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여당 추천 위원들이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다룬 KBS부산 <부산 NOW>에 중징계를 내리려고 시도해, 야당 추천 위원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퇴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당 추천 위원들은 <부산 NOW>에 일본 시민단체와 UN총회 보고서 등 국정교과서에 비판적인 입장이 더 많이 인용된 것을 근거로 프로그램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으나, 야당 추천 위원들은 패널 구성이나 내용 면에서 불공정성이 두드러졌던 보도도 ‘문제없다’고 한 과거 사례와 비교했을 때 수긍하기 힘들다며 심의를 거부했다.

▲ 10월 21일 방송된 KBS부산 <부산 NOW> 부산으로 이어진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김성묵)는 25일 KBS부산 <부산 NOW> ‘부산으로 이어진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10월 21일 방송, ▷링크)에 대해 심의했다. <부산 NOW>의 보도는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을 균형 있게 다루지 않았다(<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 공정성) △오차범위 안에 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할 때 이 사실을 사전에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제16조 통계 및 여론조사)는 이유로 민원 제기 대상이 됐다.

의견진술 차 출석한 KBS부산 양승동 편성제작국장은 “부산시민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프로그램 내용을) 만들었다. 부산 시민단체에서 집회도 있었고, 부산대 교수들의 (국정교과서) 집필거부도 있었기 때문에 담당자 입장에서는 현안이라고 본 것 같다”고 제작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공정성 위반’ 지적에 대해 “부산총국 심의위원들은 ‘팩트 위주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 물리적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심의했고, 외부 모니터 요원들도 비슷한 평가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심의평 중 사회 현안에 대해 방송제작자가 자기 견해를 밝히는 듯한 인상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사례로 제시된 게) 새누리당이 붙인 (국정교과서 관련) 현수막을 검증하는 부분인데, 담당 PD는 사실 확인 차원에서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이 정치·경제·사회적 환경 감시 기능을 가진 만큼 (사실 검증은) 필요했다고 봤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통계 및 여론조사 조항 위반’ 지적에 대해서 양승동 국장은 “총 3번의 여론조사를 인용했는데 ‘추이’를 보기 위함이었다. 1차 여론조사가 오차범위 안에 있긴 하지만, 3차 여론조사는 (찬반 응답 차이가) 오차범위를 벗어났다”며 “담당 PD로서는 1차에서 3차로(교과서 국정화 반대 응답이 더 높은 방향으로) 바뀌었고, 그래픽 나오는 시간이 짧아서 충분히 멘트를 칠 수 없었다고 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여당 추천 함귀용 위원은 ‘프로그램 제작 의도’를 재차 물으면서, 제작진이 방향을 정해 놓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함귀용 위원은 “의견진술하러 나온 분과 역사교과서 논쟁을 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현행 교과서에서 수많은 오류가 발견되고 있지만 고쳐진 부분은 ‘남침’ 한 부분이라는 점, 여전히 6·25 기술에서 편향된 시각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며 <부산 NOW>가 국정교과서 논란에서 중요한 부분을 짚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함귀용 위원은 “저도 개인적으로 국가가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찬성하지 않지만 검인정 교과서에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면 어떤 것이 문제이고 왜 이런 논란이 야기됐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송 말미에 ‘역사교과서에 대한 국정화 반대 여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반대하는 내용들만 쭉 한다. 방송 초반에는 찬반 의견이 양분되다 많은 사람들이 국정화 반대 발표하고 그러니까 (프로그램 방향이) 국정화 반대 쪽으로 갔다. 제작진의 의도가 보이는 것 아닌가 한다. 왜 결론을 그렇게 낸 것인가. 프로그램 말미에 주관적 판단을 너무 많이 녹여낸 것이 아닌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양승동 국장은 “(방송 말미에) 아베 역사관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단체 쪽의 입장과 UN총회 보고서를 인용했는데, 담당 PD는 그런 것들(자료들)의 객관성을 본인이 신뢰할 만하다고 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지만 함귀용 위원은 “제작의도에는 맞았는지 모르지만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 논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여당 추천 고대석 위원도 “결론을 정해 놓고 프로그램을 만든 건 아니라고 했으나 제가 보기에도 굉장히 결론이 오도되어 있다고 본다”며 “국정교과서로는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없다는 고등학교 교사 인터뷰가 나오는데, 또 다른 생각을 가진 교사도 있을 텐데 (국정교과서 반대가 더 높은) 여론조사 결과에, 국정화 반대 쪽 교사 인터뷰, 진행자 멘트까지 해서 완전히 기울어버리는 것이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MBC의 일방적 보도도 ‘문제없다’더니… 이 보도가 법정제재?

야당 추천 위원들은 <부산 NOW>에서 내용상의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박신서 위원은 “프로그램 기획 의도가 부산 지역에 있었던 국정교과서 관련 사태를, 전체적인 여론조사 추이를 가지고 시간 순으로 나열한 것이기 때문에 ‘여론의 변화 추이’에 초점을 맞췄다고 본다. 그 사이 사이 들어간 찬반 내용은 어느 정도 균형 있게 보도돼, 내용 상에서는 저는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낙인 위원은 “새누리당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고 한 것, 대통령도 요즘 아이들이 ‘북침’이라고 배우고 있다고 한 것 등을 검증한 것”이라며 “일본 시민단체의 입장과 UN 보고서를 언급하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반대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정부의 입장과 괴리가 있다는 ‘설명’이지, 아주 주관적인 건 아니라고 본다. 저도 박신서 위원처럼 내용엔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두 위원은 모두 여론조사 결과를 고지할 때 오차범위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시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고 봤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행정지도인 ‘의견제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신서 위원은 “곧 본격적으로 선거철이 다가오지 않나. (저희도) 여론조사 관련해서 상당 부분 주의를 기울여서 심의하고 있는 만큼, (여론조사 결과 방송 시) 필수 고지사항에 더 신경 써서 방송을 하셔야 할 것 같다”고 당부했다.

▲ 방통심의위 여당 추천 위원들은 국정교과서에 대한 높은 반대 여론을 보여주는 내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있었다는 점을 주로 지적했다. 사진은 <부산 NOW> 방송분 중 일부

그러나 여당위원들은 <부산 NOW>가 ‘불공정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함귀용 위원은 “국정교과서에 대한 입장에 따라 (프로그램을 보는 시각도) 다를 수 있다고 보지만 저는 공정치 못했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램 말미에 주관적 판단이 녹아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멘트들이 계속 나온다”며 “현행 교과서에 잘못된 부분이 많은데 검인정 교과서가 마치 균형된 교과서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 팩트를 나열한 것은 굉장히 공정치 못했다”고 강조했다. 함귀용 위원은 방송사 재허가 시 감점 요인이 되는 법정제재 주의(벌점 1점) 의견을 냈다.

김성묵 소위원장은 “방송매체는 10분이든 1시간이든 (어떤 의견을) 이해집단들이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의견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KBS 박권상 사장 시절에 ‘기계적 중립’이라는 원칙이 있었다”며 “공정성 결여 문제로 민원이 들어왔고 일부 시인하지 않았나. (징계 수위를) 고민 많이 했는데 KBS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부분에는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하지 않나 하는 채찍질에서 ‘주의’로 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고대석 위원도 ‘공정성 위반’을 근거로 주의 의견을 냈다.

여당위원들이 중징계를 포기하지 않자 장낙인 위원은 이번 심의 결과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강하게 문제제기했다. 장낙인 위원은 “(여당위원들은) MBC의 박원순 아들 병역 보도도 일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없음’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 보도 가지고 법정제재하시겠다는 거냐”라며 “TV조선, 채널A 등 패널부터 공정하지 않은 프로에서는 9조 2항(공정성) 검증했나. 다 행정지도로 넘어가고 있다. 이렇게 심의를 하시면…”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방통심의위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 씨의 병역 보도를 하면서 의혹제기한 쪽의 주장만을 실은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 대해 낮은 수준의 징계인 행정지도 ‘의견제시’를 내렸다. 당초 여당위원들은 “이 정도 보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아예 ‘문제없음’ 의견을 냈으나, 야당위원들의 반발로 ‘의견제시’로 합의한 바 있다. (▷ 관련기사 :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기피 의혹 MBC 보도…함귀용 심의위원 “이 정도 보도도 못하나” / MBC “박원순 아들, 귀국해 MRI 다시 안 찍는 것 이해 안 돼”)

장낙인 위원은 “이 방송(<부산 NOW>)을 공정하지 않다고 법정제재한다면 심의를 더 이상 할 수가 없겠다”며 퇴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신서 위원도 “그럼 저도 이 회의 참석 안 하겠다”며서 퇴장했다. 결국 주의 3인(고대석·김성묵·함귀용), 의견제시 2인(박신서·장낙인)으로 의견이 나뉘어 전체회의에 회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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