맞서는 군대 내부의 모습을 주목하며 작가는 다층적으로 이야기를 형성하였다. 기존에 쉽게 보기 어려웠던 작품을 만든 선우훈 만화가는 현재 SBS에서 <SBS 뉴스 웹툰>을 연재하는 중이다.

<엄마들>, 마영신 만화, 휴머니스트, 단권 완결

마영신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우리 삶의 주변에 닿아있다. <뭐 없냐?>가 스크린경마에 빠진 두 청년을, <욕계>가 군내 부조리를, 그리고 <남동공단>과 <길상>에서는 작가 자신의 경험을 자전적이면서 동시에 르포적 성격의 터치로 진솔히 그려왔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턴가 자신과 비슷한 세대가 아닌 좀 더 어리거나 좀 더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도 초점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동동이>, <삐꾸래봉>, <19년 뽀삐>가 전자의 성격을 가진다면 <엄마들>은 후자의 성격을 가진다. 주위에서 흔하게 볼법한 ‘엄마들’을 자신이 그린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내밀하게 접근하며 그들이 겪는 일상을 리얼리즘적으로 그려낸다. 한편으로는 추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딱한 모습들이지만 작가는 섣불리 이들의 삶에 단정을 짓지 않는다. 그러한 접근을 통해 <엄마들>은 중년 여성들의 삶에 밀착해 접근한 픽션 르포가 딘다.

<오후 네 시의 생활력>, 김성희 만화, 창비, 단권 완결

김성희 작가는 <내가 살던 용산>과 <먼지 없는 방>, <섬과 섬을 잇다> 등으로 반쯤 르포 전문 만화가로 인식되고 있지만 김성희 작가의 매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몹쓸년>을 비롯한 픽션 작품에 있다. 앞서 언급했던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속 깊은 접근은 픽션들에서는 자신이 만든 캐릭터의 심리를 보다 깊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통로의 역할이 된다. <오후 네 시의 생활력>은 그런 능력을 지닌 작가가 오래간만에 픽션으로 그 가능성을 톡톡히 보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흔을 맞은 기간제 교사 주인공은 자궁을 적출하며 자신의 나이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고, 다시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삶을 느끼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자 중년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결코 단순하게 치부할 수 없는 필부들의 삶을 바라다보는 지금 현재에 대한 만화이다.

<D.P 개의 날>, 김보통 만화, 한겨레출판, 현재 레진코믹스-한겨레 동시 연재 및 3권 발매중

김보통 작가는 데뷔작 <아만자>와 SNS를 통해 간간히 그려온 <내멋대로 고민상담>을 통해 약간은 독특한 힐링 만화가로 흔히 인식되어 왔었다. 하지만 <아만자>에서도 간간히 비춰졌던 어두운 부분에 대한 표현이 이렇게 작가가 선보일 수 있는 다른 면이 되어 다시 돌아오리라고 누가 생각했었을까. <D.P 개의 날>은 군대 부조리를 다루는 매우 거칠고 날카로운 작품이다. 탈영병을 체포하는 헌병들이 주인공들인 작품은 마치 윤종빈의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를 연상시키는 톤으로 군대 내부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를 정면으로, 그리고 차근차근히 묘사한다. 동시에 단순히 고발하는 차원에서 그치는 대신 주인공들의 설정을 활용하여 추리, 수사를 다루는 스릴러 장르를 구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표현과 고민을 통해 <D.P 개의 날>은 지금까지 제작된 군대 소재의 만화 중에서 매우 가깝게 군대라는 조직의 현실을 드러내는 만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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