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광란’이라고 할만하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관련 보도들이 그렇다. ‘저널리즘’은 커녕 우리가 흔히 언론이라고 부르는 최소한의 선도 지키지 않는다. 늘 그래왔던 종편이야 그렇다 쳐도 신문 지면까지 이렇게 과감한 모습을 보이는 건 충격적이다.

▲ 조선일보 10일자 1면 기사

조선일보는 10일 1면 톱기사에서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이 이날 정오까지 한상균 위원장의 거취를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을 두고 ‘스님의 한 수’라며 추켜세웠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민주노총이 한상균 위원장의 체포되는 모습을 두고 ‘순교자’, ‘희생자’의 모습을 연출하려 했지만 자승 총무원장의 입장 발표 때문에 체포작전이 연기돼 “민노총이 그린 그림에도 차질이 빚어진 것”이 됐다는 경찰의 발언을 전했다.

또, 조선일보는 이어지는 2면 기사에서 민주노총이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문제를 경찰과 조계종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해석을 재차 제기하면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마치 일부러 한상균 위원장 체포 저지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듯이 서술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조계종과 경찰이 정면 충돌하는 사태는 지금 한 위원장과 민노총이 간절히 바라는 상황”이라면서 조계종이 한상균 위원장을 설득해 자진출두토록 해야 한다는 점잖은 훈수를 두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보도 태도는 자기모순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첫째, 종래의 구도를 감안하면 조선일보는 경찰의 한상균 위원장 체포 작전을 조계종이 사실상 지연시킨 것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비판을 제기했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고 오히려 자승 총무원장의 입장 발표를 최악의 사태를 피하게 한 어떤 ‘묘수’인 것처럼 묘사했다. 여기에는 다분히 정치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일보가 스스로 실토하고 있는 것처럼 “조계종과 경찰이 정면 충돌하는 사태”가 바람직하지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한 위원장과 민노총이 간절히 바라는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정작 한상균 위원장과 민주노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거는 전혀 없다. 경찰의 ‘관심법’에 비유할만한 제멋대로 분석을 인용한 것과 한상균 위원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조합원들의 숫자가 적었다는 것 정도가 전부다. 민주노총의 무슨 ‘전략문서’를 입수한 것도 아니고 최소한 책임있는 산별노조 위원장의 발언을 들은 것도 아니다. 기자라는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무슨 얘기가 언론에 나오면 “본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쓰느냐”고 항의하는데,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그런 최소한의 취재 원칙조차 지킬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1등신문과 정론을 자처하는 신문으로서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 조선일보 10일자 2면 기사

세 번째 자기모순은 조선일보가 민주노총의 이중성을 주장하면서 스스로의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의 민주노총에 대한 보도는 ‘겉으로 명분을 주장하지만 뒤로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정치적 냉소주의의 기본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위해 노동개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과격한 투쟁을 벌이지만 이는 결국 정파적 필요와 ‘귀족노조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날 보도는 오히려 자신들이 정치적 이익에 충실한 존재라는 걸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민주노총을 향한 ‘칼’은 마구 휘두르지만 조계종에 대해서는 마치 고가의 고려청자를 다루듯 행여나 깨질까 조심스러웠다는 점이 그렇다.

▲ 조선일보 10일자 사설

조선일보가 “조계종과 경찰이 정면 충돌하는 사태”를 경계하는 건 한상균 위원장과 민주노총이 이를 원해서가 아니라 박근혜 정권에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기독교도 대통령을 모시는 여당이 ‘템플스테이 예산’을 건드렸다가 불교계의 집단적인 반발에 부딪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불교계가 4대강 사업 반대 여론을 주도한 천주교와 연대했던 장면 역시 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런 경험이 있는데 총선을 4개월 앞두고 불교계를 벌집 쑤신 듯 해놓아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싼 조선일보의 최근 보도는 결코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조선일보야 말로 민주노총을 세상 천지에 없는 악당으로 묘사해 명분을 만들고 뒤로는 자기 이권을 챙기는 전형적인 이중성을 드러낸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이중성은 TV조선의 한상균 위원장 자진출두 생중계(?) 방송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TV조선 방송에 등장한 출연진들은 그야말로 온갖 수단을 동원해 한상균 위원장 행동 하나하나의 의미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한상균 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쓴 메시지를 온갖 방식으로 확대해석해 자신을 품어준 조계종을 욕한 개념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가 하면 한상균 위원장이 등장한 화면에 범죄스릴러물에나 등장할 만한 배경음악을 삽입하는 괴이한 일까지 벌였다.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의 3% 밖에 대변하지 못하는데도 이러는 건 귀족노조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전형적인 해석 역시 등장했고 이 과정에서 조계종의 ‘종무원 노조’에 “행동을 신중히 하라”는 협박성 조언까지 나왔다. 일반적인 대담 프로그램의 문법에서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할 진행자는 한상균 위원장의 등장을 ‘쇼’에 비유하면서 최고 인기 가수가 무대에 올랐고 의상으로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는 비아냥을 아무 고민도 없이 입 밖에 내기도 했다.

▲ TV조선의 기상천외한 한상균 위원장 관련 방송 화면 캡쳐

그런데 TV조선은 한상균 위원장을 거의 연쇄살인마 다루듯 하면서도 불교계에 대해서는 깍듯한 태도를 유지했다.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이 한상균 위원장을 자진출두하도록 설득했다고 강조하는가 하면 자승 총무원장의 입장 발표가 민주노총의 어떤 ‘음모’에 김을 빼놨다는 해석을 강하게 주장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조선일보의 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를 물어뜯기 바쁜 TV조선 방송의 출연자들이지만 정권에 누를 끼칠 수 있는 불교계에 대한 앞뒤없는 비판은 제기하지 못하는 소심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막가파’ 언론이 끼치는 해악은 우리의 눈과 귀를 오염시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소한의 언론이기를 포기한 이런 신문과 방송이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양식있는 사람이라도 이들의 괴상한 얘기를 자꾸 듣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중의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선일보와 TV조선의 논리에 쉽게 물들어 박근혜 정권을 지지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이 나쁜 점은 그들이 보수정권을 열렬히 지지한다는 점이 아니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의 정파적 열정은 오히려 정치적 냉소주의를 키운다. 조선일보와 TV조선과 같은 존재들 때문에 사람들은 더더욱 정치에 관심을 두려 하지 않게 되고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하게 된다. 이런 세태는 ‘누군가는 뚫고 나온다’는 ‘송곳’의 존재를 무디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이 냉소는 기득권에 도움이 되고, 힘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해가 된다. 이게 조선일보와 TV조선의 가장 나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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