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두고 정부와 기자들 사이에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경향신문 국제부 이재국 기자가 후배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기자협회보>에 기고했다.

이 기자는 이 글에서 ‘기자실 문제’와 관련해 “기자 전체를 적대시하는 정부의 태도에 분노를 느낀다”며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독소조항을 삭제한 총리훈령 등에 대해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기자단의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부 아니면 전무식으로 행동하는 게 옳은가’

▲ 경향신문 이재국 기자. ⓒ기자협회보
이 기자는 먼저 정부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방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기본적으로 ‘기사송고실 개혁’을 자신의 임기 내 마무리할 ‘치적’으로 만들려는 듯 밀어붙인 노무현 정부의 태도는 분명 잘못됐다”고 지적한 그는 “산적한 언론현안 중 언론 스스로, 기자들 스스로 풀어가야 할 비본질적인 문제로 언론탄압이라는 논란만 자초한 것은 대통령을 비롯해 책임자들이 사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참여정부 출범이후 시도한 브리핑제 도입이 일선 현장에선 ‘맹탕 브리핑’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온 것을 간과한 채 기자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감정적 언사를 해온 것이 결과적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기자는 기자단의 태도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지난 5월 내놓았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에서 일부 독소조항을 삭제하는 등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지난 9월 14일 내놓은 방안에 대해 덮어놓고 ‘언론자유탄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선 수긍하기 힘들다”면서 “관료들의 고질적인 기자기피와 취재거부 행태가 현 정권들어 더욱 심해진 측면이 있지만 그것은 부처별 기사송고실 유지의 이유가 아니라 기자로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극복해야할 숙명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기자실 문제를 다루는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이 기자는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관련 기사들을 검색하면서 언론탄압이라 주장하는 기자들의 목소리와는 다른 의견을 공평하게 소개해주는 정정당당 보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합리적 중재안을 내놓은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의견조차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는 태도, 유불리에 따라 언론학자들의 발언을 취사선택하는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새로운 취재문화 만들어가야

▲ 한겨레 10월15일자 7면.
이 기자는 이번 기회에 출입처, 브리핑실 위주의 취재와 발상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새 취재문화를 만들어갈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건설교통부 출입기자는 있으되 건설비리 전문기자가 없고,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는 있으되 중동전문·한반도전문기자가 없는 현실 아니냐”면서 “이제는 뉴스의 길목을 지키는 속보가 아니라 언론본연의 환경감시 기능을 다하는 심층보도가 신문의 미래”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우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때”라고 했던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말을 마지막으로 장문의 편지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이재국 기자가 <기자협회보>에 기고한 편지 전문이다.

독립언론 경향신문의 사랑하는 후배 R,

날이 제법 차구나. 며칠 전 서울에 내린 첫 서리가 지난해보다 24일이나 빨리 왔다고 하더구나. 이맘때면 그간 하지 못한 일들, 하지 않았어야 했던 일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늘 시간을 붙들고 싶어지지만 자연의 이치는 왜 그리도 야박한지...

어쩌면 신뢰받지 못하는 언론, 브레이크 없는 신문구독률 하락, 갈수록 위상이 추락하는 기존 미디어 기자들의 위기 속에 우리 가슴엔 1년 내내 서리가 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부의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둘러싼 갈등의 와중에 출입처 기자단 간사로 ‘투쟁’의 최전선에 있는 네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은 더더욱 깊어만 간다.

우선 정말 미안하다는 말부터 전해야겠다. 이번 일로 일부 후배들이 느끼는 비감함과 분노의 상당부분은 우리 선배기자들의 책임으로 돌아올 것들이라고 보기 때문이야. 일부 후배 기자들의 투쟁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싸늘한 시선도 따지고 보면 과거 국민의 소리를 듣기보다 ‘언론권력’ ‘기자권력’이라 할 정도로 기득권에 치우쳐있었던, 나를 포함한 선배들의 업보가 아닌가 싶다.

많이 의아스럽고 궁금할 게다. 왜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이렇게 공개편지를 보내는지. 알겠지만 지난주 얼굴을 마주한, 짧은 대화에서 느낀 답답함이 계기였다. 더 이상 기사송고실 문제 등을 둘러싼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엔 동의하면서도 해법에 대한 시각 차이는 크더구나. 순간이긴 했지만 서로에게 ‘벽’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고...

사실 요즘 잠을 잘 이루지 못했어.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 뒤척여야했지. 정치권에 대해선, 노사에 대해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생의 해법을 찾으라고 하면서 정작 소통의 통로여야 할 우리는 분노와 적개심으로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보았고.

너도 알다시피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월 “기자실에서 죽치고 앉아 담합하는” 등의 발언과 함께 국내외 기자실·기사송고실 실태조사를 지시한 시점을 포함해 지난 1년간 나는 미국 연수중이었다. 지난 8월초 고생하던 후배들 곁으로 돌아와 기자협회 지회장까지 맡은 터라 더더욱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파악하고 합리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어.

후배들은 잘 모르겠지만 4년여 전 한국가톨릭언론협의회 주최로 열린 ‘새로운 취재시스템 모색’ 관련 토론회에서 내가 발제를 한 적이 있어. 당시 동료기자 50명을 대상으로 기자실 문제, 취재방식의 변화 문제 등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고 그 결과를 발표하며 나름의 제언을 했던터라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갖고 있기도 해. 내 시각이나 지적에 동의하기 힘들거나 언짢은 부분도 있겠지만 끝까지 읽어주었으면 해. 이런 사안일수록 냉철하고 침착하게 의견이 다른 상대의 얘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법 찾자고 이야기하는 우리가
‘전부 아니면 전무’식 행동 하는 건 아닌지...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눠 얘기를 해볼까 해. 첫째는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한 판단의 영역이다. 둘째 정부의 조치에 대한 우리 언론과 기자들의 대응에 대한 나름의 견해야. 마지막으로 한때 미디어담당 기자였던 내겐 가장 충격적으로 와 닿았고 너무도 부끄러운, 경향신문을 포함한 언론들의 관련 보도행태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우선 정부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방안에 대한 입장일세. 난 기본적으로 ‘기사송고실 개혁’을 자신의 임기 내 마무리할 ‘치적’으로 만들려는 듯 밀어붙인 노무현 정부의 태도는 분명 잘못됐다고 생각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자집단을 기득권집단으로 몰아붙이고 ‘기사담합’ ‘기사 획일화’ 등에 대해 끼어들어 기자 전체를 적대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에 분노마저 느끼네.

결과적으로 산적한 언론현안 중 언론 스스로, 기자들 스스로 풀어가야 할 비본질적인 문제로 언론탄압이라는 논란만 자초한 것은 대통령을 비롯해 책임자들이 사과해야한다고 봐. 언론의 공공성과 다양성 강화, 신문시장의 실질적인 정상화 등을 위한 진정한 언론개혁에도 찬물을 끼얹은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어. 참여정부 출범이후 시도한 브리핑제 도입이 일선 현장에선 ‘맹탕 브리핑’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온 것을 간과한 채 기자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감정적 언사를 해온 것이 결과적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배경이라는 점도 알아야겠지.

그러나 정부가 지난 5월 내놓았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에서 일부 독소조항을 삭제하는 등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지난 9월 14일 내놓은 방안에 대해 덮어놓고 ‘언론자유탄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선 수긍하기 힘드네.

정부가 치적 세우려는 듯 몰아붙여 언론탑압 논란만 확대
독소조항 삭제 해 내놓은 9.14방안까지 덮어놓고 ‘언론자유탄압’ 주장은 수긍 못해

분명 초기 방안은 노대통령이 지난 1월 “기자실 때문에 기사가 획일화되고 있다”며 기사송고실에 대한 실태조사를 지시한데 따른 강압적 결과물이었어. 이 안에는 공무원들이 취재에 응할 때 홍보담당 부서를 거치도록 하고 공무원 면담장소를 접견실 등으로 한정하는 등 취재자유를 침해하는 조항이 많았어. 출입증의 전자칩 부착과 일선 경찰서 기사송고실 폐지, 정부가 엠바고를 설정하고 엠바고 파기에 따른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취재통제 수단이 될 수 있었지. 정보공개와 내부고발자 보호 등은 선언적 차원으로 그치고 기자들로선 취재 제한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조항들이 다수를 차지한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고 할 수 있어.

그러나 언론계의 문제제기와 시민사회단체의 중재안 등을 수용해 최종안에는 이들 조항이 모두 빠진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기자협회 취재환경개선특위 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는 최영재 한림대 교수가 “전반적으로 언론계의 요구와 원래 의도했던 취지가 합리적으로 접합점을 찾은 것 같다”라고 한 평가에 나 역시 동의하네.

나는 기자협회와 언론노조,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 48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지난 9월 11일 제시한 중재안이 타협을 통한 해법 모색을 위해 가장 합리적 방안이라고 여기고 있어.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의 통합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시행 후 분기별 평가를 통해 개선·보완책을 마련하자는 제안도 정부와 일부 기자들의 극한 대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제기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아닐까.

사실상 유일한 쟁점이라 할 통합브리핑룸에 대해 “각 부처에 흩어진 기자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보도자료를 받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홍보성 기사만 쓰라는 의도”라며 언론탄압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보네. 물론 관료들의 고질적인 기자기피와 취재거부 행태가 현 정권들어 더욱 심해진 측면이 있지만 그것은 부처별 기사송고실 유지의 이유가 아니라 기자로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극복해야할 숙명의 과제라고 보네. 브리핑의 내실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 여야 정치권 모두가 노력해야 할 정보공개법 강화와 내부고발자 보호를 위한 부패방지법 개정 등이 절실함은 물론이고.

공무원의 고질적 기자기피와 취재거부는 기자가 극복해야 할 숙명,
기사송고실 유지의 이유 아니다

두 번째로 이번 사안에 대한 우리 언론과 기자들의 대응에 대해 짚고 넘어갈께. 사실 국민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던 사안을 둘러싼 갈등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닫게 된데는 정부와 기자사회 모두 감정적 대응을 한 것이 큰 이유라고 봐.

정부가 지난 5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을 내놓은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이번 사안에 대한 대다수 언론의 성격 규정은 ‘국민의 알 권리 침해’ ‘기자실 대못질’이라고 할 수 있어. 정권의 불순한 의도, 평소 기존 언론에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던 ‘기자같지 않은 2류기자’ 출신 국정홍보처장·청와대홍보기획비서관 등을 앞세운 ‘일방적 밀어붙이기’라는 시각 또한 한결 같은 것 같네.

그 같은 틀 짓기는 결과적으로 합리적 중재안에 대해서조차 외면하게 만들고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한층 ‘적대적 불신’상태로 가도록 조장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 한번 고민해보자. 다양한 신생 미디어의 등장, 더 이상 전유될 수 없는 ‘기자’와 ‘기자송고실’의 환경변화를 인정하기보다 ‘기자고시’ 출신이라 여기는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입장에서만 사안을 재단한 것은 아닐까.

지난 1월이래 있었던 일들과 관련 자료들을 내 나름대로 조사, 분석하면서 기협 집행부와 취재환경개선특위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판단이 들었어. 대통령과의 TV토론회 참석 문제 때 간다 못 간다 하며 번복을 일삼았던 일, 정부와 4개 언론단체장의 잠정 합의를 일방적으로 백지화하고 전면 재논의를 요구한 것, 시민사회단체의 중재안에 대해서조차 고민하기보다 무조건 거부했던 일 등은 결국 고립과 외골수 투쟁을 자초한 꼴이 되었어.

5월 광주의 피를 발판으로 정권을 잡아 언론사 통폐합과 언론인 대량해직 등 언론자유를 유린했던 5공 정권과 지금의 상황을 동일시한 기협 특위위원장의 발언이 과연 전체 기자사회,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보나.

같은 맥락에서 “정부에 대한 취재 자체, 접근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조치는 취재한 사실의 보도에 개입하려했던 군사정권 시절보다 질적으로 더 나쁜 언론탄압”이라고 한 지난 8월 전국 편집국장·보도국장들의 성명과 발상에도 비판의 여지가 많다고 보네. 보도의 최고 책임자들이 그 같은 성격규정을 해놓은 상태에서 어떻게 일선 기자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합리적 방안 도출이 가능하겠는가.

신생 미디어의 등장, 더 이상 전유될 수 없는 ‘기자’와 ‘기자송고실’의 환경변화
‘기자고시’ 출신 입장에서만 사안을 재단하는 것은 아닌지...

자연스레 이번 사안과 관련한 우리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한 반성과 문제제기로 이어갈까 하네. 솔직히 지난 7월말까지 미국에서 연수하는 동안 우리 신문이나 방송의 인터넷 뉴스를 보고서는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안별로 수용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알 수가 없었네. 오로지 ‘언론자유 침해’ ‘취재통제’ 등의 구호성 제목과 함께 언론과 기자들의 반발만 보도되고 있더군. 최근 며칠간 독립언론을 자부하고 있는 경향신문을 비롯한 신문들이 보도해온 것들을 정리해보면서 지면을 짓누르고 있는 ‘핏발’을 확인했네.

감정의 과잉, 일방적인 목소리의 전달과 반대 목소리의 실종. 내가 잘못 본 것인가. 나는 우리 언론, 특히 신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요인 중 하나는 자의적 이중잣대 적용, 왜곡보도 등이라고 보네.

의견과 사실의 분리. 보도의 제1원칙이지 않은가. 우리 신문들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 관련 보도에 이 같은 원칙이 지켜졌다고 볼 수 있을까. 특히 이번 사안에 있어 언론은, 신문사는, 기자는 분명 이해관계자였어. 언론이, 기자가 그런 위치에 있다면 더더욱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독자의 판단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의견과 사실의 분리. 보도의 제 1 원칙
신문들의 취재지원선진화 관련 보도에서는 지켜졌는지...

관련 기사들을 검색하면서 언론탄압이라 주장하는 기자들의 목소리와는 다른 의견을 공평하게 소개해주는 정정당당 보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네. 합리적 중재안을 내놓은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의견조차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는 태도, 유불리에 따라 언론학자들의 발언을 취사선택하는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 평소 신문법 등 언론개혁에 딴지를 걸던 심재철 고려대 교수가 지난 9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 문제가 과연 언론탄압의 문제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개인적으로 기자들의 상주 공간배치의 문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지만 언론은 철저히 무시했어.

편집국장이, 특정 기자가 어떤 사안에 대한 시각을 갖고 있다면 칼럼 등을 통해 정정당당하게 밝히고 대신 관련 보도는 더더욱 엄정하고 냉철하게 해야 하지 않았을까. 지난 4월 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경향신문 집중분석 토론회에서 나온 “탄탄한 기획과 더불어 기득권보다는 서민, 시민의 입장에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했던 진단이 과연 이번 사안에 대한 보도에서도 유효할 수 있을까.

대다수 신문들의 관련 보도행태가 바로 한국 언론의 실상과 수준, 언론개혁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다는 어느 학자의 지적에 나는 공감하고 있어.

대통령 사과... 브리핑위주 취재발상 벗어나야

미안하다.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편지가 많이 길어졌구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내 견해를 전하는 것으로 마무리할게. 대통령이 무엇보다 일부 기자들의 문제를 침소봉대해 기자 전체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히고 왜곡된 기자관을 표출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

그리고 기자들은 이제 기사송고실 사수투쟁을 마무리하고 출입처가 아닌, 현장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진실보도와 성역 없는 보도에 전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여야 정치권은 진정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자유를 걱정한다면 이번 사안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기보다 올 정기국회에서 정보공개법과 내부고발자 보호를 위한 부패방지법을 실질적으로 개정하는게 합당한 처사가 아닐까. 기자들 역시 국회가 본연의 입법기능을 하도록 압박하는 서명운동 등도 필요 할게고.

이번 기회에 아예 출입처, 브리핑실 위주의 취재와 발상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새 취재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봐. 건설교통부 출입기자는 있으되 건설비리 전문기자가 없고,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는 있으되 중동전문·한반도전문기자가 없는 현실 아닌가. 이제는 뉴스의 길목을 지키는 속보가 아니라 언론본연의 환경감시 기능을 다하는 심층보도가 신문의 미래가 아닐까.

우리 언론은 지난 19일 “부처님 법대로 살자”며 불교계 혁신운동을 촉발했던 봉암사 결사 60주년 행사를 비중 있게 보도했어. 경향신문은 1면 톱기사로 ‘위난의 불교 깨우는 죽비소리’라는 제목으로 다뤘지. “우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때”라고 했던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어쭙잖은 글을 마무리한다.

못난 선배기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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