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영장 집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경찰은 8일부터 조계사 강제진입을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 2002년 철도노조 파업 이후 13년 만에 경찰의 조계사 진입이 이뤄질지 이목이 집중된다.

▲ 조선일보 9일자 1면 일부

언론은 수사당국이 나름의 명분을 쌓는 과정을 상당히 직접적으로 거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9일 조선일보의 지면이다. 조선일보는 1면 톱에 민주노총이 한상균 위원장 체포를 ‘육탄저지’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배치하는가 하면 <‘민노총 20년’ 진단>이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본격적인 ‘마녀사냥’에 돌입했다. 이 기사의 내용은 상당히 고약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데, 민주노총이 비판받을만한 모든 사례를 ‘폭력’과 연관시키고 있다는 데에서 그렇게 밖에 평가할 수 없다.

▲ 조선일보 9일자 4면 일부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2005년 당시 벌어졌던 소위 ‘사회적합의주의’ 논쟁으로 인한 대의원대회 파행을 민주노총의 ‘뿌리 깊은 폭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으로 꼽았다. 그러나 조직의 노선에 대한 이견으로 내부 구성원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단계까지 간 사례가 민주노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조계종도 1990년대 중후반 종단개혁 등의 문제로 갈등을 빚으며 폭력사태에 휘말린 사례가 있다. 이를 두고 ‘불교의 뿌리 깊은 폭력성’이라고 평가하는 언론은 없다. 이른바 폭력사태는 국회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이를 두고 누가 ‘정치의 뿌리 깊은 폭력성’을 운운 하는가?

조선일보가 제기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민주노총 내에서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라는 세 정파가 경쟁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상균 위원장은 이 중 소수인 현장파에 속하는데 조직 내 기반의 약세를 선명성으로 돌파하기 위해 과격 폭력시위에 매달린다는 얘기다. 앞의 사례처럼 이것도 황당한 얘기이긴 마찬가지다. 다른 정파에 비해 소위 현장파로 불리는 조직이 급진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게 반드시 ‘과격폭력시위’와 상관관계를 갖는 건 아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존재했던 이갑용 집행부 이후 현장파로 분류될 수 있는 민주노총 위원장이 탄생한 건 거의 17년 만이다. 조선일보는 이 17년 동안에도 변함없이 민주노총을 ‘폭력과격시위’의 배후로 지목하고 끊임없이 모함해왔다. 이제 와서 갑자기 ‘현장파’를 불러내는 건 최소한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행위다.

조선일보의 괴상한 관점은 기사의 이후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와 싸워서 노동자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낡은 이념’ 때문에 기업을 적으로 돌리고 폭력을 사용하는 등의 극단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노동조합 활동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회사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납득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면 애초에 민주노총은 있을 필요도 없다. 즉, 이 대목에서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의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더 황당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가 바로 이어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또 민주노총이 계급투쟁을 명분으로 내걸지만 실제로는 힘의 과시를 통해 눈앞의 실리를 챙기는 ‘전투적 실리주의’에 집착한다고도 분석했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의제를 걸고 파업을 진행할 때는 ‘불법정치파업’이라고 비난하더니 이젠 실리를 챙긴다는 비판을 하고 나선 것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조선일보의 이날 사설은 더 황당하고 낯 뜨겁다. 조선일보는 한상균 위원장이 “노동개악을 막아야 한다는 2000만 노동자의 소명을 차마 저버릴 수 없다”고 쓴 것을 두고 “무슨 자격으로 2000만 근로자의 대표 행세를 하는가”라며 면박을 줬다. 민주노총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중심이 된 단체고 이들의 기득권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게 조선일보의 최근 일관된 주장이다.

▲ 조선일보 9일자 사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를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정부의 잘못된 노동정책과 거기에 대해 아무런 비판의식을 갖지 못한 보수언론 때문이지 민주노총 때문이 아니다. 전태일 열사가 목숨을 버려가면서 까지 지키려 했던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바를 피해갈 수 있는 수많은 법적 ‘구멍’을 만들어주고 여기에 모자라서 근로기준법이 담고 있는 핵심까지 바꿔 중규직이니 쉬운해고니를 가능케 하자는 게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혁이다. 따라서 조선일보의 사설은 잘해봐야 권력의 시녀임을 스스로 선포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를 이간질하는 저열한 술수 이상의 것이 못 된다.

조선일보의 이런 구도는 동아일보의 지면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또다른 대표적인 보수언론인 중앙일보는 다소 점잖은 태도로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종을 비난했다며 “최소한의 도의를 저버린 적반하장격 태도”라며 트집을 잡고 있다. 보수언론이 똘똘 뭉쳐 민주노총 때려잡기에 나서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한 태도다.

앞뒤 맥락없는 일방적 비난에 나서고 있는 건 보수적인 신문들 뿐 만이 아니다. 여기엔 지상파 뉴스도 힘을 보태고 있다. KBS, MBC, SBS의 지상파 뉴스는 8일 건설노조 일부의 문제를 다루며 민주노총을 다시 언급했다. 민주노총 소속의 노동조합 간부들이 건설현장에 노동조합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를 채용하라며 업체를 공갈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다는 게 뉴스의 핵심 내용이다.

▲ KBS 뉴스9 화면 캡처

지상파 뉴스의 내용만 보면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 간부들의 파렴치한 범죄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는 수사기관이 제시하는 맥락만 일방적으로 받아 적은 결과다. 타워크레인 기사의 경우 비정규직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특수고용노동자로 각 현장과 기사 개인이 임금을 직접 계약하도록 돼있다. 어떤 현장이냐에 따라 받는 임금은 천차만별인데, 그마저도 개별화된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제한된 일자리를 두고 서로 경쟁을 해 임금이 자체적으로 하향평준화 되는 비극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임무는 타워크레인 기사들끼리의 가격인하경쟁(?)을 방지하고 공동으로 임금인상의 방법을 모색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이를 위해서 타워크레인 기사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묶고 그 안에서 공통된 행동을 취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타워크레인 기사들에 대한 노동조합 가입 종용이나 업체에 대한 어떤 종류의 강압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앞에서도 설명했듯 임금노동자의 일반적 형태에도 미치지 못하는, 다분히 원시적인 고용형태라는 모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노동조합 간부들이 형법을 위반했다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하고 그걸 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비난할 순 없겠지만 이 사건에 대한 지상파 뉴스의 보도는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였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 지상파 뉴스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겠지만 이런 식의 보도가 민주노총에 대한 마녀사냥이라는 기득권 기획의 일환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더 큰 비극이다. 방송이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지 않으면 공정보도라는 이상을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보수언론과 지상파에 최소한의 양심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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