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으로 드디어 ‘핵폭탄’이 터졌다. 총선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제1야당의 주요 인사들이 과연 함께 뛰쳐나가야 할지, 나간다면 언제가 좋은지,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 머리를 굴려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총선은 이미 망했다”고 한 안철수 의원의 예언(?)이 자기실현적 양상을 갖춰가는 시점이다.

안철수 의원의 선택이 기성정치의 문법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안철수 의원은 애초 제1야당과 분명히 구분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로 요약되는 중도적 색채를 지닌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정당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안철수 의원과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들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2016년 총선에서는 제1야당을 대체할 수 있는 세력으로서 최소한의 정치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보였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은 별안간 노선을 바꿔 제1야당에 결합해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을 탄생시켰다.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흩어졌다. 그간 자신의 모자란 정치적 식견을 뒷받침해줬던 사람들을 잃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안철수 의원이 감당했어야 할 것은 제1야당이라는 울타리 내에서의 정치 혁신이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독자적 정치세력을 추진할 때 전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제1야당 내에서는 새로운 정치가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자정치세력’이라는 전략의 수정은 이 전제가 바뀌었을 때만 가능한 것이고, 그 전제가 바뀌었다는 판단은 안철수 의원이 독자적으로 내린 바였으므로 스스로 제1야당 내에서의 정치혁신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해야만 재기의 논리를 제대로 세울 수 있다.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1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새정치연합을 혁신하고 또 혁신해서 국민이 믿고 전권을 맡길 수 있는 정당으로 만들라는 염원에 부응못했다"며 탈당을 공식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은 2년도 채 안 돼 다시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이전의 논리로 되돌아갔다. ‘회군’에는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이건 벌써 두 번째다. 요즘 대중매체를 통해 재조명받고 있는 여말의 정세로 따지자면 이성계가 요동정벌은 무리라는 명분으로 회군을 했지만 조선을 세우지 못하고 또 다시 요동정벌을 하러 가는 꼴이다. 물론 정치는 군사작전이 아니기 때문에 하다보면 이런 일도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분명한 명분을 갖추지 않으면 이런 식의 갈지자 노선은 대개 실패한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안철수 의원이 실패의 길을 따르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 회군에서의 명분은 당시 민주당 김한길 지도부가 기초의원 선거에서의 정당무공천을 약속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제도의 변화라는 것은 이것이 또 다른 어떤 제도와 결합하느냐, 또 누가 어떤 의지를 갖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정치혁신의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와서 보면 과연 이 결정이 한국 정치에 얼마나 큰 혁신의 영감을 가져다주었는지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된 것도 문재인 대표와 ‘친노패권주의’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두 번째 회군의 명분 역시 분명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당 내의 정치구도를 놓고 볼 때 안철수 의원이 비주류의 수장처럼 행동하는 것을 주류가 원치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당내 주류는 안철수 의원을 붙잡아두기 위한 이런 저런 제안을 내놨다. 안철수 의원이 했다는 발언을 보면 이 제안들을 어떤 ‘술수’로 파악하였음이 분명하다. 또 다시 문재인 대표와 ‘친노세력’에게 이용당할 수는 없다는 거다.

그런데 여의도 정치의 내적논리는 원래 서로 속고 속이며 이용하고 배신하면서 갖춰가는 것이다. 만일 이 질서에서 ‘이용당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려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이 주장한 것은 ‘낡은 진보와의 결별’이니 하는 다분히 추상적인 종류의 것이다. 이건 정치평론가가 할 수 있는 ‘진단’에 속하는 거지 여의도 정치인이 결기를 실어 내놓을 정치적 전망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혁신전대’를 하자는 주장도 그렇다. 결국 ‘문재인 물러나라’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러니 네티즌들이 ‘남녀관계’라는 다분히 남성중심적 선입견에 기댄 패러디물을 만들고 기뻐하는 것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탈당 결행'을 막고자 13일 새벽 노원구 안 전 대표 자택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고 해서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안철수 의원은 이미 노선과 이념(이게 있다면 말이다)을 함께 할 사람들을 상당수 떠나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길을 나설 때 함께 하는 새로운 사람들과는 결국 정치적 이익을 나누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사람이 얼마나 모여 줄지 알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겠다는 사람들은 호남지역 등 자신의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나가는 것과 정당 소속으로 나가는 것 중 어느 경우가 유리한지 저울질 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 소속이라면 안철수 신당인지, 천정배 신당인지, 박주선 신당인지 정리가 안 될 가능성도 크다. 결국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가 새로운 ‘철새도래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 안철수 의원은 오히려 새정치의 기수가 아니라 기껏해야 작은 돌무더기에 불과했을 철새도래지를 금강하구둑 수준으로 크게 만든 사람으로 역사에 남을 수도 있다.

안철수 의원의 결단으로 국회에서의 무게중심이 크게 흔들리게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그렇잖아도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에 대한 비난을 ‘국회심판론’의 한 축으로 해 연일 제기하고 있다. 이는 정권 중후반기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야당에 의한 ‘정권심판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국회가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내부 문제에만 매몰돼 민생을 외면하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고 있다.

박근혜 정권에게 2016년 총선은 매우 중요한 반환점이 될 수밖에 없다. ‘4대개혁’으로 요약되는 인기 없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개헌’을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과대의석 획득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단 한 석을 잃지 않기 위한 총력전이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제1야당은 실질적인 분당 수순에 돌입했다. 분당 후 몇 개월 만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서로 ‘사이좋게’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표적공천도 해가면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할 테다. 정치공학을 잘 해서 서로 ‘윈-윈’이 되는 총선전략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야권연대 시즌2’라는 비판을 들어가며 야권 전체의 일정 부분 이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더군다나 안철수 의원의 새로운 세력이 이런 거래의 대상으로 여겨질 수준이 될 지도 미지수다.

결국 안철수 의원의 ‘결단’은 대선을 위해 총선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의 폭주를 막기 위해 야권 전체가 뭉쳐야 한다는 고전적 전술을 반드시 반복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총선을 포기하고서라도 안철수 의원이 대권을 쥐어야만 하는 이유를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까지의 ‘안철수 정치’를 결산해보면 그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안철수 의원이 대권을 쥘 가능성 자체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사슴이 뿔로 잠시 사자를 상처 입혔다고 해서 야수가 되겠는가? 안철수 의원이 선택한 길은 치고 달리고 할퀴고 물어뜯을 준비가 돼있어야만 제대로 걸을 수 있다. 안철수 의원이 어떤 미지의 존재였을 때에는 그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의 정치는 이미 몇 년간 부정적 평가의 대상이 돼왔다. 그러니 어떻게 봐도 이번 결단으로 만들어질 미래를 희망적으로 봐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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