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나의 것이 되었다.' 어젯밤, 이 열 글자의 말을 일기장에 적었다. 태생부터 가난했던 아버지는 가난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있었다. 112만의 농촌가구와 마찬가지로 우리 집 역시 빚으로 삶을 이어온 처지였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나에게 체감하지 못하도록 했다. 20년 전 귀농해 축산업을 계속 해오던 아버지는, 몇 해 전 한우 위탁 관련 사업으로 민간 자본으로부터 큰 투자를 따냈다. 송아지를 살 자본금이 부족한 영세 농가들과 함께하는데 뜻을 두고 시작한 사업이었다.

모든 게 잘 풀려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소 값이 폭락했고, 환율 폭등과 국제곡물 값 상승으로 인해 사료 가격은 치솟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엔 소 이십여 마리와 수억 원대의 빚이 남았고, 아버지는 더 이상 나에게 가난을 숨기지 못했다. 강한 비바람에 떨어진 자귀나무 잎이 창문을 때리던 밤, 난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가난을 못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핫바지'. 정부가 농민들의 삶을 빼앗아 온 유구한 역사 앞에서 아버지는 '핫바지'란 표현을 썼다. 그들에게 우리는 늘 핫바지였다고. 나라에게, 거대한 자본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농민들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고소득 황금 작물을 안정적으로 재배하는 데 성공한 농민들에게, 몇 만 평에 달하는 땅과 크고 멋진 농장을 갖춘 농민들에게 정부는 '신지식농업인'이란 호칭을 붙여주고 그들처럼 되라 했다. 그들처럼 되는 것도, 알아서해야 했다.

나는 국립기관 산하의 농업대학에 다니는데, 가끔 졸업한 선배들의 특강을 들을 때가 있었다. 양계를 하면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든 이야기,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가공품을 팔면서 체험농장까지 멋지게 갖춰놓은 이야기 등이 대부분이었다. 흔히 말하는 신지식농업인의 모범으로 꼽을 만한 사례들이었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훌륭했고, 성공하기까지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농업이 알고 보면 비전이 무궁무진한 산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내가 꿈꾸는 미래가 사실은 공중 위의 누각이라는 것을. 내 미래의 누각을 받쳐줄 기둥이 나에겐 없었다. 돈 말이다.

농업을 한다는 건, 작물이든 축산이든 생산설비를 갖추고 생산된 결과물을 팔아 수입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소한 작물을 키울 밭과 논은 있어야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비닐하우스나 농기계도 필요하다. 가축을 키운다면 축사가 있어야 하고, 키워서 팔 가축과 가축에게 먹일 사료가 있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이 맨 땅에서 솟아나진 않는다.

▲ 19일 충남 홍성군 갈산면 한 농촌마을에서 농민 최종각(64)씨가 최근 내린 비가 하천으로 흘러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논두렁을 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연장에 선 선배들의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에게 물려받을 땅이나 농장 없이 그들처럼 되려면, 초기 자본금이 아무리 못해도 수억 원은 필요했다. 빚을 내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었다. 빚을 냈더라도 성공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빚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성공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생계유지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리고 대다수의 농민이 살고 있는 세상이었다. 땅도, 초기자본금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 농촌의 청년들이 기댈만한 곳은 정말 아무데도 없을까. 지금 정부의 지원정책으로는 '후계농업경영인'이란 제도가 있다. 농지 매입이나 농업 시설물을 지을 때 쓸 수 있는 자금을 저금리로 10년간 대출해주는 제도인데, 최대 2억까지 가능하다. 농지와 시설물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고 고정적인 수입이 발생하는 부모의 농업기반에 보태는 것이라면 이 제도는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기반이 변변찮은 청년이 2억을 대출해 10년 안에 갚으려면, 이자를 제외하고서라도 빚 갚는 데에만 1년에 꼬박 2,000만원을 들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투자만 해놓으면 농작물이 저절로 쑥쑥 자랄까? 시설 유지비, 종묘 및 비료 구입비 등을 비롯해 가장 중요한 생활비까지 모두 충당하려면 웬만한 수입으론 어림도 없다.

성공,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성공하면 되잖아. 네가 도전정신을 발휘해 더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어,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들인 자금과 노력만큼 생산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제 값에 판매가 가능하다면 성공이란 것, 그리 어렵진 않겠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농축산물은 당년의 기후나 구제역‧조류독감 등의 가축질병, 혹은 FTA와 같은 정책이 가져오는 시장상황의 변화에 따라 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된다.

몇 해 전엔 금추라 불릴 만큼 가격이 폭등했던 배추가 몇 년 뒤엔 값이 떨어져 수확도 못한 채 밭을 통째로 갈아엎는 게 현실이다. 큰 태풍이라도 몰아닥치는 해엔 열심히 키운 사과가 바람에 떨어져 땅에 뒹군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한 번 돌면, 수백만 마리의 짐승들은 산 채로 땅에 묻힌다. 그뿐인가. 정부는 미국, 중국 등의 나라들과의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값싼 수입 농축산물을 앞장서서 들여온다.

이 모든 상황을 농민들이 예측하고 제어할 수 있는가? 자연재해를 제어할 수 있는 인간이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이 하는 것, 농업 정책을 만들고 수립하는 것의 주체에 농민이 포함되는가? 부채를 안고 살아가는 112만의 농촌가구가 그에 포함이 되느냐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는 답을 이미 우리는 무수히 확인해왔다.

올해 벼에 큰 풍년이 들었음에도, 정부는 밥상용 쌀을 미국에서 수입해온다고 한다. 팔리지 않은 쌀은 여전히 창고에 가득 쌓여있다. 그 덕에 쌀값은 바닥을 쳤고, 참다못한 농민들은 거리로 나와 한 트럭의 쌀을 모두 바닥에 내던졌다. 그뿐인가. 전라남도 영광군에서는 농민들이 정부의 수입정책에 항의하며 수확을 앞둔 논을 갈아엎었다고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꼬박 키워온 소중한 나락을, 바라만 봐도 배가 불렀을 황금빛 논을 갈아엎을 만큼 농민들은 이 나라에서 내몰렸다.

그리고 참 우습게도, 며칠 전 정부는 수입맥주의 할인 판매를 제한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맥주는 보리와 같은 곡류로 만든 가공식품이다. 정부는 값싼 쌀과 각종 농축산물의 대량수입에 대한 농민들의 한 맺힌 저항은 철저히 외면해왔으면서, 수입맥주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국내 맥주 업체의 주장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그들을 위한 정책을 새로 만든다고 한다. 이 정책과 관련한 기사에 달린 ‘수입맥주 과다할인 제동...불공정 게임 룰을 손본다’ 라는 제목은 얼핏 보면 참으로 정의롭다. 하지만 정말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는 건 누구인가.

이토록 엄혹한 현실 속에서, 농민 개개인에게 경쟁력을 키우라는 말이 가당키나 할까. 구덩이에 빠트려놓고 알아서 기어 나오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도 성공이라는 것,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변변찮은 농촌 청년인 나의 처지에서 바라보면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14년도 기준 39세 이하 농장경영주의 호당 농가부채는 8,778만원으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부채 금액이 압도적으로 높다. 1억에 가까운 빚을 진 채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럼에도 비빌 언덕은 융자뿐이기에, 난 아마 몇 년 뒤 손에 쥔 대출신청서를 농협 창구에 내밀 고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어머니가 이야기하길, 경매로 넘어갔던 우리 집 논이 싸게 팔렸다고 한다. 판 대금은 고스란히 축협(축산업협동조합)에 진 빚을 갚는 데 들어갔다. 올해 마지막으로 수확한 쌀 맛은 어떨까. 빤히 보이는 미래보다는 그쪽을 상상하는 편이 좀 더 나을 성 싶다.

백남기와 우리의 흰 겨울

그리고 어쩌면 나와 같은 상상을 하고 있을, 올해 거둔 쌀이 마지막 수확이 될 지도 모르는 이가 한 명 더 있다.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벼와 우리밀농사를 짓던, 현재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70세 농민 백남기 씨다.

백남기 씨는 지난 14일, 전국에서 모인 농민들과 함께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에 참가해 한‧중 FTA와 밥상용 쌀 수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길바닥에 쌀을 내버리던, 수확을 앞둔 논을 고스란히 갈아엎던 그 참혹한 심정으로 말이다. 살게 해달라는 외침에 정부는 높고 견고한 차벽과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로 화답했다. 그리고 그 답은 30년 가까이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온 백남기 씨가 매번 맞닥뜨렸던 절박한 현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백남기 씨는 그 앞에 마주섰고, 강한 압력의 물대포는 그의 몸에 곧바로 내리꽂혔다.

그는 쓰러진 채 자꾸만 피를 흘렸고, 우리는 그를 보며 정부가 농민을 대해온 한결같은 태도가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금 절절히 확인해야 했다.

올 겨울, 그의 너른 밀밭엔 푸른 싹이 돋아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의 몸과 거리를 뒤덮었던 하얀 최루액처럼 속절없이 흰 눈만 쌓일까. 냉혹하게 얼어가는 농업의 현실 속에서, 다가올 우리의 겨울은 또 얼마나 추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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