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 때문에 온 나라가 몸살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절규하는 청년들의 간절한 호소와 부모들의 애타는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소위 노동개혁 5법의 국회 통과를 재차 호소했다. 이에 발맞춰 정부 여당은 노동개혁 5법 등의 연내처리를 ‘호언장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여당의 주요 관계자들은 그들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이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2년마다 사실상 해고를 당해야 하는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을 둘러싼 맥락은 그간 기업과 결탁한 경제관료들이 중심이 돼 추진해왔던 ‘노동유연성 제고’라는 방향과 큰 차이가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히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1998년 파견법 제정 이후 유지돼왔던 고용계약을 둘러싼 체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무너뜨리는 본격적 시도의 첫 발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쟁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테면 기성세대의 일자리를 줄여 청년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임금피크제’는 호봉 중심의 임금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편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미 각 기업들은 연봉제를 택하고 있으나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여전히 남아있는 호봉제의 잔재를 모조리 걷어내겠다는 시도이다.

일반해고니 ‘중규직’이니 하는 개념들 역시 그간 근로기준법이 규정해왔던 노동자의 지위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정상적인 경우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하고 일단 고용된 이후에는 일정 정도 이상의 고용안정을 보장하도록 돼있다. 그간 정부의 정책은 근로기준법 자체의 핵심을 훼손하기 보다는 법 울타리 외에 있는 비정규직을 늘릴 수 있도록 해 노동유연성을 제고하도록 해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 와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근로기준법 자체의 핵심에 손을 대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사실상 해고되는 계약직들에게 더 기회를 줄 수 있도록 현행 2년 한도를 4년으로 늘리자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실내용에서 가장 기만적인 대목 중 하나이다. 애초에 비정규직법은 2년 이상 고용이 유지될 경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야 합의로 이 법을 만들 당시 참여정부는 2년만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 때문에 2년 만료 전 계약해지가 일상화될 것이라는 진보정당과 노동계의 반발은 무시당했다. 이제 박근혜 정권은 애초의 맥락에는 눈을 감고 2년 후 해고당하는 것보다는 4년 후 해고당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속삭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이는 국가의 악랄한 사기행위나 다름이 없다. 이외에도 파견을 거의 무제한으로 허용하자는 것이나 휴일근로와 연장근로에 대한 야바위식 해석 또한 노동개혁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까지 ‘세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정권의 보수적 성격과 신자유주의 담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경제관료들이 정부 곳곳에 포진해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경제가 맞닥뜨리고 있는 어떤 ‘위기론’에 대해서도 다뤄보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재계는 연일 ‘비상신호’를 내보이며 저성장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 그간 진행돼 온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한계에 부딪쳐 과거와 같은 성장률을 기록하지 못하는 상태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거나 ‘구조개혁이 수반돼야 한다’는 어떤 당위만 언급하는 신세이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금융을 산업화하는 데에서 활로를 찾으려 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방식의 산업구조 개편 계획은 좌초될 수밖에 없게 됐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로 요약되는 고부가가치 제조업 및 지식기반 콘텐츠 산업 등의 육성을 해법으로 제시했지만 이건 경제정책에 대한 ‘알리바이’에 가까운 수준이지 국가가 책임지고 추진할 수 있는 성격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런 거시경제구조로 인해 떨어지는 생산성을 인건비 등의 지출 축소를 통해 보완하려고 모색하기 마련이데, 그간 정부는 비정규직 확대를 통한 노동유연화 제고로 이에 호응해왔다. 그러나 기업의 생산성 하락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비숙련노동자의 신규채용이라는 측면 뿐 만이 아니라 이미 고용돼있는 숙련노동자의 노동조건 하향마저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박근혜 정권이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가설을 제시해볼 수 있다. 즉, 이제는 임기응변으로 버티기에도 무리가 있으니 전체 노동자에 대한 본격적인 노동유연화를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려고 하는 자본과 국가의 힘겨루기가 논란이 된 사례가 있다. 한국의 경우도 노조가 파업을 너무 많이 해서 기업이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담론이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목격돼왔다. 이런 상황은 보수정부에게도 부담이다. 결국 정권이 ‘표’로 심판을 받아야 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속성상 기업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 상황은 악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노동개혁이 정부와 기업 사이의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은 이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정부가 노조무력화와 쉬운해고, 임금피크제를 ‘당근’으로 내놓고 기업이 청년고용 확대와 창조경제혁신센터로 화답하는 상황은 이 문제의 핵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4일 오후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 열린 '아산 정주영 탄신 100주년 기념식'에서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등 참석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오른쪽은 아산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장인 정홍원 전 총리. (연합뉴스)

그러나 노동개혁은 단지 정부와 기업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과 노동 사이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이 모델에서 정부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중재자를 자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뭘 중재하기 보다는 노동계와의 문제를 오로지 ‘요식행위’로 해결하는 방법을 택했다. 노사정위가 민주노총을 빼놓은 채 한국노총과 ‘억지 합의’를 이뤘음에도 새누리당이 노동개혁 5법 발의를 통해 이 합의를 깡그리 무시해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애초 한국노총과의 합의 내용에는 파견법과 기간제법에 대한 문제는 포함돼있지 않았는데, 마치 노동계와의 합의를 거쳐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것 같은 모양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한국노총이 굳이 노사정위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결국 노동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운동의 붕괴가 상황을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단지 연속된 대형 집회를 주최한 책임자라는 이유만으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온갖 종류의 마녀사냥이 가능했던 것과도 무관치 않다. 과거 정권으로부터 조직적으로 분쇄돼 온 대중운동은 이제 노골적인 모욕을 당해도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신세에 처해있다.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언론의 분발이다. 보수언론은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세력에 대해 온갖 종류의 흑색선전과 왜곡을 망설임 없이 가하지만 기업이 하겠다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 없이 정당화하는 일방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방송은 정권에 의해 이미 장악됐고 그간 그나마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했던 인터넷 공간마저 정부 여당의 억지와 악다구니 속에 위협당하고 있다.

2012년 프랑스 언론들은 올랑드 정부에 세금을 내기 싫다며 벨기에로의 귀화를 모색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에네시 회장을 “기생충”이라는 모욕까지 동원해 비판했다. 한국의 언론은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하겠다며 협박하는 재벌에 “배신자여, 갈테면 가라!”고 하지는 못할망정 이것도 따지고 보면 기업 활동의 자유라며 옹호하는 것 이상의 메시지를 내놓지 못한다.

이건 앞서 언급한 정권의 문제도 있으나 언론 자신이 노동유연화의 수혜자가 되고 있다는 점 역시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재벌 정치와 재벌 정부, 재벌 언론이 노동개혁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동맹을 맺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것은 언론 내부의 노동을 다시 돌아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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