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에 한류의 인기를 견인해온 한국 드라마가 최근 위기에 빠졌다. 기본 시청률을 깔고 가는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는 논외로 하고 화제를 모으는 드라마도 별로 없거니와 시청률 역시 이를 반영해 작년 초에 종영한 ‘별에서 온 그대’ 이후 시청률 20%는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마의 벽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그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용두사미’ 드라마가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첫 방영 당시에는 큰 화제를 모았으나 뒤로 갈수록 전개에 힘이 빠지고 시청자의 공감을 얻지 못한 채 산으로 가는 드라마가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큰 관심 속에 시작했던 ‘용팔이’와 ‘냄새를 보는 소녀’ 등을 비롯해 최근의 ‘그녀는 예뻤다’ 역시 극 초중반까지 화제를 모으며 많은 관심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전개로 지켜보던 시청자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용두사미 작품들이 늘어나게 된 그 이면에는 한국 드라마의 제작 시스템이 자리한다.

한국 드라마는 대다수는 외주제작사에 의해 제작이 이루어진다. 외주제작사는 작품의 시놉시스와 초기 대본 등으로 방송사와 편성 계약과 함께 주연배우 등을 확정하고 실제 제작과정에 돌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통상 4부에서 6부의 대본만으로 편성이 잡혀지고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하게 된다. 이후 흔히 ‘생방송’이라 불리는 드라마 방영시간 직전까지 촬영하고 편집해서 가까스로 방영시간에 맞춰 방영이 되는 사태가 시작된다.

급히 편성에 들어가는 경우는 단 2회의 대본만으로 제작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쓰면서 동시에 찍는’ 국내 드라마의 제작 현장의 긴박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쪽 대본’을 떠나 최근에는 ‘씬 대본’이라 불리우는 대본이 만들어지고 촬영되고 짜집기 방식으로 편집이 된다. 심지어 드라마가 방영되는 순간에도 드라마 후반 부분의 편집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아차 하는 순간 불의의 방송사고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응답하라 1994’와 ‘펀치’ 등은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음에도 방송사고로 인해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 응답하라 1994

그러나 이러한 방송 사고는 국내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서 나타난 문제점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전체적인 드라마의 질이 하향 평준화된다는 것이다. 1주일에 2회분에 해당하는 대본을 써야하는 상황은 대다수의 작가에게 물리적으로 절대적 극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긴박한 상황에서 개연성이 떨어지고 작품의 질을 담보할 수 없는 스토리가 이어지고 최악의 경우에는 드라마 중반 작가교체라는 극단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배우들 역시 극 후반으로 갈수록 대본을 받고 난후에 제대로 된 이해와 해석조차 불가능한 시간 안에 촬영에 임해야 한다. 그 결과 후반으로 갈수록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용두사미 드라마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제 해답은 사전 제작드라마 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전제작 드라마는 아직 우리나라 드라마 현실에선 아직 꿈같은 일이다. 대다수의 드라마 외주제작사는 방송사 편성 없이 제작비 전액을 투자해 사전제작을 감당하기에는 열악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드라마 한편을 제작한 뒤 시청률과 광고 판매 등에서 부진한 결과가 나오면 적자를 면치 못하고 그대로 문을 닫는 제작사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사전제작을 감당할 규모 있는 제작사도 몇 군데 없거니와 그들마저도 위험 부담을 꺼리는 분위기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의 개선은 아직도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러나 반갑게도 최근 일부 드라마들이 사전 제작을 목표로 제작이 한창이라는 소식이다. 전체적인 국내 드라마 제작 현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좋은 영향이 미치길 바래본다. 더불어 최근 새로 시작한 드라마 몇 편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드라마들이 이대로 잘 흘러가길, 그래서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며 즐겁게 볼 수 있게 되길 하는 바람이다.

임연미 _ 공공미디어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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