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머니투데이 the300은 해양수산부가 작성한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을 입수해 단독보도했다. 이 문건에는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위원장 이석태, 이하 특조위) 여당 추천 위원들에게 내리는 ‘가이드’가 포함돼 있었는데, 핵심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 조사를 최대한 막는 것’이었다. 해수부는 의결과정의 공정성을 문제 삼을 것, 필요할 시 여당 추천 위원 전원 사퇴도 불사할 것뿐 아니라 국회 농해수위 위원들의 협조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철저하고 투명한 진상조사가 가능하도록 독립된 기구로 마련한 특조위를 ‘배후 조종’하려고 한 흔적이 드러나 파장은 컸다.

▲ 세월호 특조위 여당 추천 위원들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조사하는 것에 반대하는 기자회견(11월 19일)을 열었고, 4일 후 농해수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 역시 세월호 특조위의 결정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19일 머니투데이 the300 단독보도로 드러난 '해양수산부 문건' 지침과 꼭 같았다.

특조위 여당 추천 위원들은 정말로 해당 문건을 충실히 따랐다. 특조위가 ‘대통령 행적 조사 의결’을 할 조짐을 보이자, 19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직을 걸고’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지난 8월 갑작스레 사퇴했던 석동현 위원까지 등장했다.

특조위가 지난 23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참석 위원 13명 중 9명의 찬성으로 해당 안건을 가결시킨 후에도 문건 상의 ‘시나리오’는 그대로 작동됐다. 이헌 부위원장, 고영주 위원, 차기환 위원, 황전원 위원 등 여당 추천 위원은 4명은 아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같은 날 이에 발맞추듯 새누리당 농해수위 위원들은 세월호 특조위의 결정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6일 오후 3시, 특조위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중구 나라키움저동빌딩 앞에서 416연대 주최로 <세월호 특조위 조사를 방해하는 여당 추천 위원 및 해수부 규탄 집회>가 열렸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박주민 변호사는 해수부가 작성한 문건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박주민 변호사는 “주요 현안 중 BH 조사 관련 사항은 적극 대응하라고 되어 있다. 여당 추천 위원들이 의결과정 상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필요하면 전원사퇴 의사를 표명하라고 되어 있다. 그 예로 부위원장 주재 기자회견이 나와 있는데 정말 이 말대로 기자회견을 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게 행동하고 있다”면서 “어떻게 하면 조사를 망치고 지연시킬까를 고민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문건이 드러난 것은) 이미 특조위의 독립성이 심대하게 침해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문건대로라면 많은 국민들의 성원을 담아서 출범했지만 특조위는 진상규명을 못하고 진짜 세금 도둑이 된다”며 “여당 추천 위원들은 당장 유가족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이 문건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26일 오후 3시, 특조위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중구 나라키움저동빌딩 앞에서 416연대 주최로 <세월호 특조위 조사를 방해하는 여당 추천 위원 및 해수부 규탄 집회>가 열렸다. 세월호 유가족 법률대리인인 박주민 변호사가 해수부 문건 내용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미디어스

416연대 미류 운영위원은 “모든 사람은 존엄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갖는다. 그 권리를 보장해야 할 1차적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정부가 져야 한다. 그 정부의 수장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알 필요 없다는 것은 정부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며 “12월 14일~16일 청문회가 예정돼 있다. 당일 왜 제대로 구조하지 못했는지 밝히려고 한다. 어떤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밝히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의 권리를 누가 짓밟고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는지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집회 참가자들이 특조위 여당 추천 위원들에게 전하는 공개항의서한을 읽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들은 여당 추천 위원들에게 △가족과 국민 앞에 사과할 것 △복귀 후 독립적인 국가위원회 위원으로서 합당한 일을 할 것 △청와대와 해수부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지 말 것 △해수부 문건 작성 및 이행을 지시한 주체를 처벌받게 하는 데 앞장설 것 등을 촉구했다.

다음은 공개항의서한 전문이다.

이 헌 부위원장, 고영주, 차기환, 황전원, 석동현 위원에게 드리는 공개항의서한

여러분은 지난주 목요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원회가 외부세력과 연계되어 활동하면서 불필요한 정치적 활동으로 시간을 허비한다면서 이를 시정하지 않을 경우 ‘전원 총사퇴’도 불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외부세력이라고 주장한 이들은 다름 아닌 피해 당사자인 세월호 가족들입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국민들입니다. 국제인권규범들은 하나같이 재난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에 피해당사자와 국민이 참여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지극히 당연한 가족과 국민의 권리행사를 ‘외부세력의 개입’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반면, 여러분의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은 한 가지 분명한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조위 조사를 방해하고 독립성을 침해하는 외부세력인 박근혜 정부와 해양수산부와 연계하여 그 지침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행동한 자들은 이 헌 부위원장을 비롯한 여당추천 위원, 바로 당신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낯 뜨겁게도 당신들은 해양수산부에서 작성된 문건이 시키는 것과 동일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해수부 문건은, 여러분의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은 물론, 그 주장과 논거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계획하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 열린 특조위의 전원위원회 회의에서도 위원님들은 특조위 문건이 지시한 것과 매우 유사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마치 받아쓰기를 잘하는 착한 학생들처럼 비쳐졌습니다. 이 모든 게 우연이란 말입니까?

이 헌 부위원장님은 자신은 꼭두각시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자신이 해수부 문건이 지령한 대로 사퇴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퇴하지 않고 남아서 해수부 문건이 시키는 것과 동일한 조사방해 행위를 지속하는 것이 해수부의 꼭두각시가 아닌 증거라고 우기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창피하지 않으십니까?

더 낯부끄러운 일은 다른 여당 추천 위원들입니다. 사표를 내겠다고 여러 번 입장을 밝히면서 정작 사표를 제출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석동현 위원은 총선출마를 위해 9월에 이미 사의를 밝히고 해수부에도 통보한 후 한동안 회의에 나오지 않다가 해수부 문건이 시키는 대로 ‘충심’을 발휘하기 위해 지난 회의에 출석했습니다. 304명이 억울하고 고통스럽게 희생된 이 참사의 피해자들을 이렇게 우롱하고 모독해도 되는 겁니까?

여당추천위원들의 생각과 입장이 세월호 가족과 다수 국민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독립적으로 성역 없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특별법의 입법정신을 존중하는 외양만이라도 보여야 마땅한 것 아닙니까?

지금 당장 가족과 국민 앞에 사과하십시오. 그 후에 업무에 복귀하여 독립적인 국가위원회의 위원에 합당한 일을 하십시오. 외부세력, 특히 조사대상인 청와대와 해수부의 꼭두각시와 방패막이로 행동하는 것을 중단하십시오. 그리고 특조위의 독립적인 조사활동을 방해하는 범죄의 증거문서인 해수부 문건을 작성하고 그 이행을 지시한 자가 누군지 밝혀내 응분의 처벌을 받게 하는데 앞장서십시오.

문건이 폭로된 후 해수부는 이 문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디서 작성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문건에서는 해수부를 ‘우리 부’로 지칭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도 해수부는 뻔뻔하고 뻣뻣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상소위에서 논의된 내용까지 소상히 알고, 특조위 내부 인사들과 만나 BH조사 대응 방침을 마련하고 문건을 작성한 사람이 누구인지, 다른 사람들은 모를지 몰라도 이 헌 부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추천 위원님들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피해자의 이름으로 호소합니다.

제발 최소한의 양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족들이 믿을 수 있도록 여당 추천 위원들이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세월호 가족들은 더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어떤 방해와 공작이 있더라도 진실을 위해, 그리고 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먼저 간 아이들과 부모형제들이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2015. 11. 2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집회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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