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잡혀갔지만 언론의 ‘모욕’은 끝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몇몇의 양식있는 언론을 제외한 거의 모든 매체가 한상균 위원장과 민주노총에 대한 생트집에 동참하고 있는데, 그 중 조선일보는 가장 적극적이고 지능적인 방식으로 사회운동 전반에 대한 흠집내기에 열중하는 중이다.

조선일보는 11일 지면에도 제대로 된 언론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내용의 기사들을 가득 채웠다. 총 3회에 걸쳐 진행돼 온 ‘민노총 20년 진단’의 마지막편도 몰상식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 기사에서 민주노총은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같은 사업장의 비정규직을 내쫓고 돈까지 뜯어내는 파렴치한들로 묘사돼있다.

▲ 조선일보 11일자 4면 기사

조선일보는 정규직이 중심이 된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있는 계열사 노동자들을 고용승계 해 원래 채용돼있던 비정규직들이 계약해지 된 사례를 들며 민주노총의 이기적 행태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진실은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고용안정을 책임져야 하는 건 노동조합이 아니라 사측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예로 든 그 업체는 폭설로 공장이 붕괴됐다는 이유로 계열사 청산 절차에 돌입한 사례다. 폭설로 무너지는 공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그간 일해 왔음에도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빠졌던 사람은 조합원인가 사장인가? 이 사고로 노동자 1명이 죽고 2명이 다쳤다. 폭설 때문에 무너질 허술한 공장을 세우고 운영한 주체는 노조인가 사측인가? 회사는 시공사에 15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조선일보가 건설노조 소속의 타워크레인 기사들에 대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것도 황당하다. 조선일보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현장 일용직 근로자들로부터 매달 거액을 상납 받아 왔다며 이것 역시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착취한 하나의 사례처럼 다루고 있다. 현장에 그런 관행이 있는 건 사실이다. 타워크레인 기사가 신속하게 작업을 해야 전체 공정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산하의 건설노조는 소속 조합원들에게 그런 행위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교육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의 타워크레인 기사는 대다수가 비정규직이다. 정규직이 아니다. 백번 양보해도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사례인 것처럼 보도하는 건 완전한 사실 왜곡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한상균 위원장이 ‘2000만 노동자의 대표’를 자처했다는 사실을 비꼬며 민주노총이 극소수의 노동자들만을 대표한다는 악선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날 조선일보의 사설에도 같은 맥락의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2000만 노동자를 대표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조직의 수장이 그런 의지를 상징적으로 피력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는가? 국회의원이 자신을 ‘국민의 대표’로 일컬을 때 “당신은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부산 영도구 거주민 중에서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대표”라고 반박하는 언론은 없을 것이다. 오직 민주노총에 대해서만 이런 앞뒤 없는 생트집이 무제한으로 허용된다.

▲ 조선일보 11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을 ‘조직폭력배’에 비유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공동목적과 통솔체계를 갖고 조직체를 유지하며 다수가 폭력을 행사할 경우를 ‘범죄단체’로 규정한 폭력행위처벌법을 언급하며 “민노총이 그동안 보여 온 행태를 보면 조직폭력배와 무엇이 다른지 구분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조선일보가 일방적인 흑색선전으로 사회운동 전체에 망신을 주기로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었거나 기초지식과 판단력이 대단히 부족한 상태의 편집국을 운영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가 사실이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민주노총은 관계법령에 의해 합법적으로 등록된 노동조합들의 모임이다. 민주노총 산하의 노조들은 각기 자기 사업장에서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고 이렇게 맺은 단체협약은 법적으로 그 효력이 보장된다. 도대체 조직폭력배의 무엇이 이러한 법적 보호를 받고 있는가? 우리는 같은 논리로 박근혜 정권과 손을 잡고 있는 보수언론의 ‘카르텔’을 오히려 조직폭력배로 부를 수 있다.

▲ 조선일보 11일자 5면 기사

민주노총이 아니라 보수언론이 조직폭력배의 질서를 재현하고 있다는 건 이날 조선일보 지면의 다른 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날 조선일보는 5면에 <극진한 대접 받으며 수갑 찬 범죄 혐의자>란 제목의 ‘기자수첩’ 글을 게재했다. 한상균 위원장이 체포될 때 민주노총 간부 및 조합원 50여 명과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영접’을 했고 조계종 직원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길을 터줬으며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도법스님과 행보를 함께 해 마치 ‘정상급 의전’을 받는 듯 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 글을 작성한 기자는 “경찰에 체포되기에 앞서 이날 한 위원장은 이 나라의 어떤 고관대작도 받기 어려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면서 “이날 그의 모습은 평범한 노동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특권’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쓰기까지 했다.

단지 어떤 어지러웠던 집회 시위의 책임자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쫓겨 종교시설이 아니면 몸을 의탁할 데가 없는 처지가 되는 그런 특권도 있는가? 방에 갇혀 노트북 사용도 거절당한 채 도시락과 배달음식으로 연명하는 고관대작도 있는가? 신도를 자처하는 정체불명의 무리들에게 끌려 나갈 뻔 하다 옷이 벗겨지는 수모를 당하는 ‘정상급 의전’도 있는가?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글이다.

조선일보는 한상균 위원장이 굴욕적으로 체포돼 나가면서도 주먹을 번쩍 들어 올리며 투쟁 의지를 밝히거나 자신들이 귀족노조만의 단체가 아니라며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모습을 불쾌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특히 정치적 측면에서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민주노총에 또 다른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우려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폄훼하고 망신주는 걸로 기를 꺾어놔야 한다는 어떤 공학적 판단을 내린 것일 테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그런 행태야 말로 조직폭력배의 논리에 기반 한 것으로 밖에 해설할 수 없다. 조직폭력배에게 중요한 것은 조직의 위신과 위계다. 조선일보는 자신을 비롯한 기득권에 저항하면 이런 꼴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전시하면서 노동자를 대변하겠다는 단체의 대표를 펜과 세치 혀로 짓밟는다. 그러면서 정치·경제적 권력들과 결탁해 달콤한 말로 ‘노동개혁’을 밀어 붙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얇은 지갑마저 빼앗아가려고 시도한다. 이게 조직폭력배가 아니면 무엇인가?

참여정부 시절 비정규직보호법을 만들 때 민주노총은 이에 반대하면서 그 법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경고는 결국 현실이 됐다. 당시 보수언론은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정도도 부족하다며 민주노총을 비난했다. 이제 똑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반대하고 보수언론은 찬성하는 그 ‘노동개혁’이 지금까지 노동자들을 보호해줬던 최소한의 방어막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전히 빼앗기는 쪽은 민주노총이고 빼앗아 가는 쪽은 보수언론을 비롯한 권력 카르텔이다. 이런 현실에서 조선일보의 황당한 태도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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