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이다. 보수언론이 일제히 IS(이슬람국가)를 추종하는 인도네시아 불법체류자가 체포됐다고 보도한 것에 대한 얘기다. ‘알누스라 전선’을 지지해서 체포됐다는 인도네시아 A씨의 소식은 국내 IS동조자가 10명이 넘는다는 국정원의 보고와 묶여 우리의 삶을 테러가 위협하고 있다는 맥락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 A씨를 IS추종자로 보도한 언론의 논리는 이렇다. 알누스라 전선은 시리아 내의 알카에다 연계 조직이다, IS의 지도자는 알누스라 전선 출신이다, A씨는 알누스라 전선을 추종했다, 따라서 A씨는 IS에 동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시리아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이라면 이 논리의 허약성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시리아에서는 소위 ‘네 갈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알 아사드 정권의 정부군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소위 ‘온건 반군’들, 알카에다 계열의 알누스라 전선과 IS가 서로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이 판국에 온건 반군들이 급진화 돼 IS나 알누스라 전선에 흡수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공습에 참여한 러시아가 아사드 정권을 제외한 모든 세력을 공격하는 바람에 미국의 ‘대리전’ 전략은 일정한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알누스라 전선과 IS의 관계에 국한해서 살펴보면, 이들이 수니파 급진무장단체라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IS가 알카에다로부터 분리독립하고 테러리즘이라는 바운더리 내에서 서로 경쟁관계를 구축한 이후 이들은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따라서 좀 더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A씨가 알누스라 전선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이를 IS추종자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

물론 A씨가 테러리즘 단체를 지지한다는 근본은 변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반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A씨가 IS추종자냐 아니냐를 따져야 하는 이유는 그가 테러리즘을 지지하는지 여부를 구분하기 위함이 아니다. 파리에서 IS에 의한 테러가 벌어진 상황에서 보수언론과 정부 여당이 상황을 어떻게 몰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A씨에 걸린 혐의를 보면 상당히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직감을 가질 수 있다. 수사당국이 A씨에 제기한 혐의는 출입국관리법 위반, 사문서위조, 총포도검 및 화약류관리법 위반 이다. 앞의 두 가지 혐의는 불법체류를 하고 있는 탓에 제기된 것이고 뒤의 혐의는 언론 보도로 미루어볼 때 ‘단도’와 BB탄을 사용하는 M16 모형 소총을 소지했기 때문에 제기된 걸로 보인다. 테러를 모의했거나 기획한 혐의는 없다. 테러 단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체포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한다면 국가보안법의 논리를 반복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겨우 이런 사건을 IS테러에 끼워맞춰 언론플레이를 한 수사당국은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도대체 ‘IS추종자는 아니지만 테러리즘을 지지하는 위험한 인물이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김형욱 외사정보과 방첩반장이 증거품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이날 경찰청은 국내 불법체류 중인 인도네시아인 A(32)씨를 사문서위조 및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충남 자택에서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최근 수개월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테러단체 '알 누스라'를 지지하는 활동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에 국내에 IS 추종자가 10여명 존재한다는 것 이외에도 시리아 난민들이 올해 들어 200명이나 항공편을 통해 들어왔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은 이들 중 공식 체류허가를 받은 사람이 135명이고 나머지는 외국인보호소나 공항에서 체류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고도 보고했다. 앞의 인도네시아 A씨의 사례와 묶으면 국정원이 조성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 명확해진다.

19일 보수언론은 일제히 테러 관련 예산이나 테러방지법과 관련한 입장을 냈다. 조선일보는 <우리 눈앞에 닥친 테러 위협, 국가적 대응 서둘러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중앙일보는 <테러와 가뭄에 대비한 예산, 적극 편성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동아일보는 <IS 추종자 활개 치는데도 테러방지법 뭉갤 참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지면에 배치한 것이다. 내용을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제목에서 이미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명백히 드러나는 글들이다.

정부 여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테러 대응 예산과 테러방지법의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민중총궐기’ 등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파리에서 테러를 일으킨 IS 조직원과 국내의 시위 참여자를 등치시킨 것으로, 집권 여당의 대표이자 차기 유력 대권주자가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말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야는 IS 등 국제적인 테러조직에 의한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공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테러방지법이 국정원 등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에 의해 오남용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상태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의 위와 같은 발언은 이러한 의심을 더 강하게 제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IS의 파리 테러를 핑계로 해서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이 자신들의 권한을 더 확대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해볼 만도 하다.

당장 야당은 테러방지법 처리에 반발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시행될 경우 국정원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진다는 게 이유다. 국정원이 그간 보여준 모습은 이런 우려를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덧글과 SNS를 통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는가 하면, 없는 간첩을 만들어 내기 위해 중국을 오가며 활극을 벌이고,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을 불특정 다수의 스마트폰에서 동작하도록 하기 위해 불법적 수단까지 동원했다.

결국 확대된 권한은 IS와 같은 테러집단에 대한 대응에 활용될 수도 있지만 오로지 ‘종북세력’을 색출하는데 쓰일 수도 있다. 당장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단체 소속 인사들이 대한 대대적 탄압이 예고되고 있다. 보수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면 이들도 위의 A씨를 ‘IS추종자’라로 지목하는 게 무리라는 점을 알고 있는 걸로 느껴진다. 명확하게 A씨와 IS와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연결한 것은 IS와 알누스라 전선이 ‘동맹관계’라는 설명을 덧붙인 동아일보의 ‘오보’에 가까운 보도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무리수라는 걸 알면서도 보수언론들이 IS가 저지르는 테러에 대한 공포를 부추긴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와 중동 지역의 분쟁을 국내 정치에 대한 이슈로 활용하고자 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언론이 이런 비겁한 시도를 거들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행태야 말로 ‘사이비언론’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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