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을 관전하는 언론들은 종종 실소가 쏟아지는 상황에 대해 ‘봉숭아 학당’ 같다는 표현으로 정치를 비난하곤 한다. 1991년에 처음 방송되어 2000년대에 다시 부활했던 이 코미디 코너는 맹구라는 바보 캐릭터를 중심으로 교실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다룬 바가 있다. 하지만 언론들의 이러한 비유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최소한 ‘봉숭아 학당’은 국민들에게 큰 웃음과 행복감을 주기라도 했기 때문이며, 더 큰 이유는 언론 역시 봉숭아 학당 언저리에서 코미디 보다 심한 조소를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에 있어서 언론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바로 환경감시기능이다. 환경감시 기능은 교통 상황이나 날씨, 물가 정보 등의 우리 삶에 도움을 주는 주변의 정보들을 알려주는 도구적 기능과 정치 권력이나 경제 권력이 어떤 부패를 저지르는지를 감시하는 경계적 기능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권력을 감시하는 경계적 기능에 대해 감시견(watch dog) 기능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즉 권력이 시민들을 기만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언론이 이를 감시하고 큰 소리로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한국의 언론은 감시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답은 이미 독일 언론 타쯔(Taz)가 2014년 2월 기사에서 내린 바가 있다. 한국 언론이 ‘대통령 무릎에서 노는 애완견’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비유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한국의 언론은 단순히 공주님을 보며 꼬리를 흔드는 애완견이 아니라, 부정한 정치·경제 권력을 지키고 시민을 향해 짖는 권력의 수호견(guard dog)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11월 14일에는 현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고시 강행을 비롯해 다양한 실정을 비판하는 민중대회가 열린 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언론은 대회의 성격이나 그 대회에서 나오는 주장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교통체증이나 폭력시위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한 바가 있다. 심지어 공영방송에서는 아침 8시에 입실을 해야 하는 시험도 오후 1시에 시작하는 집회에 영향을 받았다는 기사가 나왔고, 견인 실수로 부서진 경찰 버스도 시위대의 공격으로 파손된 것인 양 보도되었다. 물론 모든 언론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은 시위의 폭력성, 일반 시민들의 피해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했다.

▲ 11월 14일자 KBS <뉴스9> 보도

우리는 이러한 언론을 앞선 권위주의 정부에서 확인한 바가 있다. 광주의 참혹한 실상은 외신을 통해서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고, 9시 시보가 땡하고 울리면 29만 원짜리 대통령의 의미 없는 행보가 방송뉴스의 첫 아이템을 장식했다. 당시 언론은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부정한 정부의 배려를 받아 사세를 확장해 나갔고, 이러한 기반들은 결국 지금의 언론 재벌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권력을 지키는 수호견에게 돌아간 먹이는 생각보다 컸던 셈이다. 그 이권은 켜켜이 쌓여서 법까지 바꿔 종편을 만들고, 위법적이고 인신공격과 색깔론이 난무하는 방송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여론 지형도는 더욱 우편향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흐르면서, 언론의 시계도 거꾸로 흐르고 있다. 그런데 7, 80년대와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언론인들의 자각에 있다. 당시 언론인들은 해고를 불사해가며 언론자유를 수호하고자 투쟁하였지만, 지금 언론인은 대통령을 직접 ‘알현’하고 포옹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어떻게든 다음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받아보려고 ‘공주님’ 언저리를 배회하는 언론인도 한 둘이 아니다. 이러니 애완견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정당한 민주적 절차와 소통을 요구하는 국민들을 향해 맹렬히 짖어대는 권력의 수호견은 또 얼마나 많은가? 어떤 의미에서 7, 80년대보다 언론인의 자질은 더 퇴보한 듯 보인다.

언론은 시민들로부터, 소수자들로부터 ‘기레기’ 소리를 들어선 안된다. 권력을 가진 자들, 그리고 이를 남용하는 자들로부터 ‘개새끼’ 소리를 들어야 한다. 부패한 권력의 폐부를 드러내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맹렬한 감시견, 맹구(猛狗)가 되어야 한다. 우리 언론이 국민을 양떼처럼 몰아 전체주의적으로 단합시키는 수호견 역할이 아니라, 시민들의 권리와 민주적 다원성을 지키는 감시견 역할을 수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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